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라디요스에서 베르시아까지, 정겨운 미류나무
2023년 05월 22일, 17일차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떼라디요스 데 로스 뗌플아리오스)→ Bercianos del camino(베르시아노스 델 까미노), 알베르게 : Albergue La Perala
거리 : 23.3km
날씨 : 맑음 (최저 4 최고 20)
바게트와 차갑게 식은 삶은 달걀, 식은 커피.
6:30,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조식이다.
길을 시작해서 도중에 사과 하나 먹은 채 내리 23km를 걸었다.
알베르게에서 나오자마자 풀밭을 걷게 되었다. 순례자 길이다.
표지석에 388km.
산티아고까지 388km 남았다. 800km 여정의 반을 통과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 혼자서 걷다가 함께 걷다가 했다.
뒤에서 오는 언니는 많이 늦지 않는다. 언니는 구글맵 실행도 안 하고, 길 위에서는 카톡도 잘 안 여는지라 멀리 떨어지지 않길 바란다.
차도 옆 길로 걷는 것이 많다.
그런데도 도로에 차가 많지 않고, 차도 옆 순례자 길은 흙과 자갈로 잘 닦아 놓은 데다가 미루나무 그늘이 이어져 있다.
팜플로나시의 순례자를 위한 배려로 느껴진다.
더불어 화창한 날씨지만 바람이 불어 덥지 않고, 기온이 낮아 쌀쌀하기까지 하다.
오늘 만난 한국인 가족이다.
부부와 과년한 딸 그리고 검은 개.
딸의 허리에다 개의 목줄을 매고 걷길래 물었더니 그동안 개를 풀고 다녔는데, 개가 풀숲으로 뛰어들고 뒹굴어 몸에 진드기가 많아 어쩔 수 없이 묶었단다.
등짐은 엄마와 아빠가 매고, 딸은 애완견이 하자는 대로 헤차리 하며 걷고 있다.
한참 뒤에 만났을 때는 온 가족이 멈춰 서 있었다. 개가 지쳐서 걷지 않아 그리한다 했다.
'이게 가족이지···'
오늘 길을 걷다가 남자분이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분은 요번이 네 번째인데, 작년에 부인이랑 왔었다 했다. 한 2년만 지나면 산티아고가 눈에 어른거려 안 올 수 없었노라 했다.
듣기로는 기온이 낮아서인지 감기에 걸렸고, 감기약이 부작용을 낳았고, 잠을 못 잤단다.
같이 걷던 남자분이 "큰일 났네. 내가 최고령자여" 한다.
나란히 걷게 되어, 지금도 일하시냐고 물었다.
하는 일을 아들에게 맡기고 왔다며 자신이 운영하는 곳의 사진을 보여줬다. 사업의 규모가 컸다.
70의 나이에도 일을 놓지 않아서인지 자부심이 대단했고 당당하고 젊다.
헌데 그분 배낭을 보니 한가득이다. 어깨 수술을 왼쪽 두 번, 오른쪽 한 번 했다는데 어깨에 달린 조절 끈뿐인 노스페이스 가방이었다.
덩키에 맡기는 카고 백에 짐이 가득하여 더 이상 넣을 수 없어지고 다닌다는 거다.
우린 결론을 내렸다. 요모조모 쑤셔 넣으면 될 터인데 짐을 잘못 쌌을 거고, 그래도 남는 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의 카고 백에 넣어 달라고 하면 될 텐데 부탁도 못 하고, ···
나는 아는 체를 했다.
'내 거 그레고리 가방은 어깨 끈, 허리 끈, 가방 젤 위의 조절 끈들이 있어서 요렇게 어깨에 가방끈이 닿지 않아야 어깨가 안 아프다.'
'추울 때 걸칠 옷 하나, 사과 한 개, 바나나 한 개, 물만 넣어라.'
'밖에 걸린 수건, 컵들도 덩키 짐에 넣어라.'
'덩키 짐이 많아서 안 들어가면 가이드한테 넣어달라 해라.'
괜한 참견이었다. 오지랖이 지나쳤다.
내 잔소리에 그분 어깨만 더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요기서 사과 한 알 먹었다.
벤치를 골라 앉았다. 난 그늘을, 양말을 벗은 언니는 뜨겁게 달궈진 양지를 선택했다.
길 여기저기 미루나무가 많다.
☆☆언니는 미루나무가 어릴 적 향수를 일으킨다고, 여기는 그 나무가 많아 너무너무 좋다 하였다.
고향에 돌아가면 미루나무(Populus)를 심겠다고도 하였다.
'포플러 잎사귀는 작은 손바닥, 손바닥~
살랑살랑 소리 난다. 나뭇가지에, 가지에
언덕 위에 가~득, 아~아~ 저 손들
나를 보고 흔드네
어서 오라고, 오라고'
가사가 맞나?
이 노래를 부르니 언니는 모르는 노래라 했다.
함께 불렀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걸쳐 놓고 도망갔대요."
오늘은 아들이 추천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는데 그냥 지나치고 내리 23km를 걸어 일찍 알베르게에 도착하였다.
늦은 점심을 먹고 쉬는 중에 언니들과 정담을 나눴다.
☆☆언니는 축구 선수들을 죄다 꿰고 있다. 축구 선수의 개인사도 알고 있다. 축구 경기 관전을 좋아한다 하였다.
길을 가다가도 스페인 사람을 만나면, 스페인 라리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강인(스페인 라리가의 마요르카)을 아냐고 묻기도 하였다.
안녕!
우리 팀들은 50년 대생 그리고 60년 대생 사람들이야.
안식년을 얻어 왔다는 70년 대생(유일한)이 막내야.
모두들 잘 걷고 있지.
순례자로서의 마음가짐이 고귀해서인지 사람들이 참 좋아.
매일 양말과 수건, 바지 등을 빨아 널으며 생각해.
남편이 같이 왔으면 다 해 줄 텐데, 스틱을 접었다 펴 주는 것도 맡겨도 될 텐데, 무거운 것도 짊어져 줄 텐데,...
여기에 부부팀도 있는데 매일 손잡고 다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눠. 특히 남자가 더 많이 얘기하는.
아내는 카페마다 맥주, 식사 때마다 와인을 마시는데 남편은 주스 마시지.
맥주가 길 가다가 자꾸 화장실을 찾게 돼도 상관없대. 우산으로 가려주거나 남편이 가릴 데를 찾으면 된다나.
우리는 이상하다고, 부부라면 그럴 리가 없다며 괜한 너스레를 떨어.
우리 부부는 같이 걸어도 할 얘기가 없어서였을 것.
어제오늘은 욕실 딸린 4인실, 5인실 호스텔, 알베르게라서 좋네.
어제 못 잤기에 누군가 코를 골아대도 잘 잘 거야.
집 생각 조금만 하고 잘게.
내일이 엄마 기일이라고 했더니, 언니들이 성당마다 기도 올려준대. 감사한 마음이야.
나도 추도의 날답게 더 성스러운 걸음 떼 보려고.
그리고 당신이 보내 준 꽃밭의 꽃들을 보며 잠을 청해 볼까 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