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헤스에서 부르고스까지, 부르고스 대성당
2023년 5월 17일, 12일차
Ages(아헤스) > Burgos(부르고스), 알베르게 : Hotel Rice Reyes Católicos
거리 : 22.6km
날씨 : 구름.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워.(낮 최고 17℃, 아침 8℃)
묵었던 알베르게를 떠난다.
옆에 있던 한 분은 고맙게도 먼저 사진을 찍어 주겠노라 한다.
덕분에 빠트리기 일쑤인 알베르게 사진이 보태졌다.
여행 중에 먼저 말을 걷어주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분들을 보면 고마움이 앞선다.
내가 먼저 그분과 같이 친절을 베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성격을 나름 생각해 본다.
오늘도 밀밭 평원을 지나면서 한 시인의 시구절을 생각해 본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나는 지금 나그네가 되어서 드넓은 밀밭길의 싱그러움을 가슴 깊이 심호흡하면서 느낌을 맛보고 있다.
네가 이 평원의 주인인가?
내가 이 평원의 주인인가?
누가 먼저도 아니다.
다만 아름다운 자연의 일부가 되어 이 길을 걷는 것 자체가 너무나 즐겁다.
네가 내가 되어도 좋고
내가 네가 되어도 좋고
그냥 하나가 되는 것 자체가 좋다.
길 가다가 만난 알베르게를 선전하는 버스 모양의 입간판에 새겨있는 태극기의 모습에 반갑다.
외국에 오랫동안 나가 있으면 누구나 고국에 대한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한편으로 이 순례길을 걷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돌밭 언덕을 넘어
고지대에 펼쳐진 선인장과 바람을 가득 안고
선인장 꽃이 나를 유혹하고 있다.
바람이 그를 흔듦인데
내가 그를 향하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돌산을 넘은 뒤로는 내내 도로를 끼고 걷었다.
흙담을 하고 있는 빈 집과 인적 없는 마을의 적막감이 우리의 시골같다.
미루나무가 바람에 심하게 흔들거린다.
시원함이 나를 흔든다.
상쾌하다.
또 공항 옆길, 길고 긴 도로 옆을 걷다 보니 멀고 멀다.
숲길과 다른 도심 한복판을 두 시간 정도 걸으니 밀밭이 그립다. 평원의 초록이 좋더라.
도심을 걷다가 만난 도로변 장터.
우리네 장날과 같이 고춧모, 다육이, 포트에서 자란 꽃들뿐만 아니라 채소도 있는데 뭔가 빠졌다.
우리의 목표인 길거리 음식이 없다.
과일도 없다.
이런!
아! 배고파. 허기가 밀려온다.
추운 데다가 도로변인지라 쉴 곳이 마땅치 않아 내리 걷다 보니 한 시 반쯤 호텔 도착.
(도심에 들어가셔서 순례길을 따라 진행하시다 왼쪽에 맥도날드가 나오면 구글맵을 켜서 제가 올려드리는 숙소인 Hotel rice reyes catolicos를 찍어서 오세요.)
구글맵을 사용한 적이 없는 우리는 맥도날드에서 숙소까지 다른 사람을 따라가려고 기다렸다.
맥도날드에 도착하여 햄버거를 먹는 사람, 아직 오지 않은 사람들을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먼저 출발하기로 한다.
드디어 구글 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호텔이라는 희망을 안고 종일 기대했다.
두 시에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서려는데 복도에서 드릴로 뭔가를 뚫고 있는 인부들이 서넛 있었다.
그 분진이 말이 아니었다.
공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와 먼지를 목격하고 로비로 다시 돌아와 가이드한테 말하고, 카운터에 말하고, 그 위 매니저 불러오고 했는데 사과도 없다.
호텔 측에서는 잘못이 없다는 입장이었고, 지금 치우고 있으니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가이드가 순해서인지, 대단한 영어 실력이 동원되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저들은 먼지쯤은 대수롭지 않았는지 다른 대안을 찾아보려는 노력은커녕 사과조차 없다.
싸우고 싶었다. ☆☆언니가 특히 먼지에 예민한 터라 더 걱정이었다.
☆☆언니에게 직접 얘기해 보는 것이 좋겠다 하니 언니가 카운터에 다가간다.
영어의 달인인 언니가 호텔 직원과 말하였지만, 오히려 그들은 고압적이었고 얼굴엔 냉소를 띤다.
"뭐가 문제냐. 지금 치우고 있다."
"먼지 분진이 문제다."
"그게 왜?"
옆에서 보는데 답답하고 속상한데, 말을 섞는 언니는 오죽하랴.
아~괜한 부탁을 했구나.
"언니, 남자들에게 맡기고 저리 가자."
라는 말을 하고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시간 지나면 문제없다는 직원의 말에 impossible, impossible 외치던 아저씨도 멀찌감치 앉아 있고, 외국 바이어들과의 오랜 경험이 있다는 남자는 호텔 밖으로 나가 버리고, 착하디착한 가이드도 누구와 상의하는지 나가서 통화 중이었다.
우리도 포기한다.
최악의 경우 개인적이라도 호텔을 옮기자는 말도 나왔다. 그만큼 심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공간 전체에 먼지가 가득하다. 이 먼지가 가라앉거나 환기로 나가려면 3일은 걸릴 터.
대성당 근처의 스테이크집을 찾았다.
셰프가 붉은 T본 고깃덩어리를 보이며 어떻게 구우랴 묻는다.
그 스테이크에(50유로) 또 다른 고기 접시, 샐러드, 와인을 주문하였다.
덩어리가 큰 스테이크에 추가 스테이크 접시까지 양이 어마어마하다.
먹는 양이 적은 언니와 고기를 즐기지 않는 언니 덕에 자꾸자꾸 먹었으나 남았다.
무지의 소치로, 많이 주문한 죄로 남은 걸 쌌다.(이튿날 길에서 먹었다. 나 혼자)
돈을 걷어서 내가 관리하는 공동경제 구조가 부담으로 다가온다.
부르고스 대성당에 들르고
성당 광장에 놓인 지친 순례자 동상에게서 위안 받고
호텔에 돌아와 보니 모두들 체크인하고 로비엔 아무도 안 보인다.
어휴. 분이 풀리지 않았으나 어쩌리.
직원의 사과라도 받자했더니 전화로 짧게 했단다.
어휴~ 서비스로 점철된 호텔에서 밤새 먼지를 먹어도 크게 다그칠 수 없다니
다르다.
언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무릎에 테이핑을 하고 발바닥 패치를 붙였다.
발이 얼얼한 것을 풀어주는 발 패치가 몇 장 안 남았다고 하니까 언니가 반 쪽만 쓴다.
유용한 아이템을 초반에 너무 넘치게 써 버린 것이다.
어휴~ 발 패치가 진짜 유용한 때는 초반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