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옙뚜셴꼬
러시아에서 시인은¹
예브게니 옙뚜셴꼬
러시아에서 시인은 시인 그 이상.
거기서 시인으로 태어날 운명은
오로지 오만한 시민정신 품은 자의 것,
그는 안락도 안식도 누릴 수 없다.
거기서 시인은 자기 시대의 형상
그리고 미래의 순수한 원형.
시인은 소심하게 주저하는 법 없이,
자기 이전의 모든 걸 결산하므로.
내가 그럴 수 있느냐고? 문화가 빈곤한데…
예언의 능력도 부족한데…
그러나 러시아의 혼이 내 위에 떠돌면서
과감하게 시도하라고 명령한다.
그리하여 조용히 무릎 끓고서
죽음도 승리도 각오한 채,
겸허하게 당신들에게 도움을 청하노라,
위대한 러시아의 시인들이여…
뿌시낀이여, 당신의 경쾌한 선율과
거침없는 언변과
매혹적인 운명을 나에게 주소서.
짓궂은 장난을 치듯이, 말로써 자극하는 능력을.
레르몬또여, 당신의 표독스러운 시선과
당신의 독기 서린 경멸과
굳게 잠긴 영혼의 승방을 나에게 주소서.
당신의 사악함의 누이ㅡ
비밀스러운 선량함의 현수등이
고요한 그곳에서 몰래 숨 쉬고 있으니.
네끄라소프여, 나의 객기를 잠재우고,
현관이나 철로변
광활한 숲과 들판에서
매 맞는 당신의 뮤즈의 고통을 나에게 주소서.
당신의 투박함의 힘을 나에게 주소서.
예인망으로 배를 끄는 인부들처럼
러시아 전체를 끌고 갈 수 있도록.
오, 블로끄여, 예언적인 몽롱함과
기울어진 두 날개를 나에게 주소서.
영원한 수수께끼 숨긴 채,
온몸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빠스쩨르나끄여, 변화무쌍한 날들과
쑥스러워하는 나뭇가지와
냄새들, 그림자들과 맞물린
시대의 고통을 나에게 주소서.
말(言)이 뜰이 되어 웅얼거리며
피어나고 자라나도록,
그대의 촛불 내 안에서
영원히 타오르도록.
예세닌이여, 나에게 부디
자작나무와 초원, 짐승과 사람들에 대한
-상냥함을 주소서.
당신과 내가 속수무책으로 사랑하는
이 지상의 모든 타자에 대한 정겨움을.
마야꼽스끼여, 나에게
육중함과
광포함과
베이스의 음성을,
사회적 폐기물에 대한
-준엄한 비타협성을 주소서.
나 또한
시간을 돌파하며,
그것에 관하여
후손 동지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1965년
[註1] 옙뚜셴꼬의 서사시 <브라쯔끄 수력발전소>(Btatskaya GES)의 서시(序詩).
이명현 엮고 옮김. 러시아 현대대표 시선
『삶은 시작도 끝도 없다』(창비세계문학) 中
[비평 에세이]
예언자의 면류관과 시민의 십자가:
예브게니 옙뚜셴꼬의 ‘시인론’
러시아 문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시인은 단순한 문학가를 넘어선 존재였다. 그들은 국가의 양심이었고, 억압받는 민중의 대변자였으며, 때로는 차르(Czar)나 서기장과 대등하게 맞서는 정신적 권력이었다. 예브게니 옙뚜셴꼬의 1965년 작 <러시아에서 시인은>은 이러한 러시아 특유의 ‘시인 숭배’ 전통을 현대적 언어로 집대성한 선언문이다. 이 시는 한 개인의 창작론을 넘어, 러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이 시인에게 부여한 가혹하고도 영광스러운 숙명을 해부한다.
1. 시인, 그 이상의 숙명적 존재론
시의 도입부인 “러시아에서 시인은 시인 그 이상”이라는 구절은 이 작품의 대전제이자 러시아 문학 정신의 핵심이다. 여기서 ‘그 이상’이란 시인이 미학적 완결성에만 천착하는 예술가에 머물 수 없음을 의미한다. 옙뚜셴꼬는 시인의 운명을 ‘오만한 시민정신’과 연결한다. 이때의 오만함은 개인적 우월감이 아니라, 시대의 부조리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도덕적 자부심이다.
