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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사랑

by 김정욱

10-10. 이제야 마주한 우리 두 사람.


회한의 눈물이 발을 적신다 해도 우리에겐 남아 있는 시간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 - 평생 감사한 마음을 가져 보지 못한 나에게 이러한 감정은 참으로 낯설었다.


속죄와 사랑으로 다시 만난 여자와 남자.

텅 빈 인생에 마지막 단비 같은 나날이 맥없이 흘렀다.

부드러운 아침 햇살과 얼굴을 간지는 바