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곡물저장고 오레오

팔라스에서 아르수아까지, 십자고상

by 신유연향

2023년 06월 06일, 32일차

Palas de Rei(팔라스 데 레이)>→Arzua(아르수아), 숙소 : Albergue San francisco

거리 : 29.2km

날씨 : 아침 맑음 오후 2시 부터 비 (최저 13, 최고 27)


아침으로 사과, 빵, 우유, 주스.

내리 비를 맞는다는 갈리시아 지방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내내 비는 없었다.

오늘의 날씨는 최고 28도.

아침나절 빼고는 엄청 뜨겁다. 반팔 옷을 입고 선크림 없이 다녔더니 팔뚝이 따갑다.

몸이 나른하고 얼굴이 벌겋다.

오르막이 많고 숲이 끊기는 구간도 만만치 않은 데다가 29.2km라니!


길에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눴다.

언니의 부모는 소학교를 다녔기에 일본어로 비밀 얘기를 나눴다는데 다정한 부부를 연상케 하였다.

언니의 외삼촌과 이모 이야기는 한 세대만 건너띄어도 애달프고 슬픈 역사가 넘치는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좋은 머리를, 좋은 집안을, 좋은 부모를, 좋은 나라를, 좋은 시대를 갖고 못 갖고의 분별은 현재에의 만족감을 넘지 못 하리라는 생각으로 마무리되었다.

또한 길에서 만나는 활발하기 그지없는 젊은이들을 보며 청춘이 아름다운 만큼 여기에 어울려 있는 내 모습도 아름다우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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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말을 하는 단체객들을 만났다.

이들은 중간중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문을 함께 나누며 걷는다.

뒤에서 걷다가 사진을 찍고 싶어서 앞으로 달려나갔으나 미안한 마음에 사진이 흔들렸다. 다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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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의 스페인 순례객 들이다. 이들은 걷는 도중 중간중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하며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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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초반에 강하게 뜨거운 커피가 당겼으나 화장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간식으로 바나나, 사과, 빵을 먹으려 두 번 잠깐 쉬었고, 카페에서 주스 마시며 한 번 쉬었다.

멜리데(Meilde) 마을에 들어서자 단톡방에 올라온 맛집, 문어 집 Pulperia A Garncha(Melide)이다.

어찌나 한국인이 많은지 식당 밖에서 문어를 굽는 사람이 "맛있어요"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역시 식당은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서 우리도 문어 한 접시를 나눠먹고 콜라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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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렐로스 산 소안(성 요한) 성당의 십자고상이다. 한국 상현동 성당에도 이 십자고상의 카피본이 있단다.

(십자가 못에서 분리된 오른손을 아래로 뻗은 그리스도는 용서와 도움을 청하는 우리에게 더 가까이 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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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시아 지방에서 만나는 곡물 저장고 오레오(Ho′rreo)이다.

집집마다 다른 모양과 크기를 갖은 것이 높게 설치되어 있어서 우리나라 대갓집에서 세운 솟을대문일까 했었다.

이것은 설치류의 피해를 막기 위해 지상에서 떨어지게 지어졌고, 곡물을 저장하는 용도에 맞게 통풍이 잘 되도록 만든 구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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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 가장 긴 코스라니.

그동안 단련된 몸이 무엇이든 해 낼 것 같더니만 30km에 긴장되었다.

더군다나 날이 뜨겁다.

그만큼 어려웠는데 3시 반에 도착하고 보니 주방이 끝났다며 식당에서 손님을 거부한다.

식당 안에는 음식을 즐기는 사람이 아직 남아있었고, 이제 3시 조금 넘었을 뿐인데 앞치마를 두른 남자는 배고픈 순례자를 향해 손사래를 쳤다.

허기진 배를 채울 따끈한 수프는 없다. 기력 보충을 위한 스테이크도 없다.

동네를 돌다가 문을 연 피자집으로 들어갔다.

어쩔 수 없이 먹는 피자는 뜨거운 햇살만큼이나 거북살스러웠다.

가뿐히 받아넘길 수 있으려니 한 더위가 맛있는 음식으로 보상되었으면 좋았으련만 아쉬움 가득하다.

그래도 작년엔 이 뙤약볕에서 순례길 내내 겪었다니 며칠 이어진 여름 날씨를 탓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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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해가 쨍쨍한 시간에 누우니 방 가득 들어온 햇살로 아늑함을 느낄 수 없었다.

언니가 아이스크림 먹자 해서 산책 겸 나갔다 돌아온 시간이 저녁 7시 40분.

아직 해가 지지 않았고, 비가 오려는지 후덥지근하다.

빨래를 걷어야 한다. 또 저녁시간에 비다.

잠을 청한다.

삶을 평온하게 하소서.

평안한 삶을 이루게 하소서.

평화가 넘치는 아름다움을 누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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