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가방 바꿔 뒤져

로그로뇨에서 나헤라까지, 가방 바꿔 뒤져

by 신유연향

2023년 5월 13일

Logroño (로그로뇨) - Najera (나헤라), 알베르게 : Albergue puerta Najera

거리 : 29km

날씨 : 흐림 구름 많음


어제 꾼 꿈이,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 암시하는 꿈이라는 해몽을 들었다.

우리 모두의 염려가 잘 풀리리라는 기대감을 안고 시작한다.

오늘도 29km.

어제저녁 까르푸에서 사다 놓은 납작복숭아, 샐러드, 사과, 하몽, 바게트로 알베르게 식당에서 요기하고, 남은 과일과 요거트를 도시락으로 넣고 출발한다.

과일과 야채 등 먹고 싶은 것을 다양하게 먹어서 그런지 마음과 발길이 가볍다.

출발하기 전, 어제 묵은 알베르게 앞에서 출발을 알리는 사진을 찍었다.

아침이면 순례길을 걷는 것이 일상이 되었지만 따분하거나 ,지루하다거나, 힘들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뜨거운 햇살이 오늘도 피해가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중간중간 잠시 힘들다라는 생각이 언뜻 들지만 그때마다 항상 우리를 반가는 대자연의 엄숙함과 즐거운 볼거리가 있어서, 그리고 중간중간에 먹는 간식의 즐거움이 있어 나도 모르게 언니들과 함께 웃을 수 있어서 좋다.

이것이 자연이 무언으로 우리에게 주는 산교육인 것 같다.


알베르게에서 나오면서 쫌 짐이 많고, 몸이 큰 남자를 따라갔다.

가다 보니 까미노 표시가 없더라.

"어라~ 여기가 아닌가벼~" 했더니 그 유럽 남자, 이곳으로 가면 사진 명소가 있단다.

일부러 돌아가고 있으니 함께 가자고 했다.

무거워 보이는 몸에,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맨 그 남자를 따랐다.

같이 간 로그로뇨 광장의 순례자 동상이 멋지다.

이 남자,

"위치를 바꿔 보세요"

"포즈도 바꿔 다시 찍을게요" 한다.

낯선 남자가 주문하는 대로 연출하다 보니, 사진의 장수가 엄청나다.

사진을 찍고 길을 잡아 가는데, 그 남자는 또 다른 사진 명소가 있다며 좁은 골목으로 가고 있었다.

이 남자 웬지 정겹고 귀엽다.



도심을 벗어나기 전에 커피 한 잔하기로 하였다.

약간 힘이 들 때 마시는 한 잔의 커피 향기와 진한 커피의 목넘김에 피로를 함께 날린다. 화장실 문제 때문에 참는 경우가 많지만 모닝커피를 마다하기는 힘들다.

잠시 좋은 시간을 보낸 후 멀리 로그로뇨를 두고 떠난다.

까미노 '로그로뇨' 표식과 함께 다시 연출한, 로그로뇨의 시작을 알리는 표식이 우리에겐 로그로뇨와의 안녕이 된다.

우리 셋 모두의 호커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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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쉼터

비가 올 것 같아 우비를 꺼내 입는다.

배낭까지 멘 상태로 우비를 입으니 정장터에 나가는 군인 모습과 흡사하다.

신발이 젓으면 불편한 발이 더 불편할까 염려 되어 신발 보호대까지 중무장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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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성당에 가서 3초 기도한다.

"제가 길 위에서 드린 기도 참되게 하소서"

근엄한 성당에서 언니들과 함께 나도 숙연해졌다.

"제 기도가 아루어지게 하소서"



다시 포도원이다.

잔뜩 흐렸던 먹장구름이 걷히면서 어느새 뭉개구름 가득한 푸르른 하늘이 반갑다.

변화무쌍하게 바뀌는 자연의 위대한 날씨 앞에 비록 초라하지만 나름 적응하면서 대처해 나가는 인간들의 모습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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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프러스 가로수 길도 지나면서

자연

먹장구름

뭉개구름

이 모두가 신의 피조물임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하늘을 우러러본다.



로그로뇨에서 나바레떼로 가던 중 두 번째 쉬는 벤치이다.

2시간쯤 걷다가 양말을 벗어 발의 화기와 물기를 말려야만 물집을 방지한다.

간식도 먹고, 볼일도 보고 이제 길을 나서야 하는데

언니가 "'☆☆샘 내 양말 내놔"

마침 ☆☆언니가 가운데 앉았고 난 건너편 끝에 앉았기에 나는 제외!

언니가 벗은 양말을 신으려다 양말 한 짝이 없는걸 안 거다.

ㅋㅋ 아무리 찾아도 안 나오는 양말.

