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시야에서 레온까지, 레온 대성당의 스테인글라스
2023년 05월 24일, 19일차
Mansilla de las mulas (만시야 데 라스 물라스)→Leon(레온), 알베르게 : Hotel & Restaurante Infantas de León
거리 : 18.8km
날씨 : 맑았다 오후에 흐림
오늘은 레온의 호텔 투숙이라는 희망으로 상쾌하게 출발한다.
아침의 상쾌한 기운으로 두 시간 걷고 나니 바람도 한점 없이 뜨거운 햇살 덕에 갑자기 여름이 온 듯하다.
그래도 아직은 춘추용 바지가 거스르지 않을 정도.
첫 휴식처는 6.4km 뿌엔떼 데 비야렌떼(Puente de villarente), 카페 어디가 좋을까?
어제의 말잔치가 생각나서 되도록 만나지 말자는 생각에 사람 없는 카페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카페 안은 조용하고 음악 또한 좋다. 주스랑 빵을 먹고 다시 출발.
다른 날에 비해 걷는 거리가 짧았지만, 도로 옆길은 그늘이 없다.
그나마 나무 그늘이 간간이 있어 다행이다.
휴식을 끝내고 다시 걷기 시작 길가의 미루나무와 청량한 하늘이 나를 반기듯 안아준다.
뭉게구름 사이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조화를 이루며
푸른 도화지 위에 멋진 그림을 다양하게 그려놓은 자연의 아름다움이
나의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안내해 준다.
그리고 도시 외곽에서 중심까지도 두 시간 정도를 더 걸었다.
집들을 장식하고 있는 장미와 꽃들이 새롭다.
많은 거름을 필요로 하고, 정성을 다하여야만 꽃피우는 장미가 이곳에서는 길가에 마구 피어있다.
돌보지 않아도 지천에 피어 있을 만큼 자연환경이 돕고 있는 듯하다
그 꽃들이 아드레날린을 날리며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주고 있다.
저만치 레온이 보일 즈음 자원봉사자를 만났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순례자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온화하고 여유로운 그들의 표정에서 여행자들의 긴장을 무장해제시켜 주고 있다.
거기서 받은 사탕 한 알이 매우 달콤하다. 레온의 거리가 그려진 안내도를 건네주며 "부엔 까미노!" 한다.
길 위에서 숱하게 만난 그 어떤 '부엔 까미노(좋은 길 되세요).'보다 한결 정겹다.
역시 레온이다.
레온 도착은 12시 30분이다.
점심으로 추천된 피자집, 스테이크집을 찾았으나 모조리 닫혀 있다.
한국 같았으면 지금 시간이면 점심이 한창일 시간인데, 이곳은 이 시간은 휴식의 시간이라고 한다.
걷고 걸어 대성당 근처의 식당(El Patio)에 도착.
샐러드와 송아지 스테이크를 주문하는 데 파파고를 이용한다.
여기는 본 요리를 두 번째 요리라고 부르는데, 두 번째 요리 전에 와인과 맥주를 주문하였다.
와인, 비어를 못 알아 들어 '와인 한 잔 주세요', '맥주 한 잔 주세요'를 파파고로 돌려 주문한다.
"Con poca sal(소금 조금만)"
소금이 없는 고기의 맛은 담백하다.
여러 양념에 의해 본래 재료의 맛이 퇴색되지 않은 순수한 맛이 나의 오염된 식욕을 정화시켜 주었다.
깔끔하다는 맛 그 자체이다.
두 번째 요리까지 마치자, 아까 그 총각이 와서는 후식 주문을 요구한다.
'ㅋㅋ 그 총각도 회전이 조금 느렸나?'
말을 하다 말고 '아 참 못 알아듣지'를 생각했는지 웃어댔다.
우리도 같이 웃는다.
그는 모로코인이란다. 스페인어만 하는, 영어는 모르는.
그러나 그의 웃음 속, 그 어떤 선입견도 없는 마음이 전달되어 푸근하다.
씨에스타로 닫힌 카페
1시 40분, 식사 후 대성당에 도착하였는데, 문이 닫혀있다. 성당도 씨에스타!
성당 앞에서 놀다가 호텔로 향한다.
성당들의 모습은 왠지 모르는 경외감을 자아낸다.
엣 수도자들의 경건한 자태가 건물 곳곳에 묻어 있어서인지
성당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그들의 모습을 따라 두 손이 모아진다.
주변의 나무들도 성당의 모습에 위배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룬 조화는
인위적이지 않고 포근하다.
2시 40분 걷기를 마침. 일찍 체크인.
걷기 일정을 일찍 마치니 마음이 너무나 평안하다.
짐을 풀고 호텔에서 느긋하게 쉬려는 언니들을 일으켜 아들이 추천한 투어 시작.
여유로운 눈으로 거리를 배회하며 바라보는 오래된 건물들의 모습은 온화함으로 우리를 감싼다.
