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들꽃 같은 삶

로스 아르코스에서 로그로뇨, 호커 신발

by 신유연향


2023년 5월 12일, 7일차

Los arcos (로스 아르코스) --> Logroño (로그로뇨), 알베르게 : Albergue santiago apostol

거리 : 28km


새벽 3시에 자다가 울었다.

여태 꿈에 보이지 않던 엄마였다. 엄마 방에 들어가 엄마의 한복을 만지며 꿈속에서 얼마나 울었던지 잠깐 소리를 낸 것 같다. 내 소리에 내가 깬 것이다.

잠에서 깨 핸드폰을 보니 헝부의 문자가 와 있었다.

투병 중인 언니가 방에서 변기를 쓴다고.

'무슨 말이 적합할까! '

'어떤 기도문을 올리면 되나?'

'내 길을 가면 되는 걸까?'

5시 20분에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단톡에 올리며 길 위에서 죽었으면 한다는 하얀 수염의 남자가 떠올랐다.

어떤 의미를 담았을지 하나는 알 것 같다.

[들꽃 같은 삶]

누군가에 의해 꺾일 수도, 스스로 스러져 갈 수도 있지만 그 어떤 이도 간섭하거나 알 수 없는 것.

내 길을 가면 된다. 그 길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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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서 주문한 아침 식사를 하였다.

이런 경우엔 전날 슈퍼에서 아침을 위한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어 좋았으나, 딱딱한 바게트는 영 부담스럽다.


아침부터 비다.

그늘이 없었지만 구름이 해를 가려주고, 간간이 비가 내려 춥기까지 한 상쾌한 시간이었다.

비에 바람까지 보탤 때는 고어텍스 잠바까지 두 겹으로 끼워 입어야만 한다.

오늘도 여전히 포도나무가 나의 눈길을 잡는다.

집에 두고 온 어린 포도나무의 가지를 어떻게 뻗어나가게 도와야 될지 궁리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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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로뇨에 입성하였다.

여장을 풀고 까르프에 장 보러 가는 길이다.

가던 길에 로그로뇨 성당도 만났으나 굳게 닫혀있다.


장미공원에서 놀다가 장을 본다.

언니가 들고 간 장바구니엔 납작복숭아, 요거트, 샐러드, 사과, 하몽, 바게트가 담겼다.



안녕!

오늘은 24km를 걸었어.

발가락 물집이 심각해질 무렵, 우리 팀의 배려로 항생제를 한 알 얻어먹으니 통증이 가라앉더군.

오늘도 아침 일찍 경쟁적으로 출발하느라 5시부터 부스럭거리고 불을 켜는 사람이 있어 빈축을 많이 샀어.

지난 주 새벽에 또 불을 켜길래 가이드에게 와 달라고 부탁했어.

가이드가 "불 끄세요" 하니

불 켠 사람 침대 짝이 "내가 안 켰는데요" 하더니 끄지 않을 뿐더러 나갈 채비를 하느라 토닥토닥 얼굴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거야.

그때 잠결에 맡은 화장품 냄새가 코를 간지르며 거슬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

그럴 수도 있구나. 다른 냄새를 풍기는 화장품을 못 쓴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고나 할까.

그이는 오늘도 제일 먼저 출발했지. 아마도 제일 먼저 도착할 듯.

근데 그 팀 막내가 오늘 내 신발을 신고 떠난 거야.

같은 호커 브랜드, 같은 색, 같은 사이즈.

그녀의 신발은 두꺼운 깔창이 깔려있어서 물집 때문에 메디폼을 칭칭 감은 내 발가락이 신발에 부딪쳐.

좀 덜어보려고 깔창을 빼니 기본 깔창 없이 다니는 형국이니 불편했지.

남의 신발 신고 28km를 걸은 거야.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괜찮다고는 했지만 엄지발가락마저 굳은살이 스적거려 좋지 않았지.

그래도 좋아.

공기가 좋아서 좋고, 온몸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게 좋고, 길 위의 풍경이 좋아.

집만 한 채 사면 스페인 이주가 가능하다는데 이사 올까?

하긴 집값이 6억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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