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경축 회갑

환갑잔치

by 신유연향


2023년 5월 9일

Pamplona(팜플로나) --> Puente la reina(뿌엔떼 라 레이나), 알베르게 : Albergue Puente (알베르게 뿌엔떼

오늘도 24km

20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나바르 주의 수도 팜플로나의 도심을 시작으로 길을 연다.

양옆으로 둘러싸인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로 걸어가면서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나를 발돋움치게 한다.

SE-8743a50b-160b-4181-be5d-26aa12806afc.jpg?type=w773


숲길이 별로 없는 반면, 아침부터 구름이 해를 가려 모자가 필요 없는 좋은 날씨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탁 트인 들판의 모습과 멀리 보이는 산들의 수평선, 그리고 하늘이 만들어준 수채화 같은 모습이 나를 이끌어 준다.

들에 핀 양귀비가, 들에 가득한 밀밭이 대평원의 아름다움을 펼치고 있다.

20230509_084407.jpg?type=w773


가파른 산맥을 오르는 길에 풍력발전을 위한 바람개비가 있다.

고압 송전탑도 연이어 있다.

산 정상에 오를수록 바람개비 돌아가는 소리가 크다.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자연의 수채화 속에 우뚝 솟아 있는 풍력 발전 바람개비는 나름 부조화 속에 조화를 이루고 있다.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와 윙윙 바람개비 소리.

끝없이 펼쳐진 밀밭이 장관이다.

길가에서 밀밭뚝으로 올라섰다.

'나 여기 있어요'

그리고 시 한 구절을 읊조린다.

"꽃 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익는 오월이면 보리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밀 익는 계절은 어떤 아름다움을 펼쳐줄지 상상하며 나는 시인이 되었다. 밀내음도 맡은 듯 감상에 젖어본다.

1683650305062.jpg?type=w773


광활한 밀밭이 또 다른 장면을 연출한다.

바람에 살랑이며 밀이 이뤄내는 파도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저만치 앞쪽, 한무리의 들꽃에 또 취해본다.

이 광경은 너무나 사치스럽고, 목가적인 향기를 품은 천상의 예술작품이다.

이 안의 나는 예술가의 고뇌에 찬, 아름다움에 어찌할 바 모르는, 노스텔지아를 꿈꾸는, 방랑자의 한숨이 벤 환호의 붓놀림이다.

이 향기를 몸에 안으며 아름다운 눈 호강을 오래 간직하고자 천천히 걷는다.

20230509_102809.jpg?type=w773
1683650304632.jpg?type=w773
1683650304776.jpg?type=w773
1683650304843.jpg?type=w773
1683650304929.jpg?type=w773
SE-f92498ad-6ffc-40a7-af87-014c35e34ea4.jpg?type=w773
1683650305146.jpg?type=w773
1683650305358.jpg?type=w773



페르돈 언덕, 일명 용서의 언덕

750m 봉우리에 오르니 바람이 차다. 먹구름이 몰려온다.

무엇에 대한 회개와 어떤 용서가 필요했을까?

풍경에 심취하여, 걷는 것이 너무 행복하여 어떤 죄를 지었는지 염두에 둘 수 없었다는 것이 맞겠다.

가지런히 쌓아 올린 돌탑이 위태롭게 서 있다.

한층 한층 소망을 담아 쌓았을 어떤 이의 염원이 보이는 듯하다.

1683650305891.jpg?type=w386
1683652875285.jpg?type=w773


잔뜩 흐리다가 비가 내린다.

비가 많지 않아 많은 장비가 필요한 건 아니었다.

SE-7ade6bd1-2d92-4a50-8fc5-09a3394e777c.jpg?type=w773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현지 가이드가 소개한 Vinoteca Ganbara를 찾았다.

미리 예약을 해 놓은 시간을 어길까 조급했으나, 주인장 부부가 맞이하는 환한 웃음에 녹는다.

테이블이 몇 개 없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였다.

우리들의 긴 여정을 위로할 겸, 첫날부터 호텔방 파트너가 된 여인의 회갑 날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자신의 환갑을 맞아 자신만의 을 찾고자 을 떠났다는 환갑녀는, 이런 호사까지 겹쳐서 무척 감동하노라 했다.

노잣돈으로 금일봉을 받은 언니가 와인까지 곁들여 우리에게 베푼 호사는, 마치 이곳이 마치 최고급 레스토랑인 듯 화려하고 좋다.

마침 옆 테이블에 홀로 앉은 현지인의 60세 생일도 오늘이란다.

아~ 생년월일이 같은 두 사람이 어찌 악수와 포옹을 나누지 않으리~

손을 잡고 나누는 악수에 정겨움이 묻어난다.

나누는 와인잔의 건배하는 "쨍"소리에 축하와 즐거움이 전해진다.

아담하고 정갈한 레스토랑의 분위기와 정성 가득한 요리가 한층 기분을 돋군다.

와인이 불빛에 투영되어 분위기에 맞게 넘쳐흐른다.

동감

여유

해맑음

웃음

온화함

축하

이것이 오늘 이 레스토랑에서 환희와 함께 한 고마운 마무리이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오니 풍경이 들어온다.

창밖으로 성당이 보이는 명당이었는데, 열어 놓은 창으로 바람이 들어오니 찬 기운이 엄청나다.

스페인에 오는 첫날부터 서늘해서 여름인지 모를 정도인데 그 정도가 심하다.

위아래로 옷을 끼어 입어도 너무 추워 창을 닫으려 하였으나 창의 구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이 창을 닫지 않으면 얼어 죽을 만큼이나 추웠다.

괜한 명당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떤 것이 후회로 다가올 즈음, 요령을 몰라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남자분이 필요하다는 호들갑까지 떨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저쪽에서 가만히 있던 여인이 나선 것이다.

와우~ 대단해요.


20230509_181313.jpg?type=w773


끝으로 침대에 누워 아들이 사 준 팩을 나눴다.

좋은 사진, 좋은 날씨, 좋은 사람들.

오늘도 행복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3. 씨에스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