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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a Kim Aug 16. 2023

첫사랑인듯 첫사랑아닌 끝사랑에 관하여

30대의 짝사랑, 그 끝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붙잡고 주절거리는 내용들, 흔한 연애사나, 취미나, 덕질, 깊이있게는 인생사 등 나의 일상생활들을 이야기하면 주로 듣는 말이 있곤 했다. "너 그거 글로 써서 보관해봐"

그만큼 내 이야기들이 새롭고, 재미있었다는걸까. 친구의 제안을 신선하다 여기고 곱씹어 보며, 언젠가 해보리라 생각하고 끄덕였던 날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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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마침, 샌드위치 휴일로 나 홀로 회사에서, 흔한 '월루'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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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생각하던 모습과는 달리 특별할 것도 없는, 갓 30대가 된 흔한 직장인 A모씨가 되어버린 나에게 최근 많은 생각과 함께 그시절의 풋풋함을 다시금 떠올리게 한 사건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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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에 접어들면서, 더더욱 확신했었다. 내가 이제 나이도 많이 들었고, 누구를 예전처럼 좋아할 일이 있을까? 절대 그럴 일 없지~ 라며 스스로 오만방자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었다. 본래부터 외로움도 안 타지.. 연애, 남자에 별로 관심이 없는 털털한 성격으로, 몇 안 되는 이런 인간종답게 소개팅이며 헌팅이며 등 만남을 위한 일회성 만남 등에 특히 극도로 거부반응을 보여왔고, 가볍게 대쉬하는 사람들? 건방지게 보이겠지만 너무 하찮아 보인다. 그런 반면 희한하게도 몇 년에 한 번 꼴로 간신히 나타나는 '내가' 꽂히는 사람에게는 간이며 쓸개며 퍼주는 성격 탓에, 지독하게 아프고 힘든 연애를 해왔고, 당연히 나이가 듦에 따라 더욱 회의적일 수 밖에 없었다. 정말 당연히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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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를 그때만큼 좋아할 일이 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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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011년 재수기숙학원에서 만났다. 당시에는 경기도 내륙 쪽으로 각종 기숙학원들이 유행처럼 퍼져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학교에서도 나름, 문과 탑에 끼어볼 만큼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기에, 내가 수능을 망치고 재수하러 기숙사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또한, 2008년 고등학생 초반부터 오랫동안 좋아해왔던 내 첫사랑이던 사람과 제대로 사귀어보지도 못한 채, 강제로 떼어내져서 휴대폰도, 당시 SNS인 싸이월드도 모두 단절한 채 기숙사로 들어오는 심경은, 어찌나 암담했던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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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양평에 있던 나의 재수학원은, 3월 반배치고사를 앞두고 12월부터 학생을 입소시켰다. 2011년 2월 14일, 내 생일 바로 다다음날이었던 그 날, 입소한 나와 우리 반 학생들은 2월 입소일이라는 공통점 아래 성적별 배치고사 전, 아무런 연고없이 한 반에 배정되어 있었다. 기숙학원, 집 밖을 나와 낯선 공간에서의 숙식은 처음이었던 열아홉 당시의 나는 입소 첫 날 혼자 쓰는 내 방에서 가족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눈물을 혼자 흘렸다. 다음날부터, 깔깔 웃으면서 보내고, 앞으로 평범한 어른이 된 이후로는 평생 이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 줄은 전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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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남고를 체험하러 온 건가? 순간순간 헷갈리던 때가 있었다. 입소일 당일 날 밤 몰래 눈물을 훔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저 뒷편에 앉은 남자애들의 어질어질한 수준의 드립으로 웃참하기, 아니? 웃참 실패. 그냥 나 자신을 내려놓고 어느순간 그들과 동화되어 깔깔 웃고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 그 애를 발견했다. 그 애와, 다른 Y라는 친구, 이 둘은 맨 뒤에서 주도적으로 저세상 드립을 치며 교실을 개그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있었고, 참 특이하다... 웃기긴 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재밌다, 친해지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었다. 당시 동방신기 열혈 팬이었던 나는 그 당시에는 같은 남팬인 Y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었지만 말이다.(이 탓에, 당시 장난기 많던 아이들 때문인지, 나는 초반 한동안은 Y와 엮여 놀림당하는 곤욕을 치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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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반 배치고사를 치뤘다. 나는 역시나 가장 상급반, 그 애는 가장 아랫반으로, 그리고 같은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두세 명도 모두 다른 반으로 갈라졌다. 새로운 반의 분위기는 완전 딴판이었다. 가장 위엣반이고, 서로 데면데면해서 그런지, 조용하고, 칼같이 공부만 하는 느낌이었다. 어색한 공기가 나를 짓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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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선생님들이 부탁할 게 있다고 나를 부르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왜? 라는 건수였지만, 당시 나에게, 학창시절 아이들 수학멘토를 한 경험이 있다고 들었다. 혹시 자습시간에 가장 밑에 반 애들 공부를 좀 봐주면 안되겠느냐. 라는 부탁이었다. 그걸 왜 해? 라는 말을 뒤로하고, 나는 그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 반에서 서로 경쟁하듯 공부하는 숨막히는 분위기를 잠깐잠깐이나마 환기하고 싶었고, 그냥, 그 외엔 그저 재밌어 보여서였다.

