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마르틴에서 아스토르가까지, 공립알베르게
2023년 05월 27일, 22일차
San martin del camino(산 마르틴 델 까미노)→Astorga(아스토르가), 알베르게 : Albergue de peregrinos Siervas de maria
거리 : 24.8km
날씨 :구름 많음 (최저 9, 최고 23)
밤잠을 못 이뤘다.
26일 아침에 호텔 조식과 함께 커피, 점심 식사 중 목에 걸렸던 생선 탓에 목에 난 상처로 인하여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돼지고기와 커피, 그리고 저녁에도 커피.
씨에스타가 거북스러워 언니들은 저녁을 패스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저녁을 먹지 않기로 하고 잠을 청하였다.
시간이 지나 진짜 저녁때가 되자, 배가 고프기 시작됐으나, 이미 늦었다. 다들 먹자 하며 나간 뒤였다.
고픈 배를 참으며 잠을 청한 탓일까?, 세 잔의 커피가 원인일까?
나는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어서 풀거나 잠을 자거나 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이건 거꾸로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잠이 안 오는 상황이다.
배가 고프면 잘 수 없다는 그 간단한 진리를 이제야 터득하다니.
굶주림을 모르는 삶을 찬미할 것인가? 잔뜩 먹고 잠자리에 드는 습관을 탓해야 하는 것인가?
그냥 커피의 카페인 때문이라고 하련다. 편하게.
시기를 놓치고 새벽 2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잘 자는 사람들을 시기했다. 괴로웠다. 나만 잠 못 드는 밤이 억울했다.
그러다 뒤척임 끝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평소와 같이 기상시간 6시에 일어난 나의 몸 상태는 약간 찌푸듯하다.
오늘의 일정에 별문제 없으리라고 마음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괜찮아, 하루 못 잤을 뿐인걸~'
밤에 내린 비로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출발하면서 모두들 일출을 즐겼다. 아침 해가 구름을 붉게 물들인다.
해가 뜨면서 벌겋게 달궈진 하늘을 카메라에 담다가 셔터를 눌러준다.
'찰칵'
길을 가다가 만나는 마을은 갖가지 이야깃거리들을 담고 있다.
큰 다리를 건너 건넛마을에 들어가는데, 뭔지 모를 깃발이 나를 반기고 있다.
우리나라의 마을특성화사업처럼 허수아비, 바람개비, 장승 등을 마을 입구에 세우는 컨셉 쯤으로 여겼다.
우리들 중에는 구글을 이용하여 성당의 주소를 저장하거나 나무 이름, 마을 이름의 유래, 성당에 깃든 이야기 등에 관심을 갖고 찾기를 즐기는 사람들도 있으련만, 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냥 내 맘대로 본다.
'찰칵'
그보다 나의 마음이 끌리는 것은 집집마다의 꽃밭이다.
길가에는 가꾸지 않는 장미 덩굴이 무성하게 꽃을 피우거나, 콘크리트로 회칠한 마당에 구멍을 내어 나무를 심거나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만큼이나 정성과 사랑으로 가꾼 정원을 만나기도 한다.
담장 너머까지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장미를 보거나, 꽃들이 정갈하게 핀 것을 꽃밭을 만날 때는 여지없이 발길을 멈춘다.
클레마티스 덩굴을 창가 담벼락에 엄청나게 피어 올린 여인을 만났을 때, 그 여인에게서도 향기가 나는 듯했다.
담벼락에 기대어 핀 요 백합의 꽃송이들이 모두 열릴 때는 어떨지?
그때도 '함께 하고 싶어~'
백합이 향기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뚜렷하게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주듯, '나 여기 있어요'를 알리고자 누른다.
'찰칵'
한 포기에 열 송이의 꽃이라니!
단톡에서 안내 한 오스삐딸 데 오르비고( Hospital de orbigo)를 지나치기로 했다.
우리에게는 어젯 저녁에 사다가 놓은 과일과 빵이 있기에.
