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비치마! 너~

나헤라에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까지, 버닝칸 스패츠

by 신유연향

2023년 5월 14일 (9일차)

Najera (나헤라) > 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

숙소 : 스페인 국영 빠라도르 호텔(Parador de 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토도밍고 대성당 바로 앞

거리 : 20.9km

날씨 : 비, 기온 떨어짐


오늘의 목표 걸음거리 21km, 이 정도는 어렵지 않다.

트레킹 첫날 양모 양말의 목이 길어 발목에 겹치게 내려 신었더니 발목이 벌겋다. 모두들 겪는 고충이지만 내 아픔이 가장 큰 것.

어제 한 개의 긴 양말 목을 자르고, 꿰맸다. (그리고 오늘 호텔 침대에서 하나 더 잘랐다.)

목 짧은 양말 신고 가볍게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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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감이 나고 가려워서 양말 수선을 어제 하나, 오늘 하나 했다.

나헤라의 숙소에서 출발하여 골목을 돌아 성당에 도착하였다.

이른 아침인지라 성당문은 닫혀 있었고, 순례객을 위해 마련된 곳에서 사진 찍기 놀이를 한다.

난 순례객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일생을 순례길을 개척한 산토 도밍고가 태어난 곳, 마을 이름도 같은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이다.

마을에서 마을로 복음을 전하던 산티아고 성인의 순례길을 개척한, 길 위의 성인의 마을 산토 도밍고(1109년에 멸)로 향한다.


이후 끝없이 구릉이 펼쳐진 대평원이다.

바람에 산들거리며 우리여행자를 반기는 밀밭길을 걸으며 한 시간 후 아스포라에 도착하였다.

여기에서부터는 도로 옆으로 걷는다. 간혹 언덕을 넘기도 하는데 주로 4차선 도로 옆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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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되는 비로 재빠르게 비치마와 신발보호대를 착용하였다.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멜로디 삼아 추적추적한 황톳길을 걸어간다.

길 위에서 외로이 서 있는 순례객 동상을 또 만났다. 그분과 사진 찍자 하며 굳이 도로를 건너 가 동상 앞에 섰다.

그런데, 거기서 문제가 일어났다.

다시 까미노로 가기 위해 도로 옆으로 흐르는 빗물 고랑을 펄쩍!

원래 내 다리의 컴퍼스 각도는 크다.

고랑의 폭도 좁았다.

아뿔싸, 그런데 비치마의 폭을 생각 못 한 것이다.

넘어졌고, 무릎이 까졌고, 얼결에 짚은 손바닥에 순간적인 멍이 올라왔다.

아~ 아픈 거.


저 도로를 건너 온 후, 다시 도랑을 넘다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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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양귀비꽃.

빨간 판초를 입은 양귀비 두 송이가 길 위에 서 있다.

저 멀리 보이는 양귀비를 쫓아 급하게 달렸다.

그러고는 노부부에게 인사를 건넸다.

"당신들, 들에 핀 붉은 양귀비처럼 아름다워요."

우중을 걸으면서 어린시절 빗속에서 친구들과 물장난을 하며 재잘대던 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 엄마께 비에 젖은 새앙쥐 모습 그대로 혼줄이 나던 기억에 혼자서 웃어본다.

우중에서 서로를 보둠고 있는 '붉은 양귀비 두 송이'의 모습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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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엔 비가 많이 온다고 했다.

그래서 준비한 #버닝칸 스패츠, 비치마, 판초와 캡 모자가 장비 발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드디어 오늘 제대로다.

친구의 조언이 탁월하고 우월하지 않느냐고 강조에 강조를 했더니,

언니가 덕분에 비에 젖지 않도록 비옷을 장만하게 한 화옥이를 방문하러 서울 가잔다.

친구에게 카톡으로 전했다.

'우리 서울 가서 만나자. 선배 언니가 고맙대.'

조언인즉슨,

1. #캡 모자를 꼭 써!

'빗물이 머리에서 모자의 캡으로 떨어지거든, 둥근 모자는 둥근 테를 타고 목덜미 쪽 모자테에도 물이 젖잖아. 그래서 캡 모자를 써야 해.'

2. #판초는 이거면 충분해.

' 이 판초는 가벼워서 좋아'

(내가 찾아낸 장점 : 게다가 여밈 끈이 있어 바람에 날리지 않는다. 팔이 따로 있는 판초가 손을 적시는 단점이 있는데 이건 나풀거리는 날개 안에 손을 넣고 스틱을 잡으니 장갑도 젖지 않는다.)

3. #비치마가 필요해.

'비치마는 판초에서 흐르는 물을 잡아 발밑으로 가게 하는데, 그 발은 이미 발등을 덮는 스패치가 있거든'

4. 발등 덮는 #스패치

'이 스패치는 가벼워. 이걸 만든 사람이 써 보면서 계속 보완하여 제품을 만들어 내거든. 아무리 방수 신발이라도 신발 끈을 타고 들어가는 빗물, 판초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잡을 수는 없거든. 근데 이건 발등을 덮기 때문에 염려 없지'

친구의 세세한 설명이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고마워, 친구야'

혼자 앞서가던 언니에게 길 가던 외국인이 그거 뭐냐고?,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묻더란다.

역시 장비 발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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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과 함께 순례자 모습의 부조 앞에서 포즈를 취해본다.

우비를 입은 세 쌍둥이

"깨금발"

어! 넘어지지 않을까?