그에게 시인은 “안락도 안식도 누릴 수 없는” 존재다. 이는 시인이 당대의 고통을 고스란히 체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기 시대의 형상을 빚어내야 하며, 동시에 도래할 미래의 ‘순수한 원형’을 제시해야 하는 예언자적 책무를 지닌다. 옙뚜셴꼬는 시인을 ‘이전의 모든 것을 결산하는 자’로 정의함으로써, 시 쓰기를 역사적 심판의 행위로 격상시킨다.
2.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러시아 시사(詩史)의 계보학
시의 중반부에서 옙뚜셴꼬는 러시아 문학사의 거장들을 차례로 호명하며 그들의 정수를 간청한다. 이는 단순한 오마주가 아니라, 위대한 선조들의 파편화된 재능을 자신의 몸 안에서 통합하려는 ‘영적 합일’의 과정이다.
◇푸시킨과 레르몬토프: 러시아 시의 기원인 푸시킨에게서는 ‘경쾌한 선율’과 ‘말로써 자극하는 능력’을, 고독한 반항아 레르몬토프에게서는 ‘독기 어린 경멸’과 내면의 ‘비밀스러운 선량함’을 구한다. 이는 시인이 갖추어야 할 언어적 유희와 비판적 지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시도다.
◇네크라소프와 블로크: 민중의 고통을 노래한 네크라소프에게서는 ‘투박함의 힘’을 빌려 러시아 전체를 끌고 갈 동력을 얻으려 하고, 상징주의자 블로크에게서는 ‘예언적인 몽롱함’과 ‘음악성’을 청하며 시의 영적인 깊이를 더한다.
◇파스테르나크와 예세닌: 파스테르나크를 통해서는 시대의 고통을 인내하는 지성적 촛불을, 예세닌을 통해서는 대지와 생명에 대한 무조건적인 상냥함을 배운다.
◇마야콥스키: 마지막으로 혁명의 나팔수 마야콥스키를 호출하며 ‘육중함’과 ‘광포함’을 간청한다. 특히 마야콥스키 대목에서 행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것은 형식적 계승을 통해 그의 혁명적 에너지를 시적 육신에 이식하려는 의지다.
이러한 나열은 옙뚜셴꼬가 자신을 단절된 개인이 아니라,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러시아 정신의 적통(嫡統)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3. 해빙기의 시대정신과 비타협적 시민성
이 시가 쓰인 1965년은 소련의 ‘해빙기’가 저물고 다시 정체기가 시작되던 시점이다. 옙뚜셴꼬는 이 불안한 시대에 다시금 시인의 고전적 가치를 일깨운다. 그는 사회적 폐기물에 대한 ‘준엄한 비타협성’을 강조하며, 시가 권력의 도구가 아닌 시대를 돌파하는 송곳이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는 스스로를 “문화가 빈곤하고 예언의 능력이 부족하다”며 낮춘다. 그러나 이러한 겸손은 곧 러시아의 혼이 내리는 명령에 의해 거대한 사명감으로 전환된다. 무릎을 꿇고 도움을 청하는 행위는 개인의 약함을 인정하는 동시에, 민족의 영령들로부터 힘을 부여받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이를 통해 시인은 ‘죽음도 승리도 각오한’ 전사로 거듭난다.
4. 결어:
시간을 돌파하는 목소리
마지막 구절에서 시인은 “시간을 돌파하며 후손 동지들에게 이야기할 것”을 다짐한다. 이것은 문학의 불멸성에 대한 확신이다. 정치적 구호는 사라지고 권력자는 바뀌어도, 진실을 담은 시인의 목소리는 시간을 이기고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예브게니 옙뚜셴꼬의 이 평론적 시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시란 곧 인간의 책임감’이라고 답한다. 그는 러시아라는 특수한 공간을 빌려 말하고 있지만, 그 메시지는 보편적이다. 시대가 어두울수록 시인은 더 밝게 타올라야 하며, 민중이 침묵할 때 시인은 비명보다 우렁찬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 옙뚜셴꼬에게 시인은 예언자의 면류관을 쓰고 시민의 십자가를 지고 걷는, 영원한 ‘고난의 행군자’였다.