"가방 바꿔 뒤져"

"모두 손들고 눈 감아"

☆☆언니의 재치에 한바탕 웃었다.

학창 시절 경험과 재직 시절 기억들을 내놓으며 한참을 더 웃었다.

그런데, 진실은 따로 있었으니 언니가 한 쪽엔 발가락 양말만 신고 그 위의 양모 양말을 안 신고 출발한 것이다.

어찌나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일찍 출발하던지 양말도 제대로 신지 못한 체 출발했건만 오늘도 꼴찌 출발했지만 말이다.



(중간에 벤토사(Ventosa)로 가는 방향과 바로 나헤라로 가는 길이 나뉘는데 왼쪽으로 가시면 1km가 더 길고 벤토사에서 쉬고 가실 수 있고 직진으로 가시면 쉴 마을은 없습니다.)

벤토사 갈림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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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마을을 에둘러 가는 길로 택했다.

제일 먼저 출발 한 사람들은 제일 먼저 도착하기 위한 열망으로 먼 길을 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마을에는 사진들이 많이 세워져 있었다.

모두들 밀밭에 선냥 사진 속의 소녀와 같은 포즈를 취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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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마을 라바레떼에 도착했을 때도 꼴찌였다.

가이드가 우리가 그 마을에 도착하는 걸 보고 버스로 나헤라까지 가려는 걸 봤으니까.

라바레떼에서 나헤라까지는 18km. 카페도 푸드트럭도 없다.

석재공장, 채석장이 보인다.

포도밭에서 뭔가를 뿌리는 농부를 본다.

어~! 근데, 냄새가 농약이다.

"뛰어"

맑은 공기에 호사를 누리다가 웬일인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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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큰 도로변이 이어지다 보니 길은 멀고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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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너머 우리의 목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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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들어서는 다리를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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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먼 거리를 걷느라 허벅지 뒷 쪽이 당기고 엄지발가락 굳은살이 신발에 걸려 힘들다.

목적지인 나헤라에 들어서면서 기운을 낸다. 고지가 멀지 않다.

큰 도로변에 위치한 중식당 유리 너머로 우리 팀원들이 식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볶음밥에 탕수육까지 엄청 맛있었다는데... ㅠㅠ


제일 꼴찌 출발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식사에 심취해 있을 동안 알베르게에 먼저 입성하였다.

덕분에 다른 사람의 간섭을 피할 수 있는 침대를 선점하였고, 편안하게 씻을 수 있었다.

볶음밥이 아쉬워 비슷한 것이라도 먹자고 식당을 찾아 나섰다.

그러나 시에스타에 걸렸다. 슈퍼에서 간단히 이것저것을 산 뒤, 비가 와서 젖은 야외테이블을 닦고 앉았다.

저녁은 근사한 레스토랑을 예약했으니까 우아함은 참아보기로 한다.

장을 본 후, 오늘 묵을 알베르게 Albergue puerta Najera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예약된 식당아 기다려라.


얘들아 안녕!

오늘은 29km야.

앞장서서 걷던 언니가 뒤돌아 서서 기다리더라고.

이모를 위한 기도를 함께 한다 했어.

마음으로 함께 하면 곁에 있어 주는 것과 같으니 기도하자고.

눈물이 핑 돌았어.

또 병중의 이모가 얼마나 이타적인지, 9대 종손으로서 얼마나 애썼는지, 얼마나 극진히 우리이모님을 딸처럼 모셨는지, 내게 어떻게 엄마 같았는지, 나의 언니를 자랑하고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져서 더욱 좋았지.

길 위에서 기도를 잃지 않고 하고 있으니 이모는 힘을 낼 거야.

나의 여정도 더욱 갚어지길.


여보 안녕!

오늘 늦게 출발한데다가 늦은 걸음 탓에 나헤라에 도착 또한 늦었네.

씨에스타로 4시에 문 닫는 식당이 많아 알베르게를 목전에 두고들 중식당에 앉아있는 틈을 타 우린 알베르게에 일찍 도착했어.

짐을 풀고, 편하게 씻고, 조금은 편한 침대에 들었어.

늦은 점심을 때우고 저녁을 먹으러 갔어.

시에스타 끝나는 8시에 예약한 식당에 갔는데 주요리는 9시에 나온 거야.

이미 식당은 꽉 차 있었는데 9시가 지나자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아지는 게 이상했어.

늦은 밤에 아이들까지 대동하여 저녁을 먹는 게 낯 설더라고.

이들은 이렇게 밤 12시까지 저녁을 즐긴다네.

이제 10시. 오늘은 많이 걸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으니 조금 걱정이야.

사실 누우면 자는 내가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깨고, 잠 못 들고 힘드네.

이만 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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