다행이다. 우리에겐 지팡이가 있다.

하늘의 먹장구름은 점점 짙어지고 빗방울 또한 만만치 않다.

그러나 우리들의 오늘의 이 즐거움은 어린시절 개구장이들이 빗속에서 마냥 신나서 놀고 있는 "물을 제대로 만난 물고기"들이었다. 장비를 제대로 갖춘자의 여유가 있었다.


탁월한 장비 덕을 본 하루

[골프장 끼고 올라오시면 좌측에 카페가 있습니다.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으니 쉬었다가 오세요. 그 후에는 쉴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빗물에 젖은 몸으로 골프장 리조트에 들어갔다.

리호하 알타 골프클럽에 순례객을 위한 카페가 있다.

습한 날씨에 물도 먹을 틈 없이 거의 쉬지 않고 걸은 후라서 오래 앉아 있기로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에스프레소, 오렌지주스 그리고 간식거리를 주문하였는데 다 들고 가기에는 손이 부족해서 커피가 나오자마자 언니들이 들고 테이블로 갔다.

빵과 계란이 어우러진 간식 접시를 들고는, 얼음이 담긴 컵만 있다며 직원한테 아이스용 커피가 없다고 하였다.

아차! 직원이 커피를 내리는 동안 나는 알아차렸다.

'아~ 언니가 먼저 커피를 옮겼지!'

우린 의사소통이 안 되는 이유로, 실수를 밝히고 추가 요금을 내거나 두 잔의 커피 대신에 주스를 취소하는 걸 하지 않기로 했다.

순전히 영어가 안 되는 이유에서이다.

'아이스커피'도 소통이 안 되어 한참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변명이 구차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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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길을 나선다.

크게 나뉜 밭 구역 덕에 밀밭의 물결은 더욱 황홀하다.

비가 어느정도 잦아들자 우리들도 차분해지면서 밀밭의 향연을 다시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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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중을 뚫으며 쉬지 않고 걸은 덕에 21km를 4시간 30분 만에 마쳤다.

호텔에 도착하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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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인은 4시라 했는데 조금 이르게 2시쯤 들어가 안락한 시간을 보냈다.

호텔 석식으로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빗속에서 쉬지않고 걸은 탓인지 저녁식사가 더욱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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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사진에 익숙지 않아 매번 잊고는 빈 접시를 찍는다.

언니가 아침에 비치마를 잃어버렸다 해서 내 고어텍스 잠바로 허리 밑부터 무릎까지 덮을 수 있게 했다.

힘든 길이어서인지, 비 맞은 추워서 어쩔 줄 모르는 걸 본 뒤의 처방이어서인지 언니는 호텔방에 들어갔을 때,

저체온증과 입안 헌 곳 등으로 쓰러질 정도였나 보다.

동생이 챙겨 준 공진단과 아들이 사 준 굴루콤을 권했지만, 자신의 자가 치유 능력을 믿고 실천하는 언니는 마다하였다.

나도 언니 덕분에 '민족생활의학'을 알게 되고 실천한 일인으로서 언니를 존중한다.

그리고 잘 마치길 바라는 마음 컸다.

밤 8시 반

9시에 예약된 저녁 식사를 위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늦은 저녁을 먹지 않는 언니가 로비로 왔다.

따뜻한 섭이 덕분에 잘 쉴 수 있었다며, 활기차게 나타났다.

그런데 거기서 언니랑 작은 실랑이를 하였다.

'누가 그러더라'로 시작된 우리의 시비는 싱겁게, 결론 없이 끝났는데, 우리가 다시 이 이야기를 나눌 때는

더욱 진솔하게 다가가길 바라본다.



안녕!

오늘은 비가 많이 내렸어.

만약 볕이 따가웠다면 더 힘들었을 길을 쉬지 않고 단숨에 걸었지.

16km 지점까지 물도 마시지 않고 빗속을 걷는데 자꾸 눈물이 나.

덕분에 빗물인지 눈물인지 가늠이 안 되는 틈을 타, 잘 울었어.

언니의 병 투병, 가족의 고난.

뜻대로 하소서가 아녔어.

강렬한 염원을 담아 기도했어.

'언니가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게 하시고 정신 맑게 하시어 가족들 품에서 따뜻하게 더 머물다 가게 하소서.

아들이 훌륭한 인재로 쓰이게 하시고, 남편이 갖고 있는 염려가 불식되게 하시고, 아름답고 좋은 결말 갖게 하시어 이타적인 삶으로 연결 짓게 하소서. 님의 좋은 뜻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남들의 산티아고 순례길 블로그나 여행기를 보면, 그저 생각 없이 걸었다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나는 날씨 좋고 컨디션 좋아서인지 기도와 염원의 시간이 되고 있어.


호텔에서 푹 자다가 새벽녘에 꿈을 꿨어.

새 학년 새로 배정받은 학교에서 내 책상이 외부에 있고 창채수업교재로 가득 쌓여 있었고, 온전한 책상은 물론 자기 방까지 있는 교사들의 처우에 비해 너무 열악한 거야.

창채담당 미술교사에게 미술실로 옮기라 했더니 귀찮아 안 된다 하여 교장실에 가서 하소연하였지.

할 말은 하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우울하고 당당치 못 한 나를 본 거야.

내 문제가 꿈에서나마 떠오르니 기분이 우울해.

그렇지만 나잖아.

잘 마치고 갈게.

오늘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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