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1. "저- - 혹시 연숙이?"
말끝을 흐리며 웬 남정네가 연숙을 빤히 보고 있다.
깜짝 놀란 연숙은 말조차 더듬었다.
"누 - -구세요? 너 - - 명섭이?"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연숙은 6년 내내 한 반에서 공부했던 명섭을 떠올렸다. 그랬다. 체구도 작고 소심하고 조용하던 - - - 순간 웃음이 터졌다.
30년이 훨씬 지나 중늙은이가 되어 같은 동네에서 만나다니- - - 반갑기도 했고 우습기도 했다.
"어떻게 지내? 집이 이 근처야? 애들은? 애 엄마는 어쩌구 니가 장을 보니?"
두서없는 질문이 터졌다.
"응- - 말하자면 길어- - 애들은 지 엄마랑 있구 - - 난 혼자 지내- - "
"뭐? 어쩌다가?"
"글쎄 - - 모르겠어- - 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다니던 회사가 부도 나구 월급을 1년 가까이 못 받았어. 퇴직금도 못 받구. 괜히 그걸 받을라구 이리저리 소송이다 뭐다 시간만 까먹구- - - 나중엔 마누라가 무능한 내가 지겹다나- - 이혼해 달라구 집을 나갔어. 순식간에 불쌍한 신세가 된 거지. 내가 위자료다 뭐다 집 한 칸 있는 거 줘 버렸거든. 그래두 뭐 - - 살 만은 해 - - 회사 기숙사에서 생활하니까 생활비도 안 들고 - - 그냥 사는 게 재미가 없어서 그렇지 - - 참 구질구질한 하지? 내 얘기 그만하구 넌, 잘 살지?"
"응 - - 그렇지 뭐. 딸 애 하나 있는데 다 커서 심심해서- -그래서 일 하러 나온거야"
"그렇구나- - 넌 여전히 고운데 나만 늙은이 같네 - - 나도 내일부터 운동 열심히 해야지 - - 나만 늙은이처럼 보이면 억울하잖아 - - 그럼 갈께- - - 수고하구 - - -"
"그래, 그래 - - 운동도 하고, 잘 지내라- - "
"나중에 보이면 또 보자 - -"
돌아서며 연숙은 의문이 생겼다.
'남자들은 자기 속사정을 수십년만에 본 여자동창에게 술술 얘기 할 수 있는건가? 명섭이만 그런건가? 고통의 강을 건너 온 자의 담담함인가? 아니면 원래 대범한 스타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