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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여자

by 김정욱

1-14. "선배,


그 리조트 건 말이예요. 아이디어 없을까요?"

"그게 말이지 - - 생각해 봤는데 쿠폰이나 포인트 당첨, 그런걸로 해도 될 것 같은데 - - 우리 회사는 유통체인이 있으니 그것과 연결하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 - 자기 생각은 어때?"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거기까지였다.

출근 후, 잠깐 이삼분 동안 커피 마시면서 나눈 내용이다.

오전 미팅시간. 의견을 묻는 부장님 말씀에 손을 번쩍 든 이 팀장이 또렷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유통체인을 활용한 쿠폰 당첨과 일정 금액 포인트 달성 그런 걸로 매치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민자는 순간 찌르르 - - 가슴이 저려왔다.

펜을 들고 있는 손이 저도 모르게 떨려왔다.


참석자들의 호응이 좋았기 때문에 부장은 이사에게 보고를 하고 이사회에서 다시 논의를 할거라고 하면서 만일 채택이 되면 이 팀장은 그에 따른 포상과 함께 기획을 맡을거라 했다.

회사가 이런 저런 위기에 처했을 때 이 팀장처럼 적극적으로 동참해서 의견도 내고, 생각도 하라고 같이 참석한 팀장들은 질책을 들었다.


"선배. 미안 - - 고마워요. 하지만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어요"


민자는 이 팀장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무능, 무기력을 생각했다.


'왜 난 남들에게 이용만 당하는거지? 왜 내가 먼저 손을 들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는거지? 왜 내 생각을 쉽게 내주는거지? 왜 항상 당하기만 하는 거야 - -'


스스로 자괴감과 모멸감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자는 역시 미모가 최고야'를 거리낌 없이 내뱉고, '명품을 사랑하는 게 어때서?'라며 속물근성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사람도 명품서열이 있다면서 유치찬란한 논리를 펴는 이 팀장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종의 사람 같았다. 같이 일 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이렇게 아이디어까지 눈 뜨고 도둑 맞아야 하다니 - - 민자는 비참한 심경이 되었다.


어쩌면 이 회사를 떠나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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