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교훈은 무엇인가!
전쟁기념관의 1층에 있는 전쟁역사 1실을 방문했다. 나만의 전시 관람을 해본다. 대략적으로 깊게 하지않고 30분 정도 훝어보는 내용이니 전공자가 깊이 볼 내용은 아니고, 어린 자녀 및 역사에 관심이 깊지 않았던 이들의 입문용 교육에 참고하면 적당할 것이다.
처음에 내눈을 사로잡는 것은 주먹도끼였다.
주먹도끼는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돌을 잡고 있으면, 팔은 도끼자루이고 돌은 마치 도끼의 날과 같다. 과거 사람들은 이 주먹도끼로 사냥하는 등 여러가지 동물의 가죽을 찢는 등 여러가지 용도로 사용했다. 마치 현대인의 스마트폰과 같고, 이는 구석기인들의 도구를 직접 제작할 만큼 지능과 손재주가 발달했다는 의미이다.
그 다음은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비파형 동검이다. 우리나라의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왕조는 고조선입니다. 이 고조선의 영역은 우리는 이 비파형 동검의 발견장소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럼 비파형 동검은 왜 비파형 동검일까요? 그것은 중국의 전통악기인 비파와 같이 생겨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다음은 삼국시대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문은 삼국시대의 무덤 입구를 의미합니다. 삼국시대의 중요한 유물은 주로 망자를 위한 무덤에 매장하였으며, 무덤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삼국시대는 철기시대로 진입을 의미하며, 많은 무기가 발전합니다. 또 여러 국가들간의 전쟁도 잦아지면서 무기도 발전하지요. 여기 보이는 고구려 안악3호분을 보겠습니다. 저 크게 묘사된 인물은 귀족 및 상류층을 의미합니다. 특히 그를 호위하는 갑옷으로 무장한 기병들을 볼까요. 저들은 바로 고구려의 핵심 전력인 개마무사입니다.
개마무사들은 비늘갑옷 또는 미늘 갑옷을 입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작은 물고기 비늘 모양의 소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죽 끈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따라서 몸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체도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미늘갑옷으로 마갑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무장한 개마무사들은 4세기에는 호위용으로 그 역할을 했으나 5세기부터는 오늘날 전차와 같이 적에게 돌진하는 돌격대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개마무사들로 고구려는 동북아의 강국이 될 수 있었지요.
또 고구려는 한반도의 방패로서 6세기말 이후 중국의 통일왕조 수당의 침략을 막아내었습니다.
백제는 기름진 한강유역에 국가를 자리잡고 중국의 문화를 해로를 통해서 받아들였습니다. 특히 중국의 문화를 백제화하고 일본에 전달하는 문화의 징검다리 역할도 하였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유물이 칠지도입니다.
칠지도에 써있는 글귀는 백제 근초고왕이 일본에게 이 7가지의 가지가 있는 검을 하사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를 보아서 백제는 일본 고대문화 형성에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백제에 대표 유물 금동대향로를 보이는 중갑기병은 백제에도 고구려처럼 기병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라는 한반도의 가장 구석에 있어서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나 신라는 고구려와 힘이 쇠약해질때 백제와 손을잡고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한반도 고대국가로 기틀을 마련합니다.
특히 신라의 화랑은 귀족 중 용모가 단정한 이들이 선발되어 이들은 충성, 효도, 우애, 생명존중 등 모범적 행동을 실천하고, 전투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도 보여줍니다. 이는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끄는 김유신, 화랑관창 등 이 화랑출신입니다.
삼국간의 존망을 걸린 전투가 계속 치열해지자 신라는 강대국인 당나라와 손을 잡고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립니다. 고구려는 계속된 전쟁과 내부분열로 인해 무너집니다. 당나라는 신라에게 평양 이남의 땅을 차지하라고 약속하지만, 점차 곳곳에 도호부를 설치하며 한반도를 차지하려고 합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 백제 유민드로가 힘을 합쳐 당나라와 맞서싸우고, 매소성 기벌포 전투와 당나라는 국경이 넓습니다. 이때 오늘날 티벳에 해당하는 토번과의 싸움도 길어지자, 한반도에서 물러납니다.