대성당에서 시작하여 메인광장, 세인트 마틴 광장, 가우디 보티너스 저택, 산이시도로 바실리카 교회까지 걸었다.
카페에 들러 오렌지 주스와 파이를 나눠 먹었다.
정갈하게 세팅되어 있는 카페의 빵과 집기들은 여행자를 유혹하고 있고,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평화로움이 묻어나고 있다.
18km를 걸은 후의 이 걸음은 오늘의 순례길 걷기에 산정이 안 되었으니 오늘도 평균 거리를 달성한 듯하다.
가우디 보티너스 저택
투어를 마치고 되짚어 오다 보니 대성당이 열려있다. 7유로 입장.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한 교회이다. 세계 곳곳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둘러 본 언니가 뉴욕의 성당, 노트르담 성당만큼이나 아름답다고, 뛰어나다고 하였다.
하늘을 찌를 듯한 성당 첨탑들의 모습은 뒷 배경이 되어 있는 새털 구름의 수채화와 자연스럽게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나를 압도한다.
성당 창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형형색색 황홀한 신기루를 자아내고 있고,
글라스 하나하나에 담긴 장인들의 섬세한 손길에 경외감이 묻어나고 있었다.
기도해야지~
밖으로 나오니 장엄하고 위풍당당한 대성당을 배경으로 장식된 레온(LEON) 글자가 다시 한번 반긴다.
레온을 배경으로 "찰칵"
그러나 나의 모습과 표정이 영 자유롭지 못하다.
내일은 '종일 쉼'이 있는 날이지만, 아들 투어 중에 빠트린 수도원에 가기로 한다.
그나저나 남편은 혼자라서 괴롭다는데 나만 좋아도 되나?
그리고 호텔이 춥다. 담요가 벽장 안에 있는 줄 모르고 침대 위, 이불 밑의 침낭 안에 들어갔다.
고맙다.
편지글을 읽으니 아들의 맘이 전해져 울컥하구나.
며칠 전 이모랑 통화할 때, 네가 장문의 편지를 썼다고 말하더라.
장한 내 아들!
그리 소견이 넓고 깊이 있는 아들은 분명 좋은 쓰임이 있을 것이라 강하게 믿고 있다.
그리고 기도한다.
이모 저 ♪에요. 부모님 통해서 소식 종종 전해 듣고 이모가 얼른 쾌차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이랑도 종종 연락하고 있고요. 저희 부모님이 소식 전하실 때마다 항상 ♪♪이만한 효자가 없다, 정말 대단한 아들이다. 매번 감탄을 금치 못하는데 제가 봐도 ♪♪이 정말 착하고 대단하다 느끼고 있어요. ♪♪이 따라 저도 효자 노릇 해보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이 효심 따라가기가ㅎㅎ.
요즘 부쩍 날이 좋아지면서 예전에 어릴 적 주말마다 양곡리 이모네 집 가서 ♪♪이랑 마을 뛰놀던 때가 자주 생각나요. 논두렁도 뛰놀면서 개구린 줄 알고 잔뜩 잡아온 두꺼비 내다 버린 일도 생각나고 밤에 논에서 쥐불놀이도 하고 겨울엔 썰매도 타고. 작은 계곡에서, 마을 앞 내천에서 물놀이하던 것도 생각나고, 이모가 해주신 밥 먹던 것도 생각나고. 되돌아보면 조부모님 댁에서 놀던 기억은 거의 없는데 이모네에서 놀던 기억이 엄청 많아서 저한테는 이모네 집이 편하고 재밌는 유년 시절 추억이 많은 조부모님 집 같은 기억이 많이 남아있어요.
제가 제 또래에 비해 시골에서 할 수 있는 즐거운 추억들이 전부 이모가 베풀어주신 소중한 경험들 때문이었는데 그간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었네요. 어릴 적부터 버릇없고 무덤덤한 조카 무한히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야 알게 됐지만 제 내면에 항상 이모는 엄마보다 더 강직하고 든든한 어른으로 인식하고 의지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이모는 제 엄마한테도 할머니 다음으로 의존할 수 있는 엄마 같은 존재이시라는 걸 어른이 되고 나서 많이 느끼고 있고요. 저 뿐만 아니라 저희 엄마가 의존하고 의지할 수 있는 그늘 같은 분으로 여러모로 저희 가족 보살펴 주시고 계신 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이모.
찾아뵙고 싶어 종종 엄마나 ♪♪이한테 연락은 했었는데 스님께서 기도 중이시고 되려 기운 뺏는 일일 수도 있다 하여 찾아뵙지는 못했지만 항상 제게, 그리고 제 엄마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얼른 쾌차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좋아지는 날씨처럼 이모 건강도 좋아져서 곧 유년 시절 추억처럼 양곡리에 놀러 가서 주말 보낼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그때는 제가 서울에 맛있는 복정식 포장해 갈게요.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습니다.
조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