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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민 Sep 08. 2024

하관

하관               


김조민



비행기에게는 풍장이 치러졌다     


그날, 비행기를 내려놓은 하늘에게 미열이 일었다

이륙하던 하늘 가장 낮은 길과 활강하던 곡선들

모든 비행의 끈들이 욱신거렸다     


바람은

기체와 하늘을 잇던 보이지 않는 끈들을 지우고 있었다


끈이 가진 시간과 속도, 비행의 모든 기록들은

비행기 무덤 안에서

풀어져 엉키고 끊어지고,     


하늘은 길을 잃거나 비행기를 잊어간다     


너가 나의 하늘이던 때를 떠올려 본다

나를 날며 내게서 찾아준 기록들을 기억해내려 애쓴다

팽팽해진 기록들이 여러 갈래의 끈으로 활로를 닦으며,     


한 번 더, 한 번만 더 기체를 밀어 올려 보지만     


사막의 마른 온도와 모래들 그리고 바람이

그 기억의 활로들을 어지러이 흩뿌리거나 

툭, 툭 끊어지게 했다     


비행기는, 무덤 위를 부유하는 저 기록들을 날려 보내기로 한다

하늘이 비행기를 영원히 내려놓았듯이 비행기는 

제 모든 비행의 기록들, 

기억하는 모든 하늘들을 영원히 날게 하려 한다     


하늘보다 더 긴 비행을 이제 막 시작한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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