이로서 우리는 한반도에 최초로 통일된 국가가 들어서게 됩니다. 고구려백제 유민도 신라의 백성이 되니 드디어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이를 신라는 통일된 이후 대표적인 무인은 장보고입니다. 장보고는 본래 낮은 신분이나 엄격한 골품제 사회인 신라를 떠나 이민족에게 개방적인 당나라에서 무력과 용맹함을 인정받고 무령군이르느 군대의 소장이 된다. 신라의 시골 청년이 세계 최강국 군대의 고급장교가 되었으니 큰 출세를 하였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는 장보고를 신분이 낮은 청년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당나라와 신라 모두 국가가 어수선해지고 혼란스러워져 해적이 날뛰자, 장보고는 신라로 돌아가서 이들을 소탕하고 청해진을 설치합니다. 해적이 사라진 바다에서 청해진은 동북아시아의 경제중심지가 됩니다. 이런 번영은 장보고의 용맹이 있어기에 가능하지요. 여기 청해진의 목책이 있습니다.
그다음 발해 발해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합니다. 발해는 해동성국이라고 불리며, 큰 세력을 떨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때 한반도 남쪽에는 신라, 북쪽에는 발해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실학자 유득공은 발해고라는 책에서 이 시대를 남북국 시대라고 불렀고, 이 시대에 우리민족은 한반도와 만주, 연해주까지 그 세력을 널리 떨칩니다.
이제 고려시대가 됩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 유물은 팔만대장경입니다. 이 팔만대장경은 외적의 침입때 불교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고려인들의 염원이 담긴 문화재입니다.
신라가 힘을 잃자, 우리 한반도는 다시 후백제와 후고구려로 나워집니다. 이를 후삼국 시대라고 합니다. 후삼국시대를 통일한 사람은 고려의 왕건입니다.
왕건은 발해가 멸망하자, 발해유민도 받아들이고, 우리민족의 새로운 통합을 이루어냅니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일대에 세력을 떨치는 정복왕조들과 투쟁을 벌입니다.
대표적으로 요나라의 거란, 이들은 세차례 고려를 침공합니다만 우리는 결국 귀주대첩에서 이들을 물리칩니다. 그다음 금나라의 여진, 여진족이 공격하자 윤관의 별무만을 조직해 이들을 물오내고 동북 9성을 세웁니다.
그리고 원나라의 몽골, 1206년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은 서로는 유럽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동쪽으로는 우리 한반도까지 그 세력을 넓힙니다. 몽골침입기간 중 우리는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어 항전합니다. 당시 우리 국토는 몽골에게 유린당하고 많은 문화재들이 파괴됩니다.
그러나 신분이 낮은 백성들이 힘을 합쳐 몽골군과 싸웁니다. 대표적으로 처인부곡에서 김윤후가 이끄는 의병이 몽골군 사령관 살릴타를 사살합니다.
6차례의 침략끝에 우리 고려는 원나라에게 항복하고 부마국이 됩니다. 그리고 여기 칼을 보면 칼코가 생깁니다. 삼국시대 환두대도보다 발전된 이지요. 칼을 찌를때 손이 칼날쪽으로 미끄려지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고 몽골의 강요로 일본침략에도 2차례나 참전하게 되지요. 여기 몽고습래도회사라고 당시 상황을 그린 일본그림입니다. 여기 봐요 근대 뭔가 불이 있습니다. 당시 사용하는 화약무기입니다. 이제 화약무기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근데 고려는 일본원정 이후 100년이나 지나서 화약무기를 개발합니다. 당시 최무선이라는 과학자가 중국 상인에게 화약무기 만드는 법을 배우고 고려에 화통도감이라는 관청이 생깁니다.
이때 고려는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남해안이 황폐화 되는데, 이때 화약무기로 진포대첩에서 왜구를 격퇴합니다. 그리고 왜구는 내륙일대에서 노략질을 하다 이성계가 이끄는 부대가 왜구를 황산에서 격퇴합니다. 여기 황산대첩의 탁본이 있습니다. 이때 이성계는 백성의 영웅이 됩니다.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때 이런한 백성들의 인기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자 이제 여기는 조선의 수도 한양을 지키는 한양 북쪽을 지키는 북한산성으로 들어갑니다.
