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가장 많이 한 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영국 이놈의 자식들 뭔 생각으로 이걸 가져온 거야’다. 많이 순화했다.
이번 영국 여행에선 6개의 박물관에 방문했고 5개의 공연을 관람했다. 박물관이 모두 무료인 덕에 부담 없이 공연을 결제한 것도 있다. 파리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식당 방문을 위해 동행을 구했고 거기서 만난 한 분이 떠오른다. 영국 런던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신 분이었는데 파리는 박물관 입장료가 너무 비싸다며 그래도 영국은 양심은 있어서 무료라고 했다. 당시엔 그래 파리는 너무 했어 영국은 그나마 착하네, 역시 신사의 나라인가 생각했다. 허나 런던에 5박 7일 다녀온 지금은 영국도 만만치 않게 욕심이 난무한 국가로 생각된다.
내셔널 갤러리에 방문했을 때, 루브르와 마찬가지로 너무도 유명한 작품들을 관람했다. 고등학교 미술 책에서 보던 그림들이 널려 있었다. 내가 아는 화가들의 이름을 대면 한 두개는 기본으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곤 생각했다. 얘들은 이걸 어떻게 가져왔을까. 어떤 방식으로 이것들을 거래하고 사들였을까. 대영 박물관에 방문해 모아이 석상을 봤을 때 이 생각은 증폭됐다. 대영박물관이란 이름도 그렇다. 처음 런던 관광명소를 검색할 때 '대영'에 다른 의미가 있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누구나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높여부르는 말일 뿐.
그 큰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생각했다. 한 층만 우리나라에 준다면 소원이 없겠네. 내셔널 갤러리에 가서도 그런다. 이 그림 하나만 우리 주면 소원이 없겠네. 한국에 내셔널 갤러리 전시가 열렸을 때 매표소 오픈 시간 전에 가서 줄을 선 기억이 있다. 명작을 지치도록 보며 영국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맨날 보는 걸까? 생각했는데 사실이었다. 런던에 널린 게 미술관이고 명작이다.
허나 한편으론 고마운 마음도 든다. 영국이 한 곳에 모아놨기에 내가 이렇게 편하게 관람할 수 있는 건 아닐까. 아니었다면 내가 모아이 석상을 보러 칠레에 갔어야 할텐데 뭐 이런 생각들이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니, 문화 빈부격차가 얼마나 치사하게 시작됐으며 큰 영향력을 가지는 지 느껴진다. 모아이 석상을 보러 영국에 가고, 모아이 석상을 봤으니 칠레에 가지 않는다. 모아이 석상의 가치는 여전하지만 원본과 고장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감소했으며 편리함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칠레의 모아이 석상은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영국박물관의 주요 유물인 로제타석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이집트의 유산인데 왜 이익은 다른 나라가 취하는가.
약탈을 당한 나라가 화를 낼 순 없을까. 왜 그들은 약탈을 전시하고 자부심을 느낄까. 무력을 행사해 얻은 승리는 영토만이 아닌 패국의 유산을 가져왔다. 유산은 사람을 불렀고 부를 불렀다. 승국은 더욱 강해지고 패국은 강해지기 위해 애써야 했다. 개발도상국의 대통령이 자신을 인터뷰하는 기자에게 화를 내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개발도상국이 발전을 시작하니 기자가 환경에 미치는 유해성을 지적한 것이다. 자국에 엄청난 크기의 숲이 있다고 답한 대통령에게 기자는 그렇다고 환경을 해칠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영국 방송사 BBC에서 진행한 인터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