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민
막 가로등이 켜졌다
젖은 땅이 잠깐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사람들은
끝나지 않는 겨울을 피해
각자의 손을 숨기며 바쁘게 움츠러들었다
덩어리로 뭉쳐진 안개가 가로등 주변을 에워쌌다
애매한 불빛이 평화로웠다
살아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오랜 점멸을 끝낸 횡단보도 초록불이 견고한 빨강이 될 때까지
뒤집은 마음이 바깥이 될 때까지
단단해질 때까지
멀어졌다
멀어질수록 자주 잊었다가 불쑥 찾아오는 어떤 마음
얻을 수 없었던 표정을 얻기 위해 저질렀던 불가능한 태도
계획된 수군거림에 부응하는 저 차가운 공기
눌어붙는 입김
어둠은 불리한 조건을 모르고
아침은 어림없고
다음은 즐겁고 유쾌한 기분으로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