2월. 잉크를 가져다 울어야 하리!

by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by 김양훈

2월. 잉크를 가져다 울어야 하리!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2월. 잉크를 가져다 울어야 하리!

2월에 관해 목 놓아 써야 하리,

궂은 날씨가 사방에 천둥을 울리며

먹빛 봄으로 타오를 동안,


마차를 구해야 하리. 은화 여섯 냥에

종소리와 마차 바퀴의 함성을 뚫고,

저편으로 건너가야 하리. 소낙비가

잉크와 눈물보다 더 요란한 그곳으로.


수천 마리 갈까마귀가

새까맣게 탄 배(梨)처럼 나뭇가지에서

웅덩이로 추락하여, 메마른 비애를

동공 밑바닥에 떨구는 그곳으로.


웅덩이 밑에는 검게 녹은 땅,

갈까마귀 울음이 마구 휘저은 바람,

우연할수록 더욱더 진실하게

목 놓아 울듯 써지는 시. (1912)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크세니야 모로조바(Kseniya Morozov)가 그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1. 작품 배경

이 시는 1912년에 발표된 초기 대표작으로, 파스테르나크가 러시아 미래파 그룹 ‘원심력(Centrifuga)’과 교류하던 시기에 쓰였다. 당시 그는 음악가의 길을 접고 철학과 문학으로 전향한 직후였으며, 상징주의의 여운과 미래파의 언어 실험이 교차하던 문학적 전환기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1910년대 러시아는 혁명 전야의 불안과 격동 속에 있었고, 전통적 상징주의는 쇠퇴하는 반면, 보다 급진적이고 감각적인 시어를 구사하는 새로운 시적 경향이 등장하고 있었다. 이 작품은 그러한 시대적 긴장 속에서 탄생한, 감정의 직접성·자연의 역동성·창작 행위의 격렬함을 결합한 선언적 시라 할 수 있다.


2. 시의 핵심 이미지와 의미

① “잉크를 가져다 울어야 하리”

시의 첫 구절은 곧바로 창작=울음이라는 등식을 제시한다.

잉크는 눈물의 대체물이며, 글쓰기는 감정의 분출 행위다.

2월은 러시아에서 가장 음울하고 진창이 많은 시기—겨울이 녹아내리며 봄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달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2월은

•종말과 시작이 뒤섞인 시간

•혼란과 탄생이 동시에 일어나는 계절

•정서적 해빙의 순간

을 상징한다.

② 자연의 격렬한 운동

•“천둥 치며 먹빛 봄으로 타오르는 궂은 날씨”

•“갈까마귀가 웅덩이로 추락”

•“검게 녹은 땅”

•“휘저은 바람”

이 모든 이미지는 정지된 풍경이 아니라 폭발하는 운동성을 지닌다.

특히 갈까마귀가 “탄 배(梨)처럼” 떨어지는 장면은

•겨울의 검은 잔해

•불타버린 세계

•동시에 씨앗처럼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존재

를 암시한다.

자연은 여기서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시가 발생하는 현장이다.

③ “우연할수록 더욱더 진실하게 써지는 시”

이 구절은 작품의 미학적 핵심이다.

파스테르나크에게 시는 의도적으로 꾸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감정의 격렬한 충돌 속에서 우연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

진창, 눈물, 잉크, 비, 울음 —

모두 액체적 이미지다.

시란 응결된 형식이 아니라

흐르고 넘치고 번지는 것.

즉, 통제보다 격정,

구성보다 분출을 택하는 초기 파스테르나크의 시학이 드러난다.


3. 주제 의식

이 작품은 크게 세 층위에서 읽힌다.

i) 계절의 변환에 대한 노래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격렬한 자연의 순간.

ii) 창작의 탄생 순간

울음과 진창 속에서 시가 태어남.

iii) 존재의 갱신

부패와 해빙이 곧 새 생명의 조건이라는 역설.

2월은 절망의 달이 아니라,

오히려 시가 태어나기 가장 좋은 혼돈의 달이다.


4. 문학사적 의의

이 시는 이후 파스테르나크가 보여줄 자연 중심적 감수성과도 연결된다.

훗날 소설 《닥터 지바고》로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지만, 그의 시적 세계의 핵심은 이미 이 초기작에서 드러난다.

•자연과 인간 감정의 합일

•비유의 급격한 도약

•음향적 리듬감

•감정의 과잉과 생동성

이 모든 것이 이 작품에서 응축되어 있다.


5. 종합적 시평

「2월」은 단순한 계절시가 아니다.

이 작품은 시가 어떻게 탄생하는가에 대한 선언문이다.

겨울의 잔해가 녹아 진창이 되는 순간,

눈물과 잉크가 뒤섞이는 순간,

우연이 진실이 되는 순간 —

그 혼돈 속에서 시는 “목 놓아” 써진다.

따라서 이 작품은

절망의 언어가 아니라
생성의 언어다.

2월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울음은 파괴가 아니라 창조다.

Alexander Kremer, Russian,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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