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마리나 쯔베따예바
나는 좋아요…
마리나 쯔베따예바
나는 좋아요
당신이 나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기에
나는 좋아요
내가 당신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기에
단단한 대지가 결코
우리의 발아래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나는 좋아요
웃기는 여자가 될 수 있고
방탕한 여자가 될 수 있고
말장난도 하지 않고
소맷부리가 살짝 스치기만 해도
숨 막히는 파도처럼 얼굴 붉히지 않을 수 있어서.
나는 더욱 좋아요
내가 보는 앞에서
당신이 평화롭게 다른 여인을 포옹하고
내가 입맞춤을 거부해도
지옥의 화염으로 나를 저주하지 않고
나의 부드러운 이름을 밤이고 낮이고
다정한 당신이 헛되이 부르지 않기에...
사람들은 성당의 정적 속에서
우리를 위한 할렐루야를
-절대로 노래하지 않을 것이기에.
몸과 마음으로
당신께 감사드려요
이유도 모르는 채 그토록 나를 사랑함에
밤이면 찾아드는 내 마음의 평화에
점차 사라져 가는 석양의 만남에
우리가
달밤에 산책하지 않음에
우리들의 머리 위에서 빛나지 않는
태양에―
당신이―안타깝게도!
―나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음에
내가―안타깝게도!
―당신으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음에…
(1915)
석영중 옮기고 엮음, 『레퀴엠』-혁명기 러시아 여성시인 선집(고려대학교 출판부, 2004) 中
작품의 배경과 시평
마리나 쯔베따예바의 이 시는 사랑의 열정보다 더 깊고 서늘한 '비연애(非戀愛)의 역설'을 노래한 작품입니다. 뜨거운 고백처럼 시작하지만, 내용은 "우리가 사랑하지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반어적인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이 시에 대한 배경과 시평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작품의 배경:
엇갈린 운명과 우정
이 시는 1915년 5월 3일, 마리나 쯔베따예바가 23세였을 때 쓰였습니다. 시의 대상이 된 인물은 그녀의 남편 에프론의 누나, 즉 시누이의 남편이었던 모리스 마이젤(Maurice Maizel)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관계: 당시 쯔베따예바는 남편 세르게이 에프론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정신적·지적 교감을 나누는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창작 동기: 모리스 마이젤은 쯔베따예바의 매력에 압도당해 그녀 앞에서 매우 긴장하고 어쩔 줄 몰라했다고 합니다. 쯔베따예바는 자신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보며, 차라리 '우리가 연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역설적인 위로와 안도감을 시로 표현한 것입니다.
2. 시평:
"안타깝게도!" 속에 숨겨진 진심
▪사랑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자유
이 시의 전반부에는 '안도감'이 흐릅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 가슴 졸이고, 질투하고, 지옥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당신과 내가 서로에게 매여 있지 않기에 "웃기는 여자"가 되어도 상관없고, 얼굴이 붉어질 일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사랑의 구속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을 강조합니다.
▪종교적·사회적 금기로부터의 해방
"사람들은 성당의 정적 속에서 우리를 위한 할렐루야를 절대로 노래하지 않을 것이기에."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결혼(성당에서의 예식)은 영원한 귀속을 의미했습니다. 시인은 당신과 내가 결혼이라는 사회적 틀에 갇히지 않을 것이기에, 오히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 감사(역설적 감사)를 표합니다.
▪"안타깝게도!" - 시의 핵심적 반전
시의 마지막 줄에서 반복되는 "안타깝게도!(Увы!)"라는 표현은 이 시의 백미입니다.
서로 괴로워하지 않아서 좋다고 말해왔지만, 마지막에 붙은 이 짧은 감탄사는 사실 '우리가 사랑할 수 없음에 대한 깊은 회한'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이 시는 "우리는 사랑하지 않아요"라는 선언이 아니라, "우리는 사랑해서는 안 되기에, 사랑하지 않는 이 평온함이 너무나도 슬프다"는 고백인 셈입니다.
3. 총평
쯔베따예바는 이 시를 통해 사랑의 이면을 날카롭게 파고듭니다. 뜨거운 사랑은 결국 서로를 파괴하지만, 사랑하지 않음은 평화를 줍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동시에 '고독'과 '허무'를 동반한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격정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의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차갑고도 뜨거운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