예브게니 옙뚜셴꼬
러시아의 시인이자 영화 감독인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옙투셴코(Евге́ний Алекса́ндрович Евтуше́нко, 1932년 7월 18일~2017년 4월 1일)는 1932년 소련 이르쿠츠크주의 작은 마을인 지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알렉산드르 간그누스는 지질학자이며, 어머니 지나이다 옙투셴코(그의 성인 '옙투셴코'는 여기서 온 것이다.)는 가수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스크바로 이주했으며, 1949년 첫 시를 발표하였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막심 고리키 문학 연구소에서 수학했으나 1957년 발표한 시 <지마역>으로 인해 "개인주의"라는 비판과 함께 퇴학당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옙투셴코는 러시아 대중 사이에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이 죽은 이후, 니키타 흐루쇼프가 소련의 지도자가 되어 해빙기가 시작되자, 그는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1961년 발표한 시, <바비 야르>를 통해 당시 소련에 퍼져있던 반유대주의를 비판하였다. 그는 곧 러시아에서 대중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으며,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같은 60년대 대표적인 시인이 되었다. 8월 쿠데타 당시에는 보리스 옐친을 지지하였으며, 2017년 4월 1일에 사망했다. <위키백과>
예브게니 알렉산드로비치 옙뚜셴꼬(Yevgeny Aleksandrovich Yevtushenko, 1933-2017)는 20세기 후반 러시아 문학을 상징하는 거인이자, 정치를 넘어선 대중적 스타 시인이었습니다. 그의 생애와 공적은 곧 소련의 '해빙기'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1. 생애:
시대의 목소리가 된 청년
옙뚜셴꼬는 시베리아의 지마(Zima) 역에서 지질학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생애는 크게 세 시기로 나뉩니다.
•초기: 해빙기의 기수
(1950년대~1960년대 초)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의 '탈스탈린화' 정책과 함께 찾아온 '해빙기'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그는 축구 경기장에 수만 명의 관중을 모아놓고 시를 낭독하는 '광장 시인'으로서 전무후무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중기: 체제 내의 비판자
(1960년대 후반~1980년대)
그는 소련 체제 내부에서 활동하면서도 당국의 검열과 끊임없이 충돌했습니다. 파스테르나크나 솔제니친 같은 작가들이 탄압받을 때 그들을 옹호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양심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때로는 체제 순응적이라는 비판도 받았으나, 그는 시라는 매체를 통해 사회적 진실을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후기: 전 세계를 누비는 문화 대사
(1990년대~2017년)
소련 붕괴 전후로 정치 활동(소련 인민대표)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쳤습니다. 2017년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전 세계를 돌며 평화와 인권을 노래했습니다.
2. 문학사적 공적:
시의 지평을 넓히다
① 시의 대중화와 광장의 문학
옙뚜셴꼬는 시를 서재에서 광장으로 끌어낸 인물입니다. 그의 시 낭송회는 록 콘서트만큼 열광적이었으며, 이는 '시인이란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예언자'라는 러시아의 전통적 시인관을 현대적으로 부활시킨 사건이었습니다.
② 사회적 금기에 대한 도전:
<바비 야르(Babi Yar)>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1961년 발표한 시 <바비 야르>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러시아 내의 반유대주의를 정면으로 다룬 이 시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영향: 이 시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제13번 '바비 야르'의 가사로 쓰이며 예술적·정치적 기념비가 되었습니다.
③ '시민정신'의 회복
그는 앞서 분석한 <러시아에서 시인은>이라는 시에서 볼 수 있듯, 시인의 미학적 가치보다 '시민적 책임감'을 강조했습니다. 개인의 서정과 사회적 비판을 결합하여, 문학이 어떻게 사회를 정화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④ 러시아 문학의 세계화
옙뚜셴꼬는 세계를 여행하며 로버트 프로스트, 파블로 네루다 등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교류했습니다. 그는 냉전 시대에 소련과 서방 세계를 잇는 문화적 가교 역할을 했으며, 러시아 시의 역동성을 전 세계에 알린 일등 공신이었습니다.
