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서 벨로라도까지, 밀밭의 향연
2023년 5월 15일 월요일, 10일차
Santo domingo de la calzada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 > Belorado(벨로라도), 알베르게 : albergue cuatro cantones
거리 : 22.2km
날씨 : 오전 흐림 오후 비
호~테르에서 잘 잤다.
그리고 호~텔 조식이다.
사진에 서투른 나는 단톡에서 이 사진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내가 고른 식사와 다르다.
빵과 과일과 쥬스로 호텔 아침을 여유롭게 즐겼다.
조식을 마치고 사과 한 알을 주머니에 넣었다.
25명이 한 알씩 넣는다면 25개가 될 터인데,
사과와 바나나와 오렌지를 다 구겨 넣고 싶은 걸 참았으니 훌륭한 걸로.
오늘도 길 위에는 출렁이는 밀밭이 이어진다.
파스텔 톤의 밀과 구름, 하늘을 껴안아 본다.
바람 좋고, 햇살 좋고, 청명한 하늘 좋고, 구름 좋고, 선선한 기운의 온도가 좋고, 이 모든 풍경이 좋다.
언니랑 함께 산 캡 모자가 좋고, 딸이 선물한 호커 신발이 좋고, 나를 위해 마련 한 기능성 옷도 좋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 언니들과 함께라서 더욱 좋다.
아직 덜 익었지만 밀익는 냄새가 코끝으로 전해진다.
그 내음이 너무나 소박하고 은은하다.
어김없이 오늘도 순례길 위에서 성당을 만났다.
순례길 내내 성당이 많이 있으나 그 모양이 조금씩 다르다.
성당을 접할 때마다 엄숙하고 경건한 마음이 가슴에 스며든다.
이 성당을 처음 보면서 나는 한 마리의 수탉이 고고하게 포즈를 취하고 나를 반기는 것 같은 착각을 하였다.
나무가 자연스럽게 벽을 타고 오르면서 이 모습이 만들어졌으리라 생각하면서 나도 모를 신비로움에 빠져들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의 염원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비 소식이 있어서인지 바람이 분다.
같이 가던 하얀 수염의 남자분의 "저길 봐요. 놀라워요"와 함께 출렁이는 밀밭의 향연을 본다.
밀밭의 밀들이 함께 눕고, 함께 흔들리는 것이 마치 교향곡 연주와 같다.
사람 없는 풍경에 내 마음을 담는다.
나는, 나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걷고 있다.
무엇을 위한 발걸음인가?
구름이 앉은 하늘 덕에 몸도 가볍다.
저 구릉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시야가 확보되지 않아도 좋았던 것은 같이 걷는 짝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삶의 곳곳에서 만나는 인연들로 우리는, 나는 풍성하다.
그리고 그 인연의 끈이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하리라.
만남
인연
비움
충만
나를 비움이 곧 충만이리라.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되뇌어 본다.
고개를 넘으니 마을이 보인다.
비 온 후의 안개가 걷히면서 보이는 마을의 모습은, 구름을 머리에 이고 평화롭게 자리한 작은 마을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아낼 정도로 고즈넉하다.
저기가 바로 오늘의 고지이다.
2시쯤 알베르게에 도착하였다.
여장을 풀고, 씻고, 빨래를 해서 넌다.
순전히 바람에 마르던 빨래가 꾸둘꾸둘해 질 무렵, 비가 온다.
빨래를 걷어 침대 난간 여기저기에 걸쳐 놓으면 사람들의 열기로 내일 아침이면 다 마를 것이다.
비가 온 관계로 기온은 더 떨어졌다.
5월에 페팅과 털 모자라니...
언니들이 쉬는 동안 슈퍼에 다녀오고, 저녁을 먹었는데 너무너무너무 춥다.
칼바람에 벽난로까지 지펴지는 날씨이다.
이곳 알베르게는 맛집이라서 단체 주문을 했더랬다.
침대방을 몇 발자국 돌아 나오면 식당이다.
성찬이다.
맛나다.
사람들이 좋다.
오랫만에 마음 편하게 지나온 여정을 이야기하며 포도주와 더불어 멋진 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침대로 가는 문을 나서니 외부 손님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역시 맛집인 게다.
안녕!
오늘도 구름 낀 날씨 덕에 한결 가벼운 걸음이었어.
발목이 아프거나 무릎이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난 컨디션 조절 잘한 덕분에 수월했어.
어제 일요일밤의 호텔은 최고급이었어. 다들 욕조에 물 받아쓰느라 여념 없는데 난, 샤워기로 냉온욕을 하고 비 맞은 잠비랑 옷을 빨았지.
호텔 석식과 조식도 무척 만족스러웠고.
걷다가 오렌지 한 개 먹고는 도착해서 2시 반에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랑 샐러드.
오늘 알베르게가 맛집도 운영해서 7시에 폭립이랑 새우구이를 맛나게 먹었네. 두 언니는 늦게 먹으면 소화 못 시킨다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난 아들이 잘 챙겨 먹으라는 당부를 지킨 거야.
아까 잠깐 낼 도시락 챙기러 마트에 다녀왔는데 칼바람이 불어.
알베르게 주인이 장작을 난로에 넣는 걸 봤는데 라지에타도 데워지고 있더라고.
낼도 비 소식 있고 춥다네.
작년 이맘때 온 사람들이 너무 덥고 산불도 났었다고 했다는데 날씨가 도와줘서 좋아.
길 위에서 ☆☆언니에게
'남편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와 소중해'를 표현하게 되었다 했더니 언니가 스틱으로 박수를 쳤어.
고맙대. 잘 됐대.(내 일처럼 기뻐해 준 언니가 고마워)
오늘도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