조선은 무과가 치뤄집니다. 고려에는 무과가 없었습니다. 이는 조선 무인이 전문성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조선은 개국 이후 전쟁이 크게 없었습니다. 세종때 여진족을 몰아내고 오늘날 국경선을 완성하고, 왜인들이 난리를 일으켰으나 이는 국가운명을 위협하는 전쟁은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이는 국방력이 약화로 이어집니다. 이때 일본의 전국시대를 끝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에 이어 중국과 인도까지 그 세력을 떨치겠다는 망상에 빠져 1592년 우리를 치니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입니다,
여기 보시면, 부산성과 동래성에서 왜군과 싸우는 우리 관군과 백성들입니다. 특히 동래성에서 기와집에서 기와를 던지는 백성들의 모습은 눈물겹습니다. 현재 부산 수인역에는 이때 희생된 우리 선조들의 유골과 흔적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조총을 앞장세워 우리를 공격합니다. 조총은 장전시간이 오래걸리지만, 배우기 쉽고, 또 화약소리가 우리에게 심리적인 공포를 주었습니다. 따라서 여진족을 격파한 신립 장군이 기병을 이끌고 탄금대에서 이들과 맞서싸우지만 무너집니다. 그리고 한양을 내줍니다.
그러나 의병들이 일어섭니다. 마치 아까본 몽골군과 싸운 고려의 처인부곡 사람들 처럼요. 특히 여기 곽재우의 칼이 있습니다. 곽재우는 붉은옷을 입고 싸워서 천강홍의장군일고 불렀으며, 지형지물을 이용한 게릴라 전법으로 왜군을 괴롭힙니다.
그리고 명나라가 구원군을 보냅니다. 명은 조선이 무너지면, 이들이 명나라까지 쳐들올것이라고 생각했지요특히 이들은 절강성에서 온 이들은 1560년대 왜구와 잦은 전투로 경험이 풍부했습니다. 이중 낭선이라는 무기는 방어형 무기로 적절하게 사용했지요.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 무과합격증입니다. 1576년 무과에 급제하시고 벼슬에 시작합니다. 그리고 중국 황제에게 8가지의 선물을 받을만큼( 이 선물이 근대 병풍에 그려짐) 그 용맹함과 지략이 조선 뿐 아니라 당시 동북아를 울렸습니다.
먼저 이순신 장군은 화포를 적절하게 잘 사용합니다. 여기보면 천지현황 순서대로 나열된 총통입니다.
천자총통은 너무 무겁고 화약소모가 심해 현자총통을 주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총통에게 이와 같은 장군전은 사용했습니다. 주로 배에 타격을 가해 피해를 주고 바다에 가라앉히게 했지요. 또 조란탄은 폭발합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지형을 잘 활용하고, 정보를 잘 수집합니다. 특히 여기 보면 판옥선과 안택선 차이를 보면
판옥선은 소나무로 무겁고 안택서은 삼나무로 만들어 가볍습니다. 판옥선은 밑에 네모나서 급정지도 잘되고 바위가 많은 남해에 유리했습니다. 반면 세키가부네는 빠르지만 급정거가 어려웠지요. 그리고 일본은 우리 배에 접근해서 조총과 칼로 근접전을 싸우고자 했는데, 우리의 화포가 이들이 접근하기전 격침합니다.
이렇게 이순신장군의 활약은 일본육군의 보급선을 끊어놓았고 더이상 진격을 못하게 묶어놓았지요.
의병, 이순신, 명나라 참전 등으로 우리는 우리 땅을 지켜냅니다.
그러나 영토가 유린당하고 백성도 유린당합니다. 그리고 명나라는 이때 국력을 많이 소모해 결국 망국의 원인중 하나가 됩니다. 일본은 이때 도공을 많이 납치하여 도자기 강국이 됩니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은 힘을 잃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새로운 일본의 지배자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