그렇게 그 애와 공부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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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생들이 내 멘토수업을 들었다. 그러면서 아랫 반 친구들과 유독 친해졌다. 그 애는 특히 내 수업을 가장 많이 듣던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가 궁금하고 신기했다. 배치고사 전에 같은 반에 있을때는 그렇게 인싸처럼 장난치고, 웃고 떠들던 애가, 이렇게 제대로 친해지고 함께 공부하다보니 굉장히 과묵하고 생각이 많은 아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뭐니 넌? 무엇이 너의 진짜 성격이니? 학원 최대 인싸가 될 줄 알았던 그 친구는, 점점 나랑만 베프처럼 지내게 되었다. 너는 공부 잘하니까 우리가 모르는 걸 이해 못하겠지~~ 하면서 장난으로 비꼬기도 하던 그 애는, 중학생시절 학급 멘토 시절부터 대학생까지도 내가 수많은 학생을 가르치며 느낀 중, 가장 타고난 머리로는 똑똑하고, 비상하며, 이해력이 높은 친구였다. 그저 공부를 안 했던 아까운 인재였다 뿐이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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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시간이었다. 단 4개월, 우리는 둘도없는 절친처럼 지냈고, 휴가고 외출이고 함께 나가 놀았다. 학원 수업 퀄리티가 별로라며, 나를 필두로 몇몇이서 따로 나가서 우리끼리 고시원을 잡고 재수해보자는, 말도 안 되는 제안도 받았었다. 그 친한 와중에 많은 친구들이 공식 커플이라며 놀려댔는데, 여고 출신 나와 남고 출신 걔는 둘다 그런 남녀로 엮어대는 놀림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당시 학원 성적 탑 뽕에 취해있던 나는 콧대높게 학원에서 연애하면 인생 망해~ 라며 덤덤하게 응수했고, 그 친구는 정말 내가 신기하리만큼... 아니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나와 엮여 놀림을 받으면 극도로 혐오하고 거부하며 과한 반응을 보이며 친구들에게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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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간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나는 결국 학원을 그만두었다.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받고(전체에서 두 개 틀림), 당시 학원에서 친했던 여자애들과 조금 틀어진 사건이 있었어서, 오히려 잘 됐어. 이 성적이면 강남대성에도 들어갈 수 있을거야라며, 나는 학원을 옮겼고, 얼마 후 내가 가르쳐주던 학생들이 재수를 그만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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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재수 시절로부터 만 12년이 흘렀다. 그때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랑 띠동갑이겠지. 그만큼 우리는 큰 시간의 공백 속에서 다시 한 번 마주하게 되었다. 도저히 평범한 직장인1로 살아가기에는 노잼을 못 견디고, 어떻게든 인생을 끝도없는 도전과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아야하는 성격 탓에, 한복모델 활동이라는 것을 시작하게 되었다. 2023년 4월 1일, 만우절 같은 일이었다. 웨딩한복패션쇼라는 이름 하에, 그 친구가 살고 있는 울산을 오랜만에 방문하게 되었고, 정말 아무생각 없이 당일에 연락을 던졌다. "너 지금 울산임? ㅋㅋ 나 갈일있는데 보실?"

이런 식의 정말 아무 생각없는 카톡, 그 날 만남이 이렇게 화근이 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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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친했던 우리는 학원 그 이후로 먼 거리와 각자의 삶의 세계로 인해 멀어졌고, 5년에 한 번 만나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그 친구가 5년 전 분당을 와서 만난 이후로 정확히 5년만이었다. 나는 사실 그 날 약속을 잡고 미친듯이 후회했다. 한복 패션쇼를 마친 후, 그 날 입은 옷, 신발, 메이크업 등으로 너무 지칠 대로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쉬겠다는 동생을 붙잡고, 언니 약속 파토내면 안 되겠지? 나 정말 너무 나가기 힘들다. 한시간만 놀다오겠다. 오년만에 보는 애랑 무슨 얘길 하냐. 이러면서 하소연을 늘어놓고, 정말 도살장에 끌려나가는 소마냥의 표정을 지으며 동생에게 인사를 고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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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만 보고 오겠다고 말했던 나는 어디로?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라는 표현의 느낌, 이런 느낌은 너무나 오랜만이었다. 여중여고여대여초직장 루트지만 친화력이 좋아 초등학교나 학원 등지에서 친해진 남사친들도 꽤나 있는 편인데, 나는 참고로 남자사람과는 1:1로 제대로 된 대화가 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도..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말을 해도 즐겁고 대화가 잘 통하고, 남자와의 대화에서 첫 사랑 이후로 처음으로 즐거움과, 공감과, 어른스러움 등으로 통하는 것을 느낀 짜릿한 순간. 이 시간이 정말 어떻게 흐르는 지 조차 몰랐던,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 우리 원래도 잘 맞았었더라. 어려서 그 대화의 소중함을 몰랐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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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왔다. 거짓말처럼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느꼈다. 종교는 없지만, 신이 내게 만우절 장난을 친다면 이런 것일까.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내 신념이 무너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로 내가 누굴 다시 좋아할 수 있을까. 두 번째로, 남녀 사이 친구가 당연히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나는 절대 그 예외 케이스가 되지 않는다는 것. 세 번째로, 나는 정말 외모가 내 취향이어야 만남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으나, 그 애의 동그라니 웃는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네 번째로, 전 연애들의 상처로 인해 누군가에게 마음이 열리기 어렵다는 것. 마지막으로, 나 정말 유교걸로 살아왔는데? 그 애에겐 예외가 많았다.

