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되어 내린 당신에게

: 영상 통화로 할머니 장례식에 참여한 뒤 떠올려보는 당신과의 기억들.

by Hyun

어렸을 적엔 할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예배가 마무리 될 때쯤이면 할머니가 쥐어준 파란색 천원짜리를 들고 헌금함을 기다렸다. 집으로 가는 봉고차에선 기특하다며 다른 할머니들이 오천원 천원씩 쥐어주었고 가끔은 그들을 관객삼아, 화장실 변기위를 무대 삼아 찬송가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렇게 뭣 모르고 교회를 즐기던 아이는 할머니집 벽에 걸린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하나님의 그림과 곳곳에 놓인 십자가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는 왜 이렇게 하나님을 좋아할까. 더 나아가 하나님에게 왜이리 의존할까. 죽음을 하나님의 부름이라 여기던 할머니는 이 세상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어하셨다. 할머니의 이런 의지를 공유받은 고모들 덕분에 여러 치료를 지속했고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다 돌아가셨다. 여생에 여한이 넘치던 할머니를 두고 자식과 손자들은 하나님을 진정 믿는다면 조금 더 빨리 떠나는 게 맞았으리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신앙심이 넘치던, 열렬히 하나님을 사랑하던 그녀를 두고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부분일 테다.


할머니는 내가 산낙지 먹는 걸 좋아했다. "여자애"답지 않게 활기차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대견해 하셨던 걸까. 눈치 보길 좋아하던 어릴 적 나는 할머니가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물으면 늘 산낙지라고 답했다. 공간에 어른들이 가득하면 더 그랬다. 그러면 할머니는 크게 웃으며 어린 것이 산낙지를 그리도 잘 먹는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덕분에 난 어떤 것도 잘 먹는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산낙지 먹기가 어려울 것 같다.


사람이란 참 간사한 것이다. 프랑스에 오기 전부터 할머니는 아프셨고 프랑스에 있는 1년 동안 할머니가 돌아가신다면 잠시라도 한국에 가리라고 생각했다. 허나 귀국을 한달 남긴 시점에서, 귀국표를 끊어둔 시점에서 그리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떠난 시점에서 그런 연락을 받으니 한국에 가겠단 의지는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조식을 먹으며 연락을 받고, 미술관 앞 광활한 바다를 보며 조금의 죄책감을 느끼고, 결국 저 물과 바람처럼 할머니가 흘러가겠거니 생각하니 마음이 슬퍼졌다.


이틀 정도가 지나고 공용 공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문득 지금쯤이면 장례가 진행되고 있으려나 싶어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마침 예배가 진행 중이라 엄마는 페이스톡으로 예배를 비춰줬다. 온갖 사람들로 가득한 공용 공간에서 할머니를 위한 예배를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니. 결국 티가 날 정도로 눈물이 흘러 밖에 나와 나머지 예배를 듣다가 짐을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두 시간 뒤, 화장장 예배가 진행될 때 다시 책상에 앉았다. 검정 상복을 입은 큰 화면 속 사람들과 달리 작은 화면 속 브이넥 니트를 입은 내가 눈에 띄었다. 그래도 마지막 예배인데, 할머니랑 인사하는 시간인데 옷을 갈아입어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냥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겠단 생각이 들어 옷을 갈아입진 않았다. 육 남매를 낳은 할머니기에 가까운 가족만으로도 예배장이 가득 찼다. 장성한 손자들 중 목사가 된 사촌 오빠가 예배를 진행했다. 할머니는 얼마나 뿌듯할까 싶으면서도 문득 자신의 어머니를 보내는 길을 아들이 준비하는 상황을 마주한 고모의 마음이 떠올라 슬퍼졌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얼굴의 절반을 화면 밖을 놓고 눈물을 훔치던 나는 그냥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여전히 얼굴은 화면에 없지만 목놓아 울 수 있단 생각에 책상 위 휴지들이 쌓여만 갔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찬송가라며 골라온 곡과 사촌 오빠의 엄마가 좋아하는 찬송가라며 가져온 곡들은 당신들을 꼭 닮았더랬다. 그리 슬픈 가사도 아닌데 그 찬송가를 자식들에게 불러주고 있을 젊을 적 그들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화면 속 상복을 입은 사람들은 천천히 노래를 불렀고 나는 노랫말을 들으며 슬퍼했다. 사촌 오빠는 마지막 기도문으로 주기도문을 읊자고 했다. 장례 예배에서 주기도문을 읽지는 않지만 기도에 익숙하지 않을 자손들을 위해 이것도 괜찮을 것이라고. 화려하게 시도하지 않아도 이로 충분하다고. 그렇게 가족들은 주기도문으로 할머니를 보내드렸고 나는 눈을 감고 손을 맞잡고, 다시 당신을 볼 수 없음에 슬퍼했다.

예배가 끝나고 엄마는 친척들에게 나를 보여줬다. 같이 예배에 참여했다며. 다들 언제 돌아오냐며 함께 예배에 참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나 또한 그곳에 함께 있길 바랐지만 한편으론 그리 마음이 무겁진 않다. 6남매의 막내 아들의 외동으로 태어나, 할머니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아놓곤 무책임하다 할 수 있겠다만은, 그만큼 할머니와의 시간과 기억이 많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마음이 든다. 화서동 시장에서 이천 원 주고 당신이 사준 향수가 나의 첫 향수였고, 아빠가 막무가내로 검은 고양이를 할머니집에 들여놔, 고양이와 단둘이 남겨져 울고 있을 때 나타나 준 것도 당신이었다. 몇 달 전 엄마가 할머니에게 인사하라며 요양원 침대에 누워있는 당신을 비춰줬을 땐 이게 마지막일 될 수 있단 생각에 캡쳐를 여러장 해두었다. 이번 예배가 진행될 땐 당신이 그리울 때면, 당신을 보내는 말이 그리울 때면 다시 찾겠단 생각으로 영상을 저장해두었다. 당신이 머물렀던 곳과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의 거리는 너무도 멀지만 이 정도면 충분이 슬퍼했고 당신을 보내줄 마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며칠 더 마음이 무거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겠지만. 부디 당신의 사진과 마지막 영상을 꺼내 볼수 밖에 없을만큼 그리움이 거대해지길 바라진 않는다. 단지 내가 늘 곁에 두는 폰 속에 당신의 흔적이 있음을 생각하며, 적당한 그리움과 적당한 슬픔을 간직한 채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추신. 사랑의 여러 형태가 있음을 깨닫는 요즘. 당신이 준 사랑을 기억할게요. 고마웠어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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