3. 요약 및 평가
옙뚜셴꼬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를 '용기 있는 반체제 시인'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체제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만 짖는 사냥개'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없었다면 20세기 후반 러시아 문학은 그토록 뜨겁고 역동적일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시가 권력을 향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도구임을 증명한 최후의 거장이었습니다.
옙뚜셴코의 <바비 야르>와
'해빙기 시인들'의 세계
예브게니 옙뚜셴꼬의 문학적 명성을 확고히 한 <바비 야르>와, 그와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해빙기 시인들'의 세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겠습니다.
1. 시대의 고발장:
<바비 야르 (Babi Yar)> (1961)
이 시는 1941년 나치 독일군이 키예프 근처의 바비 야르 계곡에서 약 3만 4천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사건을 다룹니다. 하지만 옙뚜셴꼬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당시 소련 사회 내부에 잠재되어 있던 '반유대주의'라는 금기를 정면으로 응시했습니다.
① 구체적인 내용과 특징
•기념비 없는 계곡: 시는 "바비 야르에는 아무런 기념비도 없다"라는 구절로 시작합니다. 이는 비극적인 역사를 의도적으로 망각하려는 권력과 사회를 향한 통렬한 비판입니다.
•자기 투영과 공감: 옙뚜셴꼬는 자신을 이집트에서 탈출한 유대인,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나치에게 살해당한 '안네 프랑크'와 동일시합니다. "내게 유대인의 피는 흐르지 않지만, 모든 유대인은 나의 동족이다"라고 선언하며 인류애적 연대를 호소합니다.
•반유대주의 비판: 러시아 내 극우 민족주의 조직인 '검은 백인단'을 언급하며, 파시즘이 여전히 다른 이름으로 우리 곁에 살아있음을 경고합니다.
② 역사적 파장
발표 당시 당국은 "러시아 민중의 희생보다 유대인의 희생만 강조한다"며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는 전 세계로 번역되어 읽혔고, 작곡가 쇼스타코비치는 이 시를 가사로 삼아 교향곡 제13번을 작곡했습니다. 이 곡은 초연 당시 당국에 의해 방해받았으나, 결국 '진실을 말하는 음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 해빙기 시인들:
광장의 목소리들
1950년대 후반에서 60년대 초반, 소련에는 이른바 '신예술가 세대'가 등장합니다. 이들은 스탈린 시대의 경직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 서정성, 그리고 사회적 진실을 노래했습니다.
[해빙기 대표 시인 비교]
(시인:주요 특징-문학적 색채)
•예브게니 옙뚜셴꼬: 대중적 선동가-사회적 메시지, 직설적이고 웅변적인 어조, 정치적 양심 강조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 지적 실험주의자-파격적인 은유, 언어의 리듬과 시각적 배치(타이포그래피) 강조, 현대 문명 비판
•벨라 아흐마둘리나: 순수 서정의 여왕-고전적이고 우아한 문체, 내면의 고독과 여성적 감성, 비정치적 순수미•로베르트 로즈데스트벤스키: 공민적 열정-남성적이고 힘 있는 문체, 애국심과 현대적 감각의 조화
옙뚜셴꼬 vs 보즈네센스키 (Yevtushenko vs Voznesensky)
두 사람은 해빙기 문학의 '쌍두마차'로 불렸지만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옙뚜셴꼬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메시지)"에 집중하여 대중을 선동하는 '광장의 연사'였다면,
보즈네센스키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형식)"에 집착하며 현대적 건축 구조와 같은 시를 쓴 '언어의 건축가'였습니다.
보즈네센스키는 파블로 피카소와 교류하며 예술적 전위성을 추구했고, 그의 시는 훨씬 더 상징적이고 난해했습니다. 반면 옙뚜셴꼬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명징한 언어로 사회의 환부를 찔렀습니다.
