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온에서 산마르까지, 가족단톡방
2023년 05월 26일, 20일차
Leon(레온) → San martin del camino(산 마르 델 까미노), 알베르게 : Albergue Vieira
거리 : 25km
날씨 : 구름 많음, 비 약간
오늘의 순례길은 레온 대성당 광장까지 간 후 길을 잡아야 한다.
어제 젤라또 사러 둘러 본 답사 덕에 지름길을 택하였다.
순례길 표식이 없는 골목에 들어서니 어제와 마찬가지로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들 모습이 정겹다.
"역시 이들은 성당의 종탑과 성벽이 들려주는 옛 숨결을 그대로 마주하며 살고 있구나, 과연 이들은 이 아름다운 혜택을 어찌 해석할까?"
나도 200여 년(1810년 완공)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성당의 일원인 양 포즈를 다시 취해 본다.
레온에서 자유여행 시간에 즐겼던 어제의 그 길을 다시 걷는다.
하루 쉰 탓에 흐름을 잊으면 어쩌나 했는데, 골반이 조금 아픈 걸 빼면 무난하다.
도심에 난 길, 그늘 없는 길, 차도 옆으로 걷는 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도로교통을 최고로 잘 지킨다더니 맞는 말 같다.
이들은 초록불이 켜지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넌다. 아이들이 있어도 상관없고, 차가 지나가도 상관없다.
'우리도 눈치껏 건너야지 뭐, 까이 껏'
드디어 횡단보도를 건너고 건너서 어제의 수도원, 박물관과 호텔로 쓰이고 있는 그곳에 도착하였다.
어제의 자유여행 중 접했던 그 순례자 동상님께서 오늘은 고독하게 나를 반긴다.
그늘 없는 길이 이어져서 그런지 순례자들이 그냥 지나치고 있다.
'거기 계신 님, 서운해 마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어제의 행보가 스쳐 지나가는 대상물도 정겹게 만드는 재주를 부렸다.
차도 옆길을 오래 걷는다.
도심을 나와서도 마을과 마을을 잇는 차도 옆을 걷는다. 차가 거의 없을 뿐, 차도 옆길이다.
다행인 것은 빗방울이 간간이 떨어지거나 흐려서 옮기는 발걸음이 무겁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옷깃을 여미는 선선함이 좋다.
레온으로 오기 전에 덥기 시작하여 이제 본격 여름이구나 긴장했었는데 흐린 날씨 덕을 톡톡히 본다.
우비(판초, 비치마, 스패치)를 덧입어도 덥지 않으니 말이다.
앞으로의 남은 일정의 날씨도 누군가의 은혜일지 모르지만 계속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힘차게 발걸음을 옮긴다.
박★★님의 딸은 엄마의 식도락을 위해 매일 카페, 식당, 바 등의 링크를 보내주고 있었다.
고맙게도 곁에서 그걸 나눔 받고 있다.
보통은 그것들이 길가에 있거나, 단톡방에 올려주는 맛집과 겹치게 되어 몇몇의 팀원들이 함께 가게 되는데 오늘은 다르다.
비가 와서인지, 카페 바깥에 인기척이 없어서인지 다들 못 보고 지나친 듯하다.
들어서니 카페 안쪽으로 한적한 식당이 따로 자리하고 있었다.
점심으로, 전체 요리 샐러드, 두 번째 요리 포크(파프리카 구운 것. 감자튀김 곁들인), 후식 바나나, 커피.
모두 12유로라는 착한 가격도 좋으련만,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고 바나나를 배낭에 챙기니 두 끼를 대접받은 기분이다.
언니는 두 번째 요리로 생선을 선택하였다.
내 접시도 모자라, 언니가 떼어 준 생선 한 조각에 욕심을 냈다.
아뿔싸~ 맛을 음미하기도 전에 목에 가시가 걸렸다.
친절하게도 가시를 발라서 줬건만, 급히 삼켜서 그랬을까, 가시가 걸리고야 말았다.
가시가 목구멍에 가로로 걸린 듯 많이 아팠다. 화장실에서 손가락을 넣고 토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다.
쾍 쾍 거리기를 여러 번, 더 고통스럽고 얼굴이 빨개지며, 벌건 눈에도 눈물이 맸혔다. 화장실까지 따라와 준 언니가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괜찮아?' 묻는다.
효과 없이 돌아와 앉아서 내 접시에 있는 감자와 고기를 덩어리째 삼켰다.
그제야 가시가 빠지고 목구멍이 편안해지고 안도하게 되었지만 분위기는 싸~하다.
언니가 준 가시?
내가 못 삼킨 가시?
소화력 짱인 나이건만 접시를 다 비우지 못했다. 소식인 언니의 그릇엔 생선이 반 토막 이상 남았다.
길 걷는 내내 언니가 준 것인지, 내가 못 받아 낸 것인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미안해 언니. 지금은 괜찮아. 금방 좋아졌어'
흰머리 아저씨는 엄청난 친화력의 79세 일본인이다(우리와도 만난 적 있다. 아니, 계속 만난다). 같이 식사하는 두 분은 한국인.