좀 더 걷다가 사람이 많은 카페에 들어섰다. 이런 카페의 이점은 눈치 보지 않고 화장실로 직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화장실이 카페의 안쪽, 알베르게 옆이라서 편하게 사용하였다.
카페에는 주문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어 밖으로 나와 앉았다.
거기에서 배낭의 바나나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껍질은 가방 속으로 재빠르게 들어갔다.
테이블을 닦으며 왔다 갔다 하시는 할아버지께 미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음식을 주문하지 않으면 잠가놓은 화장실 키를 주지 않는, 아니 돈까지 완벽하게 지불해야만 키를 줬던 주인장도 있었으니까.
조금 있다가 언니가 카페에 합류하였는데, 길 위에서 바나나를 먹었노라며 바나나와 커피를 주문하였다.
'다행히 화장실 값을 언니가 치렀네'
입 싹 씻고 앉아 있는데 태극기가 걸려있다며, 기념이라며 '찰칵'
오전에는 시원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자외선이 강해지고 덥다.
비 갠 후의 하늘이 그려낸 뭉게구름의 시원함도 잠깐, 언니는 가우디 저택에서 산 모네 그림의 양산을 펼쳤다.
황토 자갈길을 걷는 오늘도 길가 밀밭의 푸르름과 맑은 하늘의 뭉게구름과 함께 하고 있다.
발걸음이 가볍다.
거의 돌밭과 흡사한 이런 토양에서도 밀밭 평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노고가 경이롭다.
그 속에 내가 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거두는 사람이 같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 속에 내가 있다.
아름다운 풍광과 하나가 되어 나의 존재를 잊고 '물아일체'가 된다.
12시 50분.
Venta Chaqueto 에서 점심.
버섯과 껍질콩 등이 들어 간 밥을 오믈렛인 듯한, 국물 있게 볶은 것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ㅋㅋ 여전히 사진이 음따) 음식 사진에 익숙지 않는 우리는 사진 찍기가 염두에 없다.
두 가지 갈림길에서 조금 빠르다는 고속도로 옆길 대신, 산길을 돌아가는 마을 길을 택하였다.
어, 길가에 '흐미~ 무서운 거'
담벼락 위에 올린 허수아비 세 마리.
구멍으로 얼굴을 표현한 것이, 귀신 형상과 같아서 많이 놀랐다.
무슨 뜻으로 저리 했는지 궁금했으나, 다른 마을에도 이런 게 걸린 걸 봤으니 유추컨대, 단연코 (순례자를 위한) 작품이다.
멀리서 허수아비에 놀랐던 마음이 우스워 다시 살펴보니 오히려 허수아비들이 우스꽝스럽다.
'찰칵'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뒷모습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남긴다.
아내의 배낭까지 두 개를 짊어진 남자와 등이 비어있는 여자, 그들의 모습이 정겹고 고맙다.(ㅋ 왜 아내지? 뭘 안다고?)
핸드폰을 꺼내 뒷모습을 찍자 하면서도 그냥 지나친 사람들.
'찰칵'
걷는 도중 돌 틈에서 피어있는 야생화들이 우리들을 앙증맞게 반기고 있다.
"우와 조그만 것이 너무나 선명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네"
너도 나도 감탄사를 연발한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야생화들의 강인한 생명력과 이들을 피워낸 자연의 비와 이슬들의 생명수가 이토록 아름답게 피도록 도왔구나.
각각의 모양으로 나를 보아 달라는 냥 너무나 앙증맞다.
돌 틈에서조차 피워내느라 고전분투했을 것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얘야! 고생했다'
'얘야! 어디서 왔니?'
'얘야! 자갈들에게 무슨 이야기할래?'
'얘야!, 얘야!, 얘야! ······'
이제 거의 다 왔슈~
'찰칵'
오늘은 유일하게 일정 중에 잡힌 공립알베르게. 7유로.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이런 공립알베르게가 영업을 못 하게 되면, 숙소가 부족하여 체육관 바닥이나 바깥에서 잘 수 있도록 매트리스를 깔아준단다.
