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를 인생 여행지로 꼽는 사람들이 꽤 있다. 덕분에 포르투에 가기 전부터 기대가 컸고 며칠 지내보니 그들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풍부한 햇살과 적당한 도시화, 훌륭한 경치와 그에 비례하는 분위기.
어리석게도 경이로움이 아닌 불안함을 느꼈다. 많은 사람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 인생 여행지로 꼽는 도시에 왔고 나는 이곳을 즐겼으며 적당히 만족했다. 마지막, 그 마지막의 적당함이 문제였다. 지구 최고의 여행지가 이 정도의 감흥이라니. 난 어떡하지, 앞으로 더 갈 곳이 없는데. 구글 지도를 펼쳐봐도 더 멀리 나아갈 곳이 없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첫 번째로 고민해본 것은 만족의 상대성이다. 누군가에게 최고의 여행지가 포르투지만 나는 그보다 큰 감동을 지리산을 걸으며 얻었다. 누군가는 최상의 에그타르트라며 극찬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던 카페에서 직접 구워 먹던 에그타르트가 나에겐 그것이었다. 허나 상대성의 끝은 결국 존재한다. 비교군은 소비되기 마련이고 다른 방안이 필요했다.
어쩌면 지구는 별 거 없는 것 아닐까.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니며 느낀 건 나라가 비슷하다는 점이다. 아시아와 유럽을 오갈 때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뿐 같은 대륙의 국가들은 비슷한 건축양식과 언어를 공유했기에 지구에서 ‘굉장히 독창적인’ 국가를 찾는 건 불가능하다. 허나 이렇게 결론 내리고 나니 인생에서 여행이란 재미 포인트가 하나 사라지는 건 아닐지 불안해졌다. 이미 그렇게 된지 오래인 비행기처럼.
선명한 결론을 찾지 못한 채 열흘이 지났고 난 다시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나라를 찾았다. 스위스 오른 편에 위치한 세상에서 네 번째로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 여행 계획을 짤 때마다 어떻게 하면 리히텐슈타인에 방문할 수 있을지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친구는 왜 여기를 포기 못하냐 묻는데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하다. 지난번 스위스 여행을 계획했을 때 리히텐슈타인 방문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제 내 인생에서 이곳을 갈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허나 스위스 주변국 여행 계획을 짜다보니 리히텐슈타인 지도를 다시 보는 나를 발견했다. 왜일까, 왜 그곳이 그리 궁금한 걸까.
웃기게도 내가 그곳에 가고 싶은 이유는 하나의 키워드 때문이다. ‘GDP 1위 국가’. 경제를 좋아하다 못해 사랑한 나머지 경제학부에 진학한 나는 고등학생 시절 'GDP의 역설'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다. GDP는 범죄가 잦아져 경찰을 더 많이 고용해도 올라가기에 그 이면을 살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국가행복지수’를 다룬 지표가 있는데 여기 또한 이면이 존재한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안정적이고 민족적인 방식을 택하기에 행복지수는 높아질 수 있으나 밖에서 보기에 이것은 고립 위주의 정책이란 설명이다. 나는 그 이면이 보고 싶었고, 룩셈부르크로 충분하지 않냔 친구에 말에 그렇지 않다고 답하며 리히텐슈타인 방문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반나절을 머물지 하루를 온전히 머물지 아직 모른다. 네 시간이면 관광이 끝난다는 말이 있으니 눈이 즐거울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허나 심장은 포르투를 기다리는 순간보다 역동적이다. 교복을 입고 신기한 것을 알아냈다는 듯이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던 그때의 내가 눈에 아른거리기도 한다.
결국은 상대성으로 돌아왔다. 누군가에겐 압도하는 자연이, 누군가에겐 황홀한 먹거리가 내 GDP 1위를 대신한다. 그리고 그들과 나의 잣대는 항상 변화한다. 나이에 따라 바뀌기도 여행을 함께하는 이에 따라 바뀌기도 한다. 지구의 크기를 걱정하기보단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어떤 것에 가슴 뛰는지 계속 고민한다면 누군가의 잣대가 나와 다르다며 다시 불안해 할 일은 없을 테다. 더불어 내 장래희망이 외계인도 아닌데 지구의 크기를 걱정해봤자 무엇할 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