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되기 아까운

[Bourse de Commerce-Pinault Collection]

by Hyun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은 작품을 볼 때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손을 댄다. 장소의 무게감이 그러하듯 24시간이 지나면 이전의 상태로 나의 생각들은 돌아가고 만다. 한정된 시간이 아닌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 미술관을 마주했기에 이렇게 남긴다.

Bourse de Commerce Pinault Collection

정기권을 이용 중인 덕분에 파리행 기차에 자주 머물며 오늘은 어디 갈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기차에서 정해진 첫 목적지는 퐁피두센터다. 현대 예술 작품들로 그렇게 유명한데 프랑스에 온 지 여섯 달이 되었지만 아직 방문해보지 않았다. 시간이 생각보다 넉넉하기에 어딜갈까 지도를 더 살폈고 근처에 루브르가 있어 한 번 더 방문해볼 생각으로 예약을 진행했다. 허나 폴란드 국립미술관의 여운이 짙게 남은 나머지 루브르에 갈만한 마음이 준비 되지 않았다. 며칠 전 SNS에서 흥미로운 작품을 봤다. 밀랍인형으로 만든 노인들이 전동 휠체어에 태워진 채 미술관의 한 공간을 거니는 모습이었다. 마침 퐁피두센터 근처에 있는 작품이었고 그렇게 그곳으로 향했다.

KIMSOOJA

한국인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스케일에 놀랐다. 프랑스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박물관의 한 층과 메인 층의 중심부가 모두 그녀의 것이다. 잠시 쉬기 위해 들어간 오디토리움에서도 그녀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었다. 그녀가 어머니의 바느질로부터 영감을 받아 제작된 영상은 인도계 사람들이 베를 짜고, 앉아서 손수건에 수를 놓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복적인 청각 자극이나 시각 자극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사람들이 보이는데 다양한 각도로 보인다. 바느질하는 사람의 손이 아닌 발을 보기도, 꽃이 새겨지는 천의 뒷모습을 보기도 한다.

당시에 들었던 느낌은 한 가지다. 왜 몰입이 될까. 이전에 방문한 퐁피두센터나 폴란드 미술관의 현대예술은 각자의 특색을 뽐냈다. 강렬한 색이다 몰입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자극들. 자극에 쉽게 빠진 난 이런 것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또 현대 미술관인 이곳을 찾은 것이다. 자극은 다시 자극을 찾게 만들고 분명한 자극을 갈망하게 한다. 눈앞에 가져다주지 않으면 깨달을 수 없는 존재가 되며 그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20분 동안 앉아 있는 행위의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 이 시간이 쓸모 있는 것인지 혹은 내 앞에 자고 있는 두 사람처럼 무용한 작품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JEFF KOONS

반대의 경우다.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품들이다. 한번쯤은 sns에서 봤을만한 형광분홍색을 띤 거대 풍선 강아지가(Balloon Dog) 그것이다. 왜 이 강아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같이 자신을 부풀리고 있을까. 현대예술이란 그저 크고 화려하면 전부인 것일까. 질문과 회의로 빠질 때쯤 작품 해설을 읽었고 왜 강아지가 자신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지, 왜 이런 색을 택했는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해설은 한 철학자의 비평에 비유하며 '진리'의 중요성을 알린다. '예술은 "문화"가 되었고, 사랑은 "성"이 되었으며, 과학은 "기술"이 되었고, 정치는 "경영"이 되었다.' 단어들은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지 꽤 되었고 사용자의 쓸모에 맞춰 가면을 쓴다. 사용자의 힘에 맞춰 단어의 무게가 결정되고 우리는 원무게를 지녔을 시기의 단어를 잊는다.

진리를 찾는 법을 잊은 관람객에게 작가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본질을 보여주려 말을 거는 작품과 숨겨진 진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 천장을 관통해 위치한다. 물론 결국 답을 찾지 못할 관람객을 위해 단절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생물체도 존재한다.

RYAN GANDER

흰색 벽 아래편에 구멍이 뚫려있고 흰색 쥐 한 마리가 말을 한다. 처음 든 감점은 귀여움이었고 이를 꿰뚫는 해설을 보니 이 미술관의 차별성이 나를 관통하는 듯했다. 쥐는 말을 더듬고 우리는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한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바퀴벌레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자신은 말을 하지만 상대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물체로 자신을 인식할 뿐 아무리 말을 더듬으며 수백 번 반복해도 상대는 자신의 시각으로만 나를 판단한다. 소통을 위해 애쓰지만 말의 길이는 상대와의 거리만 못하다.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나에게 말을 걸까. 파리의 모든 미술관에 가보고 싶단 생각을 했을 때의 궁금증이다. 지금은 궁금하다. 이 물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할까, 나에게 다가오기 위한 글은 어떤 구조를 띠고 있을까 그리고 컬렉터는 어떤 기준으로 이것을 한데 모았을까. 작품이란 것은 자신만 존재할 때도 빛을 발하지만 층과 벽을 넘나들어 함께 위치해 있을 땐 빛을 뿜어내는 듯하다. 작품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길, 작은 쥐와 관람객의 입장만큼은 벗어나길 바라는 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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