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스에서 온타나스까지, 메세타 구간
2023년 05월18일, 13일차
Burgos(부르고스) --> Hontanas(온타나스), 알베르게 : albergue Santa brigida
거리 :31km
날씨 : 맑음( 최저 5, 최고 14)
가장 긴 거리 31km.
아침에 여장을 꾸려 길을 나섰다.
순례길에 여정에 있는 부르고스 대성당을 다시 지난다.
어제와 달리 광장 뒤쪽이다.
아침에 남자 한 분이 기차 타고 마드리드로, 거기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단다.
어제 아침에 길을 나선지 얼마 안 되어 뒤 돌아가던 분이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카톡에 떴고, 알베르게 침대와 벽 사이에 끼어 있던 여권과 돈이 들어 있는 지갑을 찾았다고 다시 소식이 왔더랬다.
목 디스크 관리를 하던 중이었는데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고 한다.
무거운 짐이 부담스럽지는 않을지, 혼자서 가는 길이 무겁지는 않을지 걱정에 무사히 안착하시길 기도한다.
대장의 당부가 단톡에 들어온다.
(부르고스를 기점으로 몸이 안 좋으신 선생님들이 여럿 눈에 보이십니다. 컨디션 관리 잘하셔야 합니다. 순례길을 경기로 본다면 장거리 레이스입니다. 이제 3분의 1을 지났습니다. 제가 모든 분을 케어할 수 없고 말을 안 해주시면 더더욱 알 수 없습니다. 몸이 안 좋으신 분들은 말씀해 주시고 필요하다면 택시 이용도 하셨으면 합니다. )
다시 성당이다.
또 다른 성당이다.
이곳에는 수녀님이 지키고 계셨다.
순례객들에게 인사와 십자가 목걸이와 포옹을 일일이 따뜻하게 해 주시고 있었다.
처음 들어섰을 때, 남미계인 듯한 남자에게 오래오래 덕담을 하는 모습이 들어왔다. 우리도 따뜻한 인사를 편히 나누겠구나 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성당에 들어서니 줄을 서서 대기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옆에서 사진만 찍다가 나왔다.
아직 기다리는 줄에 사람들이 이어져있었는데, 먼저 나온 언니가 줄 안 서냐고 물었다.
"수녀님의 노고가 많아 보여서 나만이라도 덜어 드리고 싶었어요"
부르고스에서 레온까지는 메세타 구간이라 부른다.
거의 평지이고 그늘은 없다.
말 그대로 대평원이다.
길고 멀다.
때문에 순례객들이 이 구간을 건너띄고 다음 구간으로 가기도 한단다.
그늘이 없어 쉴 곳이 마땅치 않다.
바람도 세고 춥다.
그래도 유럽인들은 설령 그늘이 있더라도 굳이 양지 쪽에 앉아 쉬거늘, 괜찮지 않은가?
조금 경사진 높은 곳에 있는 십자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양말을 벗고 요구르트와 과일를 먹는다.
쉬었다가 가실께요. 역시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지만, 겹쳐 입은 옷이 말하지 않는가?
자칫 지루할 수 있고,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길이지만 우리에게는 최적의 날씨가 있다.
5월에 긴팔 옷에 패딩, 내복까지 끼어입을 정도의 쌀쌀한 날씨가 오히려 쾌적하다.
난, 얇은 여름용 바지로는 한기를 견딜 수 없어 춘추용 바지를 장착했다.(그리고 일주일 내내 매일 빨아 이것만 입었다.)
'오히려 몸을 상쾌하게 감싸주는걸~ 상쾌한걸~'
"우린 행운아야. 그치?"
점심으로 빠에야 둘, 주스 둘을 시켰다.
각자 하나씩이면 셋이어야 하거늘.
☆☆언니가 심박하다. 난 치킨 빠에야 하나 다 먹을 거고, 주스도 세 잔이어야 한다 했다.
말인즉슨, 우리 셋의 경제공동체 대신 각자 쓰자는 제안이다.
매번 뭘 먹을지 묻지 말고 각자 주문하고 쓰자는 것인데, 사실 많이 먹는 나는 돈으로 민망했었다.
(언어 능력도 떨어지는 내가, 숫기도 없는 내가, 화장실 가는 것은 일등인) 내가 줄 서는 것이 미안하다며, 그것까지 배려한 것이라는 말에 더 민망했다.
들에서 걷다 보면 아주 많은 꽃들이 있다.
우리나라 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들도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화원에만 있을 법한 종들도 있다.
여기에서 데려다가 개량하고 화분에 넣어 키우고 있었구나.
얘들이 여기에서는 토종이네.
그동안 지나쳐버렸던 꽃들을 찍기로 했다.
온타나스에 입성이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누우니 다리가 쑤신다.
먼저 온 이층 침대 짝꿍이 화장실과 먼 곳에, 남자들과는 겹치지 않는 곳에 침상을 맡았다.
기실 짝꿍을 정한 이유는, 매번, 모든 사람이 아래층만 선호하는 성질 때문에 대자이 정한 룰이다.
짝을 정해 격일로 위에 있는 침대를 쓰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나는 짝의 배려로 아래층만 쓰는 행운을 누렸었는데, 오늘은 일찍 도착해서 자리를 잡은 덕까지 본 것이다.
2층의 경우, 난간이 없어서 자칫 잘못 구르면 떨어질 위험이 있다.
또 계단이 미끄럽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어서 나이 지긋한 우리들은 오르내리다가 다치기 십상이다.
2층에서 떨어지는 사람은 귀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이다.
안녕!
오늘은 31km, 내일은 28km.
왜 걷냐고? 시작한 걸음이니까.
왜 시작했냐고? 삶이 밋밋하여 숙제를 하나 풀고 싶었지. 순례길의 고난을 경험하면 삶이 달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숙제는 풀리고 있냐고? 남편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된 거, 40일을 같이 한 동행자들을 이해하고 보듬으며 폭을 넓히고자 노력하는 거, 병중의 언니와 길 위에서 함께 한 거, 그리고 ···
빨리 현실적인 것으로 돌아가자면 발바닥이 아프고 저려.
아들이 사준 발 패치를 초반에 낭비한 바람에 통증을 참을 수밖에.
염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어. 잘 마무리하고 갈게.
모두들 잘 지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