스페인은 0층부터 시작한다. 우리나라 2층이 1층이다. 무거운 가방을 들고 2층 방까지 계단으로 옮겼다.
1. '어휴~ 이럴 때, 남자는 1층, 여자는 2층이라니······'
2. 침대에 1회용 커버를 먼저 씌우라고 재차 말하는 것이 괴이하다.
보통은 사용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키는 수칙인데 왜 강요 비슷하지?
"엄마, 침대에 오르기 전에, 꼭 침낭부터 펴세요. 배드 버그는 침낭을 못 뚫어요."
울 아들이 당부했던 것 같은데···
3. 화장실, 샤워실은 남녀 공용에, 누르면 5초인 듯 10초간 물이 나오는 샤워기는 물 온도 조절 기능마저 없다.
비누 칠하고 샤워기 버튼 누르기를 수 천 번.
수건 하나 빠는데 수만 번.
4. 빨래집게가 모자라다. 층층이 매어 놓은 빨랫줄의 앞 열은 이미 다 찼다. 중간 열을 찾아 겹겹이 빨래를 넌다. 집게도 모자라다.
빨래를 널고, 바깥마당에서 통하는 주방으로 들어섰다.
주방엔 테이블도, 화구도, 냄비도 넉넉하다.
테이블에 앉은 한국 아줌마 둘이 뭔가를 먹고 있다. 라면과 햇반이다. 밑반찬도 보인다.
번거롭게 씨에스타 때문에 7시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될 그녀들이 살짝 부럽다.
빨래를 널고 있는 나를 '찰칵'
빨래를 널고 들어와 3시부터 누웠다. 어젯밤에 못 잔 덕에 금방 코를 골았나 보다.
달콤한 한숨을 자고 나니 기운이 돋는다.
자는 동안 바깥나들이를 마친 언니의 목소리가 명랑하다.
언니는 자신의 빨래를 장미 옆에 널었다 했다. 나는 못 본, 장미꽃 옆에 있던 빨랫줄이 언니를 웃게 한다.
아이스크림 먹으러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 우스웠다 했다.
나의 꿀잠은 언니의 장미와 아이스크림으로 대치되었다.
아이스크림으로 요기를 끝낸 언니를 남겨두고 저녁을 먹으러 광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곳 거리엔 씨에스타가 없는 바가 여럿 있었다.
광장에서 돌조각상에 걸터앉아 바나나를 먹는 자매를 봤다. 나들이 나온 아이들이 바나나 먹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내가 바나나를 먹는 모습이 어린아이 같아 보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즐거웠다.
우리가 간 식당은 씨에스타 없이 종일 연단다.
꽤 많은 수의 젊은이들이 서빙을 하고 있었는데 여긴 영어가 통한다.
닭고기 빠에야 맛이 영 아니다. 고기 냄새가 나고, 밥은 설익고, 역시 짜다.
오늘은 잊지 않고 먹기 전에 '찰칵'
이른 저녁을 먹고 광장 끝까지 걸었다.
언니가 들렀다던 아이스크림 가게도 지나고, 초콜릿 가게에서 무엇이 있나 구경도 하고, 남자 노인들이 야외 테이블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카페도 지났다.
슈퍼에서 아침용 컵라면과 오렌지 주스를 사고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드는데 나만 빼고 다들 힘이 남아도는 듯하다.
다시 잠을 청한다.
흐물거리는 몸과 천근만근인 다리를 눕힌다.
분명 잘 잘 터이다.
안녕!
밤새 잠 못 들고 깨어있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들었어.
내 사전에 누운 채로 다섯 시간 이상을 잠들지 못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왜 그걸 여기에서 경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잠 못 이루는 고통은 조금 알겠더라고.
덕분에 걷는 내내 걸음이 무거웠어.
게다가 햇살마저 뜨겁고 기온이 오른 바람에 힘겨움이 가중됐을걸.
그래도 괜찮아. 하루뿐인걸.
잘 잘게.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