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공기와 따뜻한 이해

by 도톰한물티슈

어깨 위의 보이지 않는 짐들


작년 이맘때쯤, 고민 상담을 했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선생님, 대학 어디로 갈까요?" 아직 2학년인 R이 진로 고민을 토로했다. 요즘 아이들은 참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같다.

학부모 상담 전화가 연달아 걸려왔다. "우리 아이 성적으로 어느 대학 갈 수 있을까요?" "요즘 취업이 어렵다는데, 어떤 과를 선택해야 할까요?" 부모들의 불안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되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S가 찾아왔다. 눈이 충혈되어 있었다. "선생님, 저는 음악을 하고 싶은데 부모님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고 하세요. 어떡하죠?" 아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교실 안 공기가 무거웠다. 아이들 어깨에 보이지 않는 짐이 하나씩 올려져 있는 것 같았다. 대학 입시, 취업, 미래에 대한 불안... 열일곱 살 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것들이었다.

"S야, 압박감을 느끼는 건 당연해. 하지만 그 압박이 너를 짓누르게 하지는 마. 네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천천히 생각해봐."

저녁에 바닷가를 걸으며 생각했다. 압박은 때론 성장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너무 과하면 아이들을 질식시킨다. 적당한 긴장감은 필요하지만, 꿈까지 포기하게 만드는 압박은 독이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지는 걸 보며 깨달았다. 압박도 파도와 같다. 밀려오면 견디고, 빠지면 숨을 고르는 것. 아이들에게 이 리듬을 가르쳐주는 것도 교사의 역할이다.


여러분은 어떤 압박 속에서 살고 계신가요?



급식실 뒤편에서 나눈 무죄의 선고


그날 영어샘과 급식실 뒤편에서 마주 앉아 울었다. 점심시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멀리 들리는 곳에서. 우리 반 Z가 영어 시간에 잠을 자다가 깨워진 순간 욕설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끝까지 부인하고 있었다.

"저는 분명히 들었어요." 영어샘의 목소리가 작았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안 했다고만 하네요."

증거 없는 증언, 부인하는 가해자, 무력해지는 피해자. 이런 상황에서는 진실보다 권력이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권력이 없다.

"제가 못 가르쳤나 봐요." 내가 먼저 말했다. 담임으로서의 죄책감이었다. 1학년 때부터 끌고 올라온 Z를 제대로 지도하지 못한 것 같아서. 어른들은 늘 이렇게 자신을 탓한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영어샘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선생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덧붙였다. "저도 잘못한 게 없어요, 그죠?" 확신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야 믿을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죄. 서로에게 내린 무죄 선고였다. 때로는 상황 자체가 잘못된 것이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잘못된 건 아니라는 것을.

급식실 뒤편에서 흘린 눈물은 연민이 아니라 면죄부였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넨, 따뜻하고 필요한.


때로는 서로를 위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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