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덮어주세요.

아르수아에서 오 페드로우소까지, 감춰주세요.

by 신유연향

2023년 06월 07일, 33일차

Arzua(아르수아)→ O pedrouzo(오 페드로우소), 알베르게 : Albergue Cruceiro

거리 : 19.2km

날씨 : 아침부터 오후 2시까지 비 (최저 16, 최고 24)


출발부터 도착까지 비가 내리다가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그친다.

우중의 걷기는 어제의 뙤약볕보다는 수월하고 거리도 짧다.

가지각색의 우비 출현으로 같은 팀원도 구별이 어려울 정도이다.

함께 걷게 된 대장부 포스의 팀원이 막내의 가던 길을 막았다.

"사진 좀 찍어 봐. 우리 다섯 명의 누님들!"

노란 우비를 휘날리며 걷던, 잠시 휴직 중이라는 일명 '막내'가 멈췄다.


그녀는 엊그제 브래지어를 배낭 뒤에 달고 다녔다.

배낭에 달고 다니는 브래지어를 걷으라고 말하려 했는데 못 따라잡았다고 하니 그래도 얌전히 뒤쪽이 보이게 걸었노라며 도착해서야 다 말랐다고 했다. 중간에 걷을 이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어찌나 날래고 씩씩한지 빠른 걸음일 때는 쫓아갈 수가 없다.

어찌나 사교쟁이인지 혼자 다니며 온갖 나라의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혼자, 둘이서 온 한국인들과 섞여 밥 먹고, 차를 마신다.

20230607_072646.jpg?type=w773
20230607_075217.jpg?type=w773
20230607_090008.jpg?type=w773 길가 카페 담벼락에 붙여서 키우는 신발 속 식물들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도과 스님이 가르쳐 준대로 병증을 물리치는 염불과, 칠성경을 되뇌며 걷는다.

돌아가신 엄마, 아버지를 위한 기도를 함께 드린다.

'부디 평안하시고 언니의 평화를 부탁드립니다.'

SE-9a19dd71-b85c-47f4-9218-afe9e40a01ee.jpg?type=w773
20230607_090025.jpg?type=w773
20230607_092704.jpg?type=w773
SE-baf1fd5b-3d74-445b-b903-00a6bd6177af.jpg?type=w773
20230607_092751.jpg?type=w773
SE-f510954f-d142-4767-a85d-82b574285c19.jpg?type=w386
20230607_092836.jpg?type=w386
20230607_092854.jpg?type=w773
SE-5d588e16-ac67-482f-9f7c-7938c03fb31a.jpg?type=w773
20230607_104839.jpg?type=w773


비가 오니 조금씩 산만해지고 어수선한 틈을 타고 갑자기 요실금 증세가 나타나서 긴장을 하였다.

세월 앞에 장사 없음을 인정하되 꾸준히 체중조절과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SE-5d104ddd-d5f6-40bb-868c-2abbe678a6ab.jpg?type=w773
1686150428794.jpg?type=w773
SE-f2938834-57d9-4ab5-a68b-f0747fe0b394.jpg?type=w773
SE-6cb3d023-6dd5-431a-bc1d-a3e5cd8e195d.jpg?type=w773
SE-f0d61bac-aabd-45b1-8914-dc158c4ea742.jpg?type=w773


도중에 세 곳의 카페에서 커피, 두 잔의 주스와 빵, 바나나를 먹으며 걸은 거리는 19.2km.

다행히 짧은 거리여서 일찍 도착하였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식당 이름이 O KM 19이다. 이제 0Km까지는 19Km가 남았다는 뜻일 거라고 해석했다.

내일 남은 거리 19Km를 걸으면 드디어 산티아고 데 콤페스텔라, 즉 0Km에 도착하는 것이다.

첫 번째 스파게티, 세군도(두번째) 스테이크, 후식으로 멜론 한 조각을 먹었다. 15유로이다.

1686150470720.jpg?type=w773 식당에 들어가는 내 복장은 반팔 티에 반바지이다.
SE-f33d1aa4-c912-44ae-a615-797c00f9c4a4.jpg?type=w386
SE-1e30da65-c3cb-4bd1-b77f-a7bcdbb28c72.jpg?type=w773


알베르게에 돌아와 비옷을 널었고, 금강경 독송을 하였다.

오늘은 언니의 병중 평안 기도를 올린다. 가족들 옆에서 편안하게, 큰 통증 없이, 평온한 모습으로 지내길, 집에 돌아가 언니의 얼굴을 보고 즐거운 얘기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SE-876c8b6c-2c3b-431f-bf73-4ceb6abda976.jpg?type=w773


너무 이른 시간인지라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맥주 한잔하러 길을 나섰다.

가는 도중 일명 '막내(여자)'를 만났다.

맥주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5유로를 주웠다며 지폐를 팔랑거려 보인다.

주운 돈은 얼른 써야 한다며 막내를 되돌려 같이 걸었다.

길가의 맥줏집에 하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여서 앉을 곳이 없었다. 하는 수없이 바의 안쪽으로 들어가 스탠딩 음주를 시도했다.

맥주로 불콰해졌으니 잘 잘 수 있겠다.

SE-4ba4a599-36c4-4fcd-ad97-61aea8ecdff5.jpg?type=w773


그동안 산티아고 통신이 어떠셨나요?

준비과정에서 호카신발과 등산화, 양말을 챙겨 준 딸, 유용한 물품인 팩, 발패드, 글루텐, 수면안대를 챙겨 준 아들, 짐 꾸리는 것부터 떠나는 날까지 물심양면으로 돌봐 준 당신, 모두 고마워요.

때로 걱정해 주고, 때론 응원해 줘서 큰 힘이 되었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이제 산티아고데폼페스텔라에 입성합니다.

여러분!

디어 신○○이 800km의 대장정을 마치고자 합니다.

삶의 찬미는 그들의 놀이 일 뿐이라고 낙담했습니다.

어찌 긍정이 먼저 이겠냐고, 내 눈의 가시를 부각시켰습니다.

네, 사람들이 말 하는 찬미는 허울일 뿐이라고 치부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걸 몰랐던

삶은 아름다운 걸 크게 깨닫지 못했던

충고와 조언, 평가, 판단을 무기로 휘둘렀던

그 날들의 일기를

오늘 이 마음으로 감추겠습니다.

다 같이 감춰주세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32. 곡물저장고 오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