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초의 기도

키 작은 포도나무

by 신유연향


2023년 5월 10일

Puente la reina(뿌엔떼 라 레이나) -->Estella(에스떼야), 알베르게 : Alda estella hostel

여전히 청명하고 바람도 솔솔 부는 날!

오늘의 일정을 알리는 Cmino De Santiago Frances 표지판에는 19.7km를 알린다.

이 정도의 거리는 큰 무리없다며, "껌이야"가 나왔다.

쉬어가며 걸어도 넉넉히 6시간이면 될 일이기에, 출발 전부터 마음이 산뜻하고 가볍다.

오늘도 주변의 자연 경치를 가슴에 품으면서 가리라.


뿌엔테 레 레이나(Puente la reina)

Arga강 위의 다리가 두 마을을 잇는데, 다리 이름이 마을 이름인 일명 왕비의 다리이다.

6개의 아치로 이루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다리인데, 미처 카메라에 담지 못했다.

같이 걷는 길 위의 남자가 나눠준 쿠키도 냠냠!

아치형 다리의 연륜과 세월의 무게가 너무 오래된 듯 고풍스럽다.

나도 모르게 세월의 무게를 느끼고 싶어 다리벽 난간에 앉아도 보았다.

풍수에 마모되고 퇴색된 난간석에 손길을, 사람들의 발길에 매끈하게 닳은 바닥석에 나의 발걸음을 더 한다.

20230510_072051.jpg?type=w773


순례길에서 벗어난 옆으로 난 길 위에 앉아 쉬어가기로 했다.

우리도 풍경이 되었는지 뒤따르던 이가 우리를 카메라에 잡는다.

골담초, 산부추, 히아신스, 당아욱, 여뀌, 밀밭, 강낭콩 밭, 해바라기 등 꽃들이 길 위의 나를 달래고, 함께 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30cm 남짓하거나 그보다 낮다.

아주 낮은 키의 포도나무 모습에 나도 저렇게 키워 봐야지 하다가 맘을 바꾼다. 풍토에 알맞은 재배법이 있기 마련이니까.

땅이 척박한 것 같은데, 새순이 서로 앞 다투어 올라오고 있다.

길을 걷는 도중 숱한 포도밭을 지나면서, 어떻게 밭을 가는지, 어떻게 순을 따 주고 풀을 매는지를 볼 수 없었지만 사람의 손길이 이루어 낸 아름다움이란 진리를 알고 있다.

이들의 포도나무에 대한 사랑은 주택가의 담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콘크리드 한 조각을 떼내어 식재한 포도나무는 기생하듯 안착되어 풍경이 된다.

20230510_085401.jpg?type=w773
20230510_092948.jpg?type=w773 ▶ 이 방법으로 키워보리


내가 찍은 사진이 맞나?

저 멀리 빨간 지붕의 집과 곧게 자란 초록의 나무, 파란 하늘의 하얀 뭉개구름의 조화는 한 폭의 수채화 그 자체이다.

가지 않은 길.

그곳에 여전히 십자가가 보이건만 들판 너머의 저 곳은 순례길에서 벗어나 있다.

누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자연이 빚어낸 조화 속에 깃들어 사는 사람풍경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보거나 보지 못하거나,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는 것들은 스스로의 몫이다.

내 몫을 챙기며 걷다가 작은 마을 길로 접어들었다.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여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운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230510_091813.jpg?type=w773
1683728055215.jpg?type=w773
1683728061624.jpg?type=w773
1683728033763.jpg?type=w773
1683731026200.jpg?type=w773
1683731088255.jpg?type=w773


길을 걷다가 Albergue De RORCA에서 점심 한 상을 받았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으로 스페인 남편은 위층에서 요리하고 아내가 한국인이다.

감자와 계란을 섞어 만든 또르띠아가 특히 맛있다.

보통의 카페 풍경과는 다르게 부인은 우리를 자리에 앉히고, 주문을 받았다. 한국과 같은 정서의 대접에 어리둥절하여 물으니 특별히 한국인을 대접한단다.

그래서였을까? 요리된 접시를 가지고 2층에서 내려온 남편이 인사를 해서 일까? 또르띠아가 더 푸짐하고 맛있다.

1683731088566.jpg?type=w773


다 걷고 알베르게에 들어왔다.

큰 가방에 넣은 짐들을 매일 꺼내고 정리하는 꼴이 유목민 같았다.

헌데 가만히 보니, 배낭 각을 채우는 파우치, 무거운 조리도구, 매일 다른 옷, 갖가지 먹거리와 소품들이 화려하고 많아서 그 비유는 가당치 않다는 생각에 피식 웃는다.

슈퍼에서 체리를 샀다.

체리와 바게트로 저녁식사 중.

현지 4시 40분(한국 밤 11시 40분)

알베르게 식당에서 체리와 바게트를 먹는데 언니가 눈을 감고 있길래 졸리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지금 한참 졸릴 때야" 한다.

"나는 시차 적응 다 했어"라며 잘난 체를 했다.

"이건 시차 적응의 문제가 아냐 "

잠을 잘 못 자는 선배 언니의 졸린 눈이 전염되었는지 저녁 8시부터 누웠다.

20230510_143902.jpg?type=w773


오늘도 길을 걸으며 언니에게서 따뜻한 말을 들었다.

장원리에 땅이 있어 집을 짓고 싶은데 "신샘같이 너그럽고 배려 깊은 사람이 같이 하면 좋겠다"라 했다.

길 위에서 얻은 칭찬이 좋다.

산을 배경으로 아담한 집을 짓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모습을 상상했다.

이렇게 여행을 와서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서로에게서 동질감을 찾아내고 표현하면서 잊고 있었던 노스텔지어를 소환한다.


매일 만나는 성당에서 3초의 기도를 드린다.

"제가 드리는 모든 기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로써 충분하도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6. 길 위에서 죽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