그 친구와의 만남에서, 걔는 왜 악수하며 한참을 잡은 내 손을 놓아 주지를 않고 나를 계속 쳐다봤을까, 그 눈빛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일상 생활에서 숨쉬듯 듣는 예쁘다는 소리가, 그 애의 입을 통해서 들은 그 순간만이 내 귓가에서 맴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너는 신기하리만치도 나도 잊고 살았던 그 시절 나에 대한 기억들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 순간부터 놀랍게도, 그 전에 연애했던 기억들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일들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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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쩌면 이 때 확신을 가졌던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에게 확신을 받고싶어서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 애에게 연락을 바로 했다. 그 날 이후로 너가 보고싶어졌는데, 또 만나자고. 그렇게 22일에 또다른 약속을 잡게 되었다.

평생 모르고 있었는데, 넌 어릴 때와 똑같구나. 정말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점인데, 널 좋아하고나서는 보이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항상 내가 있는 곳으로 데리러 와서, 데려다 주었단 걸. 정말 사소한 부분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는 게, 큰일인데? 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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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만했다. 나 정도에 누구한테 대쉬하면 어디 가서 절대로 까이지 않았더라는 것을 알았고, 똑같은 방식으로 그 친구에게 다가갔다. 친구는 두려움을 표시했다. 내 자아와 고집으로 밀어붙였고, 어떻게 나를 싫어할 수가 있겠어? 라는 마음으로 내던졌고, 결국 친구와 서로 애정표현을 하고 마음확인을 하였다고 생각했으나, 정말 극도로 인내심 최강인 친구는 마지막 순간의 스킨십을 절제하였고, 각자 집으로 떠났고, 우리는 결국 안되겠다는 답장이 왔다. 정말 바보같지만 이 때 나는 더욱 반했고, 더욱 감정이 깊어져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현실적인 부분도 고려하고, 본능적인 부분도 절제하고, 나만이 어린시절에 남겨진 채 12년의 세월이 흘러 성숙한 친구를 보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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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벽이라는 게 무엇일까, 나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30대여서 안 되는 걸까. 정말 오랜만에 상실감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마음의 자괴감까지도 생겼다. 원래 누구를 좋아할 때 딱히 뭔 대단한 조건에 매력 포인트를 느끼는 사람도 아니고, 거리고 뭐고 나는 상관없었다. 우리 부모님은 헤어짐이 더 길었던 연애 끝에 결혼을 하셨다. 아빠는 가난한 편부모 집안, 엄마는 부잣집 외동딸, 격렬한 반대 끝에 사랑이 이긴 케이스였다. 정말 천운처럼 아빠는 다시 일어났고, 자수성가하셨다. 이처럼 말도 안 되는 것 조차 악으로 깡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며 살아온 내게는, 하물며 날 안 좋아해? 그럼 꼬시면 되지! 라며 단순히 생각한 나에게는, 단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 고작 하나가 절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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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7월에 패션쇼 관련되어 엮여있는 업체 및 사건들로 인해 울산을 갔고 친구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우리는 무슨 대화를 해도 티키타카가, 참 즐거웠다. 그리고 친구는 말했다. 너의 감정이 이성이 아닌 친구로 정리되지 않는 한 이제 보지 못할 것이라고. 무어라 부정할 수도 없는 강경한 철벽의 거절이었다. 친구로도 잃기 싫을 정도로 소중했던 추억과 잘 맞는 대화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너가 마음에 들어온, 다 내 탓이겠지. 그렇게 우리의 12년의 인연은, 끝이 나게 되었다. 아니 그렇게 해서 끝이 나게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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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누구를 좋아했고, 전 연애들의 아픔이 생각나지 않은 적은 처음이었으며, 마치 첫사랑을 한 아이처럼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 순간에 너는 나에게 감정이 없다고 했지만, 우리는 조금은 특별한 친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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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에 참 아팠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에 비해 12년은 나이를 먹었지만 난 구제불능이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소개로 만나서 잔잔하게 편하게, 그리고 계산적으로, 그렇게 연애하지 못하고, 내가 좋아서 불나방처럼 미쳐서 뛰어드는 것만이 사랑이었던 나로서는 어쩌면 80살에도 첫사랑인듯 아닌듯 끝사랑이라며 아파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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