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카톡소리

벨로라도에서 아헤스까지, 씨에스타

by 신유연향


2023년 5월 16일, 11일차, Belorado(벨로라도) > ages(아헤스), 알베르게 : albergue el pajar de ages

거리 : 27km

날씨 : 비 (강수량은 적으나 춥고 춥다)


비가 오락가락하며 몹시 추운 하루였다.

추워서 바람막이 잠바를 목덜미까지 올려 입어도 여름 바지가 한기를 막지 못한다.


산마루를 넘는데 구름이 걷히고 햇볕이 쨍쨍하니 등이 따습고 좋다.

첫 휴게소에서 카푸치노 한 잔.

산 밑 카페에서 또르띠아 한쪽과 주스 한 잔씩을 주문하고 어제 사다 놓은 사과 한 개, 빵 두 쪽, 복숭아 한 개, 요구르트 한 개씩을 먹었는데, 점심을 먹었다 하기에는 뭔가가 부족하여 바게트에 속을 넣은 빵을 하나씩 더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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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의 서까래 밑에 붙여 놓은 것들. 천 원짜리가 보여서...

다시 길을 걷는다. 27km, 꽤나 길다.

어제의 컨디션 때문인지 언니의 발걸음이 시원찮다.

"빵 먹고 갈까?"

"둘이 먹어. 나 먼저 천천히 갈게."

쉬었다 가자는 제안인데, 발걸음이 늦은 언니는 쉼 없이, 천천히 가고자 한 것일 것이지만 뒤 쫓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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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능선에서 돗자리를 펴고 앉아 빵을 뜯었다.

발을 쉬는 동안, 바로 곁에 앉은 키 큰 여인의 담배연기 때문에 일찍 일어났다.

무릎 아파서 잘 못 걷는 언니와 천천히 같이 걷는다. 무척 힘든 거리이다.

여행의 묘미는 서로 동행자들이 삶의 여정을 이야기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삶의 생로병사를 어떻게 극복하였는지를 들으며 슬기로움을 배우고, 친한 동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여정동안 더욱 더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를 만들어가야겠다.

언니들과 함께 걷는 길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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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원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는 다른 여행사와는 달리 우리는 각자 나름의 걸음을 걷고 있다.

사람들이 좋은 환경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몸에서 하나 둘씩 탈이 나기 시작하는 걸 본다.

오랜 기간 걷다보니 몸에 나타나는 불편함이 마음까지 불편하게 하는 걸까?

그나마 쌀쌀한 날씨가 도왔으니 망정이지 더웠으면 어쩔 뻔 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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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났던 반려견과 함께 걷는 여인이다.

여인은 쉼터에 이르면 반려견에게 물을 먼저 챙겨준다.

팜플로나에서 시작했다는데 어디까지 가냐고 물었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다.

자주 묻는 질문이 식상해서인지 많이 지쳐서인지 무뚝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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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갔다.

사람들이 단톡에 올라온 피자집과 먹물 순대가 맛있다하여 얼른 가 보았으나, 한 발 늦었다.

이 구간의 씨에스타는 예외가 없는 것이 식당에 앉았는데 조리가 안 된다는 것이다.

다른 식당을 찾아 기웃거리다가 물과 과일이라도 사자며 들어갔더니 슈퍼가 식당을 겸하고 있었다.

노부부가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데, 할머니의 음식에 대한 자부심을 맛으로 인정할 만큼 오지게 좋다.

오랜만에 뜨거운 국물을 넘길 수 있는 수프다.

더불어 닭고기 카레다.

게다가 달꼼한 디저트까지 손수 만드셨단다.(15유로)

먹고 있는 동안, 할아버지가 문을 안에서 걸고는 두 분이서 식사를 시작했다.

노부부의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려 바나나, 사과, 팩 주스를 샀다.

알베르게에 돌아와 앉아 짐을 정리하였다.

양말 발목을 모두 댕강 자르고 보니 이 양말들은 발목의 지지가 부족하여 불편하다며 투덜거렸더니 ☆☆언니가 내 양말을 내놓는다.

언니에게 준 것을 도로 받다니 염치가 없다. 선의로 내놓을 땐 언제고.

(나중에서야 염치없이 도로 뺏어서 미안하다 했다.)


내 몸도 만만치 않다.

누우니 엉덩이 근육이 불편하고 발이 얼얼하다.

남자들도 어깨 아프다, 족저근막염이 생겼다 하고있다.

두들 탈이 나고 있다.

전부 잠자리에 든 시간은 저녁 8시.

얼른 자고 힘을 비축하자.

그리고 잘 걷기.

그것뿐!


잠자리에 든 시간은 8시이지만 가족 단톡방에 여정의 소회와 사진을 남기느라 시간이 경과했다.

10시(한국 새벽 2시)에 읽음 표시가 뜬다.

"누겨? 여태 안 자는 사람이"

"나"

"당신 얼굴이 힘들어 보이지는 않은 것 같아 다행이네.

현재 한국시간 새벽 2시 잠자리에 들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당신 카톡 소리 듣고 답장 중"

묻고, 남편이 보낸 글을 읽고, 내가 대답한다.

그러게.

깊은 밤에 카톡 소리 내는 게 잘한 건가?

혼자서 여행하며 소식이랍시고 남기는 건?

잠자다가 일어나 시답잖은 너스레나 듣게 했구나.

엄청 좋은 공기와 하늘, 초록빛이 넘실대지.

끝없이 이어지는 초록 물결과 꽃들, 나무들, 풍경들이 가득한 너른 들판을 걷노라면 모든 상념이 없어져.

그래도 계속 언니와 함께 하고 있고, 모두를 위한 기도를 놓지 않고 있어.

또 하나, 아픈 데 없이 완주 하고픈 마음 가득하여 잘 자고, 잘 챙겨 먹으려 노력하지.

당신 또한 잘 지내길.

빛나는 하루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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