길에서 자주 마추치는 일본인 아저씨, 그는 친화력 짱이다. 혼자 다니는 그는 오늘도 한국인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 일행이 먼저 식당을 떠나고 우리도 일어났다.
후식으로 나온 바나나는 길 위에서 먹자며 배낭에 넣었다.
바나나가 우릴 다시 행복으로 민다.
조금 전까지 목에 걸린 가시로 인하여 많이 괴로웠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무거운 기운이 사라졌다.
지친 발걸음이 소소한 것으로 가벼워질 수 있음을 다시 느낀다.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다가 그치고, 다시 긋고 그치고를 반복한다.
잔뜩 흐린 하늘이 자외선을 차단해 주고, 열기도 식혀 주니 금상첨화다.
이 날씨의 조화는 누구의 덕일까?
지난번에 말했을 때, 가이드가 얼른 "내 덕이요" 하기에 맞장구를 쳤지만, 내겐 언니다.
울 언니는 착하다. 울 언니는 부처다. 울 언니가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울 언니가 날 여기에 데려다 놨다.
'언니야, 아프지 말자. 언니야, 가족들 품에서 많은 얘기 나누고 오래오래 있어줘'
길 위에서 만나는 아름 모를 야생화 만큼이나 반가운 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풀들이다.
'세상 어디나 같구나!'
바랭이, 여뀌, 고들빼기, 마타리, 으아리, 하눌타리, 아이비, 씀바귀, 금불초 등등
군집한 큰 참새귀리가 밀밭의 곡식마냥 당당하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덩키 짐이 우리 셋을 포함, 여섯 개가 남아있다.
늦은 듯, 늦지 않다.
오늘의 알베르게는 4인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재빨리 샤워실로 가야 한다. 보통 2개, 3개의 샤워실이 다이기 때문에 기다리기 마련이다.
전날 짐을 꾸릴 때, 미리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 빨랫비누, 수건 등을 가방 열자마자 꺼낼 수 있게 따로 챙겨 놓는다. 수건이 없어서 옷으로 닦거나, 갈아입을 바지가 없어서 하의 실종인 상태로 뛰는 꼴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방수가 될 수 있게 조정 줄이 매달린 주머니도 필수이다.
샤워 후에 마당에 가니 빨랫줄 넉넉하고, 빨래집게가 바구니에 가득하다.
소소한 친절에 행복이라니~
준비물에 분명 빨래집게가 있었건만 5개만 챙겼으니 항상 부족했기에 오늘은 양말 한 짝에 집게 하나를 쓴다. 또 양말 한 짝에 집게 하나, 손수건에 집게 하나, 바지에는 집게 두 개, 속 옷도 감추지 않고 집게 하나씩, 대 풍성 잔치다.
그런데 4인실 방에 콘센트가 하나뿐이란다.
플러그 3구짜리가 준비물에 있었다며 ☆☆언니가 짠하고 내놓는 바람에 또, 다 같이 행복하다.
널은 빨래가 마르기 전, 침대에 누우니 4시.
'고스톱 한 판 해야 되나?'
누워서 읽는 카톡 방이 바쁘다.
충남시민재단에 우리 모임의 기부금을 어떻게 쓸 것인지 지원 의뢰하였다 했다.
사곡면의 초등학교에 다니는 형제와 함께 엄마의 나라, 베트남에 가기로 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맡아서 진행하겠다던 팀원이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 하여 재단에 도움을 청하기로 한 것이다.
공주 이야기 창작소에서는 로고 디자인 중이라 했다.
정안마을지 표지안 1안, 2안, 3안이 카톡에 올라와 1안에 한 표를 던졌다.
이장님께 가정용 태양광 설치하겠노라 신청했다.
공주이야기창작소 한 멤버의 수술이 잘 되었다는 얘기가 흐뭇하게 오고 가고 있다.
돈이 들고 나는 통장의 내역이 빠짐없이 보인다.
나는 이곳에 실재하건만, 나의 시간은 그곳에서도 흐르고 있다.
여기 시공간에서 보는 세상도 내 것이고, 저기에도 내 것이 있다.
그곳에 돌아가리라. 그리하여 눈앞에 두고 하나로,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리.
그대들 그때까지 안녕하시라.
오늘 아들이 집에 와서 같이 밥 먹고, 심심하지 않았어.
사는 것이 고행이라는 데, 과연 삶이란 것 자체에 어떤 의미 부여가 좋을까?
가끔 초라하다 생각하다가도 어떤 거든 가치가 있는 거지, 나름 열심히 사는 거지하는 생각에 웃네.
여보 많이 힘들지. 천천히 즐거운 마음으로 완주하길 바라.
앞으로 13일의 도 보일 정이 남았어요.
울 착한 아들이 아빠를 많이 위로하네요.
내 걱정은 말아요.
금강경을 몸에 지니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있어요.
교회마다 드리는 기도가 좋으니, 그 또한 힘이 되지요.
잘 마치고 갈게요.
그대도 잘 지내요.
삶의 가치의 척도는 나만의 것이겠죠!
착한 아들, 딸이 있고, 자기 길을 당당히 가는 아내가 있으니, 당신은 최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