3. 종합 평가:
시가 권력이었던 시대
이들은 축구 경기장(루즈니키 스타디움)에 모인 수만 명의 관중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시를 읊었습니다. 시인이 록 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리던 이 시기는 러시아 문학사에서 '제2의 황금기' 혹은 '은의 시대의 부활'로 불립니다. 옙뚜셴꼬는 그 중심에서 가장 용감하게(때로는 전략적으로) 목소리를 냈던 인물이었습니다.
해빙기의 종말과 세 갈래의 운명
해빙기의 봄이 짧게 끝나고, 1964년 흐루쇼프의 실각과 함께 찾아온 ‘브레즈네프의 정체기’는 시인들에게 가혹한 겨울이었습니다. 자유를 맛보았던 시인들은 다시금 검열, 투옥, 그리고 ‘조국으로부터의 추방’이라는 비극적 선택지에 놓이게 됩니다.
1. 해빙기의 종말과 시련의 시작
1960년대 후반, 소련 당국은 시인들의 영향력이 체제를 위협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열의 강화: 옙투셴코와 보즈네센스키의 시집 출간이 취소되거나, 원고의 절반 이상이 삭제되는 일이 빈번해졌습니다.
•사회적 매장: 관영 매체들은 이들을 "서구 자본주의의 앞잡이" 혹은 "퇴폐적인 부르주아 예술가"라고 비난하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공포의 상징, 정신병원: 당시 소련은 정치적 반대파를 감옥 대신 정신병원에 강제 수용하는 잔인한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시인들은 언제 '미친 사람'으로 몰려 사라질지 모르는 공포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2. 세 갈래의 운명:
순응, 저항, 그리고 망명
해빙기 시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시련을 견뎌냈습니다.
① 체제 내의 줄타기: 옙투셴코와 보즈네센스키
이들은 소련을 떠나지 않고 내부에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옙투셴코: 그는 전 세계적인 명성을 방어막 삼아 당국과 아슬아슬한 협상을 벌였습니다. 때로는 당의 정책을 옹호하는 시를 쓰기도 했지만, 동시에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 당시에는 브레즈네프에게 항의 전보를 보내는 용기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과 '지혜로운 저항자'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습니다.
② 강제 추방과 망명: 이오시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
옙투셴코보다 좀 더 근본적인 저항을 했던 젊은 시인 브로드스키의 운명은 더 가혹했습니다.
•기생충 재판: 1964년, 그는 "직업 없이 시만 쓰는 사회적 기생충"이라는 죄목으로 재판에 넘겨져 강제 노역 형을 선고받습니다.
•추방: 결국 1972년, 당국은 그를 비행기에 태워 강제로 국외로 쫓아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198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러시아 시의 위대함을 증명했지만, 죽을 때까지 고국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③ 내적 망명: 벨라 아흐마둘리나
그녀는 정치적 발언보다는 철저히 순수 문학의 세계로 숨어드는 '내적 망명'을 택했습니다. 당국의 눈을 피해 지하 간행물인 '사미즈다트(Samizdat)'를 통해 시를 유통하며 진실한 독자들과 소통했습니다.
3. 사미즈다트(Samizdat)와 타미즈다트(Tamizdat)
탄압은 오히려 러시아 문학의 독특한 저항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사미즈다트(자체 출판): 검열을 통과할 수 없는 시들을 타자기로 수십 장씩 복사하여 비밀리에 돌려보던 문화입니다. 옙투셴코나 보즈네센스키의 금지된 시들은 이 통로를 통해 수만 명에게 읽혔습니다.
•타미즈다트(해외 출판): 원고를 몰래 서방 세계(파리, 런던 등)로 빼돌려 출판한 뒤, 다시 소련으로 밀반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4. 옙투셴코의 마지막 선택
옙투셴코는 1991년 소련이 붕괴된 후, 더 이상 '광장의 시인'이 필요치 않은 시대를 마주했습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마음만은 늘 러시아에 있었습니다. 그는 유언으로 "파스테르나크의 곁에 묻어달라"고 남겼고, 실제로 그의 묘소는 그가 존경했던 선배 시인들이 잠든 페레델키노 묘지에 마련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해빙기 시인들의 탄압과 망명사는 "권력은 시인을 죽일 수는 있어도, 시인이 남긴 언어는 죽일 수 없다"는 진리를 증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