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그냥 따라 걷는다.

포르토마린에서 팔라스까지, 스페인 클레마티스

by 신유연향

2023년 06월 05일, 31일차

Portomarin(포르토마린)→Palas de Rei(팔라스 데 레이), 알베르게 : Albergue San marcos

거리 : 24.8km

날씨 : 오전 맑음 오후 2시 비 ( 최저 13, 최고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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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토마린에서 앞선 사람을 무심코 따라가다 뱅 돌았다.

가다 보니 까미오 표식이 없다.

그냥 걷는다더니 그냥 따라가기도 하는구나.

아침 6시에 기상하는데, 요기를 하고 행장을 꾸려 나서기까지는 한 시간이 안 걸린다.

조금 늦었지만 어제처럼 일찍 도착하기로 맘먹었다.

햇볕이 뜨거워지면서 그 편이 더 수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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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9시까지 안개가 자욱하다.

바로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아스라한 실루엣이 마음을 차분히 젖게 한다.

안개가 이어지고 있어 시야에 안 들어온 걸까? 그들보다 일찍 출발한 탓일까?

어제의 새 신발 부대들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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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5_100123.jpg?type=w773 카페에서 즐기는 코스요리
20230605_103044.jpg?type=w773 어린 클레마티스를 한 주에 4만 원씩 샀는데, 여긴 길가에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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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신발 부대 대신 엄마랑 둘이 다니는 초등학생이 길 위의 스타였는데 그들을 드디어 만났다.

'이름은?'

'엄마의 뒷모습은 몇 장 찍었나요?'

'사진에는 무엇을 담았나요?'

묻고 대답하는데 모자의 반응이 상쾌하고 밝다.

"너무 일찍 어른은 되지 마세요."

나의 당부가 적절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일찍 경험한 길 위의 날들은 분명 다른 어른으로 키울 것이라 믿는다.

아~ 내가 나이 마흔일 때는 어땠는가?

아이의 엄마도 꽤나 깊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살짝 부러웠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

억울하고 슬픈 일만 가득한 일기장이 아니라 매사에 감사한, 감동 가득한, 아름다운 기록으로 채웠더라면 산티아고에서 얻은 감사, 감동, 고마움의 교훈을 그때도 배웠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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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지금, 여기를 느끼고 감사하기.

걸으면서

"며칠 전에 2층 침대에서 내려오며 미끄러져 다친 발목이 아파요."

"어제부터 어깨가 아프네요. 그래서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했더니 언니가 한 말이다.

언니의 조언을 받아 얼른 맘을 바꿔 지향 기도하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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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배추에 콩 두 알 들어간 갈리시아 수프와 소갈비다.

단톡방에 올려 잘 먹고 있다고 알리고 있다. 혹시나 내가 지치지는 않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하는 걱정을 덜어주는 방편이다.

남편은 고추밭의 풀을 뽑느라 힘들어 삼겹살을 구웠지만 맛을 모르겠노라 했다.

'그래 역시 나밖에 없는 겨'

단톡방에 올린 밥상이 부럽다.

밭에서 딴 오이를 무치고 가지와 삼겹살을 구워 풋고추를 곁들여 차린 밥상 사진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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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km를 카페 두 번 빼고는 줄곧 걸었지만 늦은 편이다.

어제 뙤약볕을 피하고자 천천히 쉬면서 걸은 덕분에 3시 넘어 들어온 사람들이 오늘은 덩키짐 오기 전에 도착했단다.

우린 모두 제대 말년의 선수들이 틀림없다. 맘먹은대로걷는 시간을 줄일 수도, 늘일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들보다 많이 늦은 언니는 길 바로 옆이라는 말만 듣고 다른 알베르게에 들어가 3층까지 문을 열며 다녔다 했다.

알베르게 이름을 명확하게 하지 않은 내가 미안해하니까 다른 알베르게 생김도 구경하고, 아무렇지 않게 방문을 여는 실례도 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그게 더 재밌었다고 위로한다.

지친 몸으로 남의 알베르게 3층까지 올랐지만 최상의 긍정을 끌어내는 언니의 장점이다.



모두 천천히 준비하여 성당으로 향했다.

일명 3번방의 투숙객 일곱 명이 전부 미사에 참석하기로 하였다.

성당은 알베르게 바로 위쪽에 위치해 있었는데 미사 시작 전이라서 아래쪽 골목을 구경하였다.

슈퍼에서 간식과 물을 사고 성당에 올라가 미사를 보는데 자꾸 뒷 목덜미가 가렵다.

아~ 또 심리적 발작인가?

계속 가려워 목덜미를 손으로 문질러 보니 손바닥에 죽은 벌레가 묻어있다.

슈퍼에 다녀오는 동안 나뭇가지에서 벌레가 떨어졌나 보다.

미사가 거의 끝날 때까지 참았다.

그러고는 뛰었다.

숙소에 돌아와 샤워, 빨래.

마침 미사가 정확히 끝난 시간에 비가 쏟아져 모두 젖어서 들어오고 있었다.

어차피 그들도 샤워, 빨래다.



안녕!

아침 출발 시 무심코 따라가다가 뱅 돌았어.

무심코 걷는다더니 무심코 따라가더라고.

6시에 기상하는데 모두 준비하고 행장을 꾸리는데 선수들이 되었어.

세수와 참낭정리, 가방을 챙기고, 간단히 우유, 빵, 요구르트, 사과를 먹는 데까지 한 시간이 안 걸리는 거야.

걷는 부담이 줄어든 요즘은 삼삼오오 늦은 밤까지 맥주, 와인까지 마시느라 분주하기까지 해.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걷기에 자신을 믿는 거지.

어제저녁에도 식사하러 알베르게에서 운영하는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사람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더라구.

친해진 김에 사돈이라 부르기도 하고 아주 유쾌해.

지나가던 내게도 앉으라 했지만 술보다는 밥이지.

걸으면서 언니에게 말했어.

"며칠 전에 2층 침대에서 내려오며 미끄러져 다친 발목이 아파요."

"어제부터 어깨가 아프네요. 그래서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했더니 언니가 '행복은 지금, 여기를 느끼고 감사하는 거예요. 지향해 보세요. 훨씬 발걸음이 가벼워질 거예요.'라고 하는 거야.

언니의 조언을 받아 얼른 맘을 바꿨어.

'오늘 이 발걸음, 이 통증, 어깨를 누르는 무게 모두 바칩니다. 아들의 이직이 8월 말에 완성되어 쓰임 크게 하소서. 갑자기, 불현듯 아들이 찾는 일자리가 나오고, 잘 인지하고, 그동안 준비한 것들이 면접관들에게 좋게 비추어 인재로 발탁 되게 하소서.

저의 발걸음을 옳게 쓰소서.'

여보!

여기까지 가족 단톡방에 글을 쓰다가 다시 읽으면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네.

'그래, 난 소시민이고 평범한 인간이고 나를, 내 가족을 사랑하는 작은 인간이구나.'

그래도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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