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벨라 아흐마둘리나
침 묵
벨라 아흐마둘리나
그토록 강하고 현명한 자 누구인가?
내 목에서 목소리를 빼간 자 누구인가?
목구멍의 검은 상처는
소리를 여위어도 설워할 수 없구나.
3월, 너의 소박한 업적은
칭송과 사랑받아 마땅하지만
내 언어의 나이팅게일은 죽었고
그의 정원은 사전이 되었다.
―오, 노래하라―
내 입은 강설과 절벽과 관목에게 사정한다
나는 소리친다 그러나 침묵이 입김처럼
입술가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영감―벙어리 영혼이
단숨에 순간을 집어삼킨 들
영혼의 해방을 어찌할거나
다만 내가 뱉은 말만이 구원하리라.
나는 숨을 몰아쉬고 헐떡거리고 거짓을 말한다
그러나 노래할 수 없는
눈 속 나무의 광채에
아직은 침묵을 지키리라.
끓어 넘치는 맥박을 잠재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내가 숨 가쁘게 노래하는 모든 것의
영원하고 완전한 화신이 되리라.
나는 그토록 말이 없었고
그토록 모든 말의 이름을 사랑했고
갑자기 죽은 듯 피곤해졌다
그러니 독자여, 나를 찬미하는 노래 부르라.
석영중 옮기고 엮음, 『레퀴엠』-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 선집(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中
작품의 배경과 시평
벨라 아흐마둘리나의 <침묵>은 시인으로서 겪는 '언어적 한계'와 그 고통을 통과하여 얻게 되는 '절대적 존재감'을 형상화한 수작입니다. 1960년대 러시아(구소련) 문단의 보석이라 불렸던 그녀의 섬세한 감수성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1. 작품의 배경:
'해빙기'의 목소리와 고독
벨라 아흐마둘리나는 에브투셴코, 보즈네센스키와 함께 1950년대 후반~60년대 초반 러시아의 '해빙기(The Thaw)'를 이끈 시인입니다.
◇시대적 상황: 스탈린 사후, 억눌렸던 예술적 갈망이 폭발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시인들은 광장에서 수만 명의 청중 앞에서 시를 낭독하며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아흐마둘리나의 독자성: 동료 시인들이 사회적 메시지에 집중할 때, 그녀는 철저히 개인의 내면, 고독, 그리고 '시를 쓰는 행위 자체'에 집중했습니다.
◇침묵의 의미: 이 시에서의 '침묵'은 단순히 할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너무나 순수하고 거대한 자연(눈, 절벽)과 영감 앞에서 인간의 언어가 얼마나 초라한지를 깨닫는 겸허한 좌절이자, 새로운 언어를 잉태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침묵입니다.
2. 시평:
상처 입은 목구멍에서 피어난 찬가
•언어의 죽음과 사전이 된 정원
"내 언어의 나이팅게일은 죽었고 / 그의 정원은 사전이 되었다.“
이는 가장 가슴 아픈 비유입니다. 자유롭게 노래하던 나이팅게일(생명력 있는 시어)이 죽고, 그가 노닐던 정원이 딱딱한 '사전(박제된 단어들의 집합)'이 되었다는 것은 시인이 겪는 슬럼프 혹은 언어의 한계를 의미합니다. 살아있는 감정이 단어라는 틀에 갇히는 순간의 비극을 말합니다.
•영혼의 해방과 말의 구원
"다만 내가 뱉은 말만이 구원하리라.“
시인은 침묵 속에서 발버둥 칩니다. 벙어리가 된 영혼이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역설적으로 다시 '입 밖으로 나오는 말'뿐입니다. 침묵에 질식할 것 같은 고통을 뚫고 나오는 시어만이 시인의 존재를 증명(구원)하기 때문입니다.
•찬미의 대상이 된 시인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독자에게 자신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르라고 당당히 요구합니다. 이는 오만함이 아니라, 침묵의 형벌을 견뎌내고 사물들의 '화신'이 되기로 결심한 예술가의 숭고한 피로감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의미합니다.
3. 핵심 정리
<구분: 내용>
•핵심 주제: 시적 영감의 고갈에 대한 고통과 침묵을 통한 예술적 승화
•주요 상징:
‣목구멍의 상처-시를 쓰기 위한 산고(産苦)
‣눈 속 나무-인간의 언어로 담아낼 수 없는 완벽한 자연
•어조: 비장하면서도 우아하며, 고통을 관조하는 예언자적 어조
"아흐마둘리나에게 침묵은 비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품기 위해 시인이 감내해야 하는 거대한 기다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