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레네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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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6일 토요일
첫걸음, 피레네산맥을 넘는 여정
혜초여행사에서 모집한 산티아고 순례길은 25명이 출발하였다.
5월 4일 밤 비행기로 두바이를 향했고, 두바이공항에서 환승하여 마드리드공항에 도착, 버스로 프랑스 생장까지 갔다. 거기서 1박 하고 오늘부터 걷기 첫날이 된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은 잘 아는 언니 두 명과 함께 팀을 이루어 서로를 의지하며 걷기로 하였다.
약 800여 키로의 길을 34일간의 여정(총 40일)을 정하여 일정 구간씩 걷기로 되어 있다.
이번 순례 여행길이 내게 무엇을 던져줄지, 내가 무엇을 받을지 정해진 것은 없지만 잘 마치고 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목표이다.
가톨릭 신자로서 걷는다면 더 성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나 나름대로의 소망과 염원을 담아 나름의 성스러움을 기록하고자 한다.
그 가운데에 걷다가 스치는 나의 상념들, 나의 삶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오늘의 일정은 생장에서 시작하여 1,400m 고도를 넘는 24.2km, 피레네산맥 여정(Saint jean pied de port - Roncesvalles(론세스바예스)) 이다.
첫 발이고, 고도를 넘는 길이고, 거리가 꽤 길어서인지 겁이 난다. 그래서인지 우리 대장이 쉽지 않은 길이니 무리하지 말라며 택시를 탈 수도 있다 했다.
해서 두 여인은 일정 구간을 택시로 이동하기로 하고 23명이 시작한다.
다행히 최고기온이 26도를 오를 것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비가 올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바람 좋고 햇살 좋다.
첫 번째 쉼터는 오리손 산장.
와~ 드디어 많은 블로거들이 담아내던 그 풍경이다.
사실 블로거들의 글을 읽은 적 없이 그냥 떠난 나로서는 알리 없는데 이 산장이 명소란다.
아담하게 돌로 쌓아 올린 산장의 모습은 주변의 자연과 어울리는 것이 내 생각인 양 금방 동화되었다.
우선 여기까지 온 내가 대견했다.
시작을 했다는 생각에 흐뭇했고, 마주하는 풍경이 더없이 좋았다.
드디어 그 말로만 듣던 착즙주스 타임이다.
이렇게 피로를 풀어주는 풍경과 맑은 공기와 주스 등 요소요소들이 있으니 800km 장정도 문제없으리라.
바람이 많이 불지만 즐겁다.
해가 쨍쨍하건만 덥지 않다.
피레네산맥들의 구릉 안에 있는 것이, 넓은 품에 안긴 듯 벅찼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긴 여정에 속에 들어와 있음이 실감 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의 겹겹 산들과는 다르게, 경사가 완만하여 등산이라고 느껴지지지 않을 정도로 힘겹지 않고, 오르면서 조망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확 트인 시야 덕분인지 마음이 넓어진 느낌이다. 그저 반갑고 즐겁고 행복한 마음이어서 오르는 내내 주변의 사람들 모두가 사랑스러웠다.
너무 즐거워서인가?
'지금 어떤 기분인가요?' 어쩌고 하면서 언니들과 비디오 찍기 놀이도 하였다.
어젯밤 알베르게는 생전 처음 겪는 다인실 취침이었다.
한 공간에서 많은 사람들이 잠을 청하는 것도 생경한데, 코 고는 소리는 더욱 그랬다.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오랫동안 다시 잠들지 못한 것이다.
좁은 공간에서 돌아눕고, 침낭의 지퍼를 올렸다 내렸다, 추운 날씨 덕에 끼어 입었던 잠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며 계속 부스럭거렸는데, 오히려 그 소리에 잠 못 이룬 사람도 있었나 보다.
게다가 어떤 이가 기상시간이 6시임에도 불구하고 4시 반부터 비닐 소리, 지퍼 소리 등을 보탠다.
그 와중에 누군가가 모두 잠에서 깼으니 불을 켜자고 하였다.
어차피 다 깨어있는데, 어둠 속에서 부스럭거리느니 다 같이 길을 나설 준비를 하자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우린 모를 일이었다.
대장이 올라왔다. 아래층 방까지 움짐임이 들린다고.
이렇게 먼저 행동하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된다고.
모두들 쥐구멍을 찾을 수밖에.
'어이쿠 죄송합니다'
하루 20km 이상 걷는 것에 대한 부담이 낳은 결과이다. 서로 민감한 상태이고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피레네산맥!
잠이 부족한들, 약간의 지적을 받았던들 무엇이 대수랴.
넓게 펼쳐진 산맥의 기운이 충분히 보상한다.
맑고 청명한 풍경과 그곳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과 거기에 있는 내가 있으니 그로써 충분하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웅장하고 여유로운 자연의 위용들에게서 앞으로의 길도 평안하고 순조로우리라는 전조를 느낀다.
기실, 떠나기 전에 내 몸을 단련시켜야 했건만 그러지 못했다. 그것이 부담스러웠고 걱정이었는데 이 길을 만나고 나니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이제 하루 6시간 내지 8시간을 걷는다 해도, 하루 걷는 거리가 20km를 넘어 30km가 예고되어 있어도 두렵지 않다.
오르는 중 숨이 헐떡여도 즐겁고 여유로워져 온갖 것들이 아름답다.
자연이 나를 안도하게 하는 것이다.
굽이굽이 넘으며 만나는 소 떼와 양 떼들이 나를 위로한다.
평화로운 산들의 유영 속에 자리 잡은 집 한 채는 마치 거기에 가 있는 듯, 내 집인 듯 동화된다.
꽃들도 나무들도 모두 모두 예쁘고, 무엇보다 함께 하는 이들이 있어 고맙다.
길 옆에 난 작은 꽃들은 또 얼마나 앙증맞고 예쁜지.
2023.5.6
데이터 통신이 정말 꼴아서 어제 하루 종일 안 됐어.
데이터 아낀다고 껐더니 아예 로밍이 차단되기도 하고.
제일 어렵다는 첫날 코스를 앞쪽에서 잘 마무리했지.
대장이 25명을 예약한 알베르게에 미리 배정까지 해 놓으니 편리해. 우리끼리 묶여서 들기 때문에 외국인들과 겹치지도 않고, 기다리지도 않아서 좋아.
게다가 스페인 현지 가이드가 며칠 동안 따라다니며 안전 확인도 해 주고 정보도 주는 덕분에 맘이 편해. 걷기만 하면 되니까.
여행할 때, 혼자 있는 아빠를 걱정한 적이 없었는데 슬슬 올라오네.
힘든 걸음걸이 속에서도, 지금처럼 시차 적응하느라 새벽 3시에 깨어도 염원하는 바를 계속 기도하고 있어.
모두들 안녕하자.
사랑해. 남편, 아들,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