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1. 겨울이 오고 있었다.
11월 초였지만 바람은 나날이 매서워져갔다.
민오가 연숙을 불렀다.
통장을 내밀었다. 무수한 거래가 있는 증권연계 통장이었다.
그동안 증권투자를 했는데 돈을 불려 보려 했으나 잘 안 됬다고. 그래서 자신도 돈에 쪼들려 왔다고. 현재 남아 있는 잔액은 오천정도 된다고. 이 돈은 진아 시집 갈 때 쓰라고. 이 동네는 집 값이 비싸니 팔아서, 친정 오빠 근처로 이사를 하라고. 여자가 혼자 살면 여러가지 험한 일이 생기니 친정 오라비 곁에 가 살면 자기가 그래도 마음이 놓인다고. 집을 줄이면 돈이 남을테니 어쨌든 생활은 될 꺼라고. 두서없이 횡설수설했다.
평소 쏘아 보던 눈 빛은 사라지고, 어느덧 자신의 끝을 예감한 모양이다.
시선을 거두며 힘 없이 중얼거렸다.
"미안하네- - - 나 같이 못 된 놈 만나서- - - 고생했네- - -"
그렇게 민오는 갔다.
그즈음 진아는 저희 아빠랑 눈도 안 맞추고 살았고, 연숙 또한 미운정 고운정 다 떨어져 그저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연숙은 눈물 한 방울이라도 떨어질 줄 알았으나 그냥 무덤덤한 자신의 냉정함에 새삼 당혹스러웠다. 한동안 허둥대며 마음 잡지 못 하고 지내 온 연숙은 문득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사랑하지 않았던 심지어는 싫어했던 남편이었지만 그가 난 자리는 너무 컸다.
서류에 달랑 올라있는 그녀와 진아를 보자 무심결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래- - 이제부터는 내가 모든 걸 다 해야 되는구나- - '
각오를 다졌지만 그녀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통장을, 더불어 같이 따라온 온 갖 명세서들, 숫자들을 보자 머리가 지끈지끈, 울렁거렸다. 남편이 있다면 다시 내 던지며 소리치고 싶었다
"생활비나 올려 줘- - 다 가져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