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시아노스에서 만시야까지, 선착순
2023년 05월 23일, 18일차
Bercianos del camino(베르시아노스 델 까미노)-->Mansilla de las mulas(만시야 데 라스 무라스), 알베르게 : Albergue el jardin del camino(15유로)
거리 : 26.1km
날씨 : 흐림 (최저 8 최고 23)
오늘도 평원 걷기이다.
아침나절에는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이 드리운 쪽으로 걸었으나 시간이 가면서 나무 그늘이 자리를 옮긴다.
왜 가로수가 한 방향에만 심어져 있을까? 우리나라처럼 길 양편으로 심어져 있더라면 그늘의 혜택을 더 많이 볼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7.4km 걸은 후 첫 휴식처 엘 부르고 라네로(El burgo ranero)를 만났다.
라면을 끓여 팔고 있는데, 줄이 길어서 포기했다.
일본식도 있고, 한국 신라면도 있는 카페이다.
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럽인들이 그게 뭐냐고 묻는다.
당연하지, 무척 맛있어 보이니까.
우리가 먹은 것은 갈리시아 수프와 샐러드이다.
아침을 먹은 후 13km 상당을 걸었다.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은 반대편을 드리우고 있다.
오전 일찍은 나무 그늘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나무는 그늘을 옮겼다.
멀리 미루나무숲이 보인다.
알베르게가 난리다.
2시에 단톡에 떴다.
(한 분은 외국인 남자 3명과 한방 쓰셔야 합니다. 여섯 분은 외국인 10인과 한 방 쓰셔야 합니다.)
먼저 온 순서대로인가! 우리 팀만 들어가는 방에 들어가려는 경쟁이 자못 대단하다.
시간차를 두고 알베르게에 입성하였으나, 주인장이 카페의 손님을 대응하느라 곁눈을 주지 않아 2시 반쯤에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밀히 말해 도착 시간보다는 체크인 순서로 이층 방으로 향한다.
약삭빠르기가 관건이다.
늦게 올라 간 내게 가이드가 여긴 다 찼다며 일명 '외국인 10명과 한 방을 써야 한다'라는 방으로 안내한다. 그 방에 들어서보니 가관이길래 우리 팀만 들은 방에 다시 가 봤다.
두 자리가 남았다.
내가 요기하련다 했더니 이미 짐을 풀기 시작 한 여인이 침상 짝으로 하는 룰이 있으니 짝이 아직 도착 안 했어도 거긴 안 된단다.
엄밀히 말해서 나보다 나중에 도착했지만 체크인이 빨랐던 사람의 말이다.
'왜? 선착순이라며?'
아무 말 없이 여긴 내 자리라고 모자를 얹어 놓고 외국 남자 방에 갔다.
그 방에 들은 언니가 우리 팀 남자들에게 방을 바꿔달라고 말하겠다길래, '그래 그 방법이 있었지'
☆☆언니와 같이 그 방에 갔다.
그 방엔 우리 팀 여자 10명, 부부 2명, 남자 4명 있으니, 남자 2명 있는 저 방에 남자 4명이 가면 어떻겠느냐? 부탁한다. 부탁드린다. 부탁해요.
갖가지 말로 10번 넘게 ☆☆언니가 얘기했건만 답변이 없거나 이상하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 의견은 모르니···"
"우리 넷 중 세 명(우리 셋만 생각) 하고 바꾸면 남자 하나 남는데 어쩌냐?"
"내 자리다. 먼저 와서 자리 잡았는데 왜 바꾸라 하냐"
오호 불통.
대장은 원칙이란다.
어불성설, 어찌 엉망인 선착순이 원칙 이리오.
언니의 애절함이 통하지 않는 걸 지켜보다가 모자를 얹어서 찜 해 놓은 자리를 양보하고 내가 외국 남자, 웃통 벗고 다니는, 빤스만 입고 누운 남자들 방으로 가방을 옮겼다.
혼자서 딴 방에 든 여인도 있는디, 으이그 뭣이 중한디?
엄마와 함께 한 26km.
엄마의 안부를 묻고, 엄마에게 청하고, 엄마를 부르며 걸었다.
어제와 같이 차도 옆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로 걷는 길이 사진으로도, 눈으로도 흡족치 않으나 바람이 불어 덥지 않고 길에 대한 부담이 많이 줄어 마음은 가볍다.
이제 그냥 걷는다가 맞는 말로, 아침이면 침낭을 정리하고 길 떠날 준비하고, 걷다가 요기하고, 알베르게 도착해서는 다음 날을 위해 배를 채우고, 옷을 빨아 넌다.
그동안 외웠던 주문을 읊조리다 보니 소원하는 것이 더 힘찬 걸음을 인도한다.
언니와 가족의 이름을 넣고 외는 주문과, 알베르게에 앉아 독송하는 금강경은 자칫 멍 해지는 걸음에 소금과도 같다.
하나로 통일해서 염원할 수 있도록 종교에 귀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두고 온 것 들에의 집착이 아니라 내게 소중한 것들에 대한 기억과 염원은 분명 나를 키울 것이다.
침대에 눕기 전에 귀마개를 챙겨야겠다.
외국 남자의 코 고는 소리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기 어려우니...
안녕!
날씨도 좋고 연두, 연초록, 초록, 진초록, 황토의 초록의 향연을 눈으로 들으며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어.
경치는 대만족이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지 않고
상념도 없어지지만 마을마다 여러 개의 성당을 지나며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길 기도하고
길 위에서 기도와 주문으로 채우고 있어서 충만해.
이제 절반의 정주를 했고
많이 익숙해져 있고
남은 일정은 수월하게 짜여 있으니
좋은 시간으로 채울 거야.
긴 시간 동안 혼자서 지내는 당신을 고맙게 생각해.
아프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