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em
김조민
예를 들자면 그런 것입니다
대청소를 할 때 말이죠 용케 무너지지 않은 책 더미 뒤쪽에서 동그랗게 말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불완전한 각도의 더미가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발견을 위한 장치였을까요 이러한 생각은 아주 훗날 알려질 고찰에 의해 증명될 예정입니다
책 더미 뒤쪽에서 우리의 반응은 대체로 같을 겁니다 대충 난처하고 엉성하게 흐르는 땀을 닦으며 흩어지지 않게 부드럽게 살금살금 깊숙해지기 전에 극진한 자세로 엎드립니다 그리고 예전을 떠올리겠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맨 처음은 어디부터였을까 하는 심정으로 손가락을 뻗습니다
아주 예민합니다 잘못된 바람에도 그냥 흩어집니다 닿기 시작했다면 어쩔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지없이 잠식됩니다 개의치 말아야 합니다 드디어 손끝에 닿았고 닿았고 닿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재채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맙시다 하나의 털 뭉치는 먼지와 별개입니다 단순히 니들펠트를 위해 고양이를 동원했다는 변명만 합시다
* 짐승의 털들을 바늘로 찔러 마찰을 일으켜 조직을 조밀하게 하고 표면의 털끝이 서로 얽히게 만들어 공이나 인형, 장난감 등을 만드는 공예의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