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길 위의 사람들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에서 떼라디요스 데 로스까지, 길 위의 사람들

by 신유연향

2023년 05월 21일 일요일, 16일차

Carrion de los condes(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플아리오스), 알베르게 : Albergue Los templarios

거리 : 26.4km

날씨 : 흐림


발 패치가 아쉬워 약국에 들렀다.

분명 약사에게 애들이 검색해 준 사진까지 보여줬는데 이 모양이다.

이것은 발바닥의 피로를 푸는 약이 아니라 근육통에 바르는 것. 용도가 다르다. 15,000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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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리온(Carrion)에서 사진을 찍어주고, 찍고 길을 나선다.

걷다가 만난 사람.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내내 쓰레기를 주우며 걷는다는 이.

멀리서 포착하고 언니 뒤에서 걷다가 만나려고 뛰었다.

원더풀로 치하하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 했더니 포즈를 취해준다.

사용한 휴지는 가져갔으면 한다고 했단다.

아~ 그렇다. 지구의 한 켠, 순례길 곳곳의 화장실에 들를 때마다 널브러져 있던 휴지들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이는 그것마저 줍는 것이란 말인가?

[휴지를 쓰지 말던지, 자기가 쓴 휴지는 가져가던지.]

이것은 길을 걷는 내내 화두가 되어 나를 괴롭혔고, 나는 휴지를 쓰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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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아름다운 가족을 만났다.

삼촌인 듯한 남자와 아빠, 그리고 두 딸이다.

길을 걷는 내내 작은 딸은 아빠의 배낭 위에 안착하여 마치 배낭의 일부인 양 가고 있었다.

다음 마을의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훌륭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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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메세타 구간이라 했던가.

아스팔트 옆길, 콘크리트 길, 도로 옆에 난 흙길, 모두 차도 옆이다.

그래도 늦 봄, 초 여름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은 쌀쌀하게, 조금은 강한 바람으로 몸 마저 상쾌하게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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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도 없는 길,

17km를 가야만 카페가 나타난다더니 정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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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 들어서니 먼저 온 사람이 사진을 찍으며 반긴다.

오늘의 식사는 알베르게(Albergue Los templarios)에서 제공하는 삼겹살과 상추이다.

(내일 숙소는 직접 체크인 및 지불해 주셔야 합니다. 숙소 비용 및 저녁과 조식 비용 포함 30유로입니다. 저녁은 삼겹살+ 상추+ 쌀밥입니다.)

고추장이 필요하다.

그 고추장 어디 있더라?


오늘은 할아버지 기일.

이 길 위에서 아버지 기일, 할아버지 기일을 맞았다.

병중의 언니는 조카에게 기일에 쓰라고 떡을 보냈다 한다. 나는 기도만 보탠다.

마침 언니를 방문한 동생이 전화를 걸어주어 언니랑 통화했다.

혼자서 유희를 즐기는 건 아닌지 조심스러워 사진도 안 보냈는데 언니는 날 위로한다.

집 안부도 묻고, 집 걱정도 하라고. 잘 먹고 다니라고. 자신은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 마라고.

사진을 보내라 해서 처음으로 푸른 하늘과 그 아래에서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냈다.

언니와의 통화를 마친 후 동생과 길게 통화했다.

조카가 지난겨울부터 사귀어 온 여자친구와 언니가 만났고, 언니는 그 아이와 오래 얘기했으며, 동생과도 오래 대화했다고 들었다.

큰언니한테 할 말은 많은데 가면 잊고 못 한 말을 편지로 쓰고 언니 앞에서 읽었다고도 했다.

그 장면이 아팠다.

순례길 위에 있는 내가 설명이 안 되었다. 잘 다녀오라고 노잣돈까지 송금해 준 언니이기에 잘 마치고 가서 기운을 전하리라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게 의무를 지운다. 길 위에서 언니를 위한 기도를 할 것과 언니가 내게 어떤 사람이었고 얼마나 고마운지 표현하고 또 표현하겠다는.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은 잘 닦여 있다.

양귀비꽃이 가득 핀 들판이 아름답다.

지금 패고 있는 밀, 노랗게 익은 밀, 수확이 끝난 밭, 다른 작물을 위해 쟁기질을 마친 밭 등 갖가지 색으로 들판을 물들이고 있다.

그 꽃과 파스텔톤의 들판이 청명하기 그지없는 하늘빛과 함께 순례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다.

스스로 누르는 무거운 맘을 달래 준다.

먹는 거에 비해 걷는 량이 많아 얼굴이 조금 야위고 몸의 군살이 빠지고 발, 다리, 골반 등이 조금씩 아파지지만 오직 걷는 일이 전부이기에 괜찮다. 좋다.

잘 닦인 길 위로 다른 걱정 없이 걷는 이 순간은 축복이다.

그리고 고맙다.


그 길 위에는

다리를 저는 여자 옆에서 천천히 보폭을 맞추는 이

작은 딸은 배낭 위에 태우고 큰 딸은 삼촌인 듯한 남자 옆에서 걷게 하는 이

바루 하나 등에 차고 면 티를 입은 이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가는 이

끊임없이 다정하게 대화하는 이

무리 지어 가는 이

자전거 뒤 수레에 검은 개를 싣고 가는 이

큰 개와 함께 걷는 이

산티아고까지 쓰레기를 줒으며 가는 이

독일말, 스페인말, 미국말 등 다양한 언어를 싣고 나를 스쳐 지나간다.

길과 길 위의 사람들

그리고 나

바람과 햇빛과 하늘과 꽃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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