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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영운 Jul 17. 2024

위대한 위로 _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시공초월 작가들이 건네는 따뜻한  위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나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던 날, 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해 가을, 나는 다니던 <뉴요커>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한동안 고요하게 서 있고 싶었다.” - 본문 중 -          



나는 내가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일자리에 지원했다. 열한 살 때와 달리 이번에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으며 그곳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도착했다. 가슴이 벅차고 찢어지는 듯했다. 한동안은 그저 가만히 서 있고 싶었다.     (p32)          



의지했던 형의 죽음은 작가인 패트릭 브링리를 미술관이라는 동굴로 들어가게 했다. 보장되었던 화려한 삶을 뒤로하고 그가 택한 경비원 일을 10년 동안이나 했다는 것에 놀랐다. 경비원이란 직업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칠까? 원하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쉬운 일자리로 생각되기도 할 것이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하는데 서두르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가 피하고 싶었던 것은 혹은 마주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복잡하고 바쁜 일상에서는 자신이 견뎌야 하는 슬픔을 제대로 마주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부딪히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억지로 끌고 나가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떠올린 가장 단순한 일이면서 사람들과 최소한으로 부딪힐 수 있는 일을 찾은 것이다. 동시에 시공간을 넘나드는 위대한 예술 작품들을 마주하며 위로도 받는 것이다. 그의 사수 아다는 패트릭 브링니의 사정을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한다.          



“젊은이, 이제 당신을 혼자 있게 해 줄게. 당신은 여기 있어. 나는 저기 있을 테니.” (p33)          



아다의 “난 저기 있을 테니.” 이 말은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도 좋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입이었던 패트릭의 입장에서 의지가 되는 고마운 말이다.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 따뜻하다. 패트릭도 그랬을 것이다.          



패트릭 브링니는 상처와 사람들로부터 숨고 싶어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었지만 결국은 만나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위로받고 치유받는다. 그의 상처 극복에 도움을 받은 예술 작품들도 결국은 사람이 만든 위로인 셈이다.          


그즈음 틈틈이 이집트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있던 나는 책으로 읽는 것과 예술품을 직접 보는 경험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 한번 느낀다. 책 속 정보는 이집트에 관한 지식을 진일보시켰지만, 그와는 대조적으로 이집트의 파편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한다. 이것이 예술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다음으로 간단히 넘어갈 수 없다. 예술은 어느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요점을 아는 것이 대단하게 여겨지는 세상을 경멸하는 것처럼 보인다. 요점이야말로 예술이 절대 내놓지 않는 것이다. 예술 작품은 말로 단번에 요약하기에 너무 거대한 동시에 아주 내밀한 것들을 다루는 경우가 많고, 오히려 침묵을 지킴으로써 그런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p87)               



예술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방법은 각자마다 다를 것이다.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는 말로 정의 내리기도 어렵다. 지식으로 아는 예술품과 오감으로 느낀 예술품이 어떻게 다른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예술이 요점을 내놓지 않는다는 말이 와닿는다. 말조차도 줄여서 외계어처럼 들리는 바람에 해독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예술품이 건네는 은밀한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래도 누군가는 이렇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려 노력하고 깨닫는다. 그 예술품들이 주는 감동이 있어서 미술관으로 발길을 향하는 것이다. 잘 모르면 또 어떤가?  천가지 이상의 감상을 허락받은 것이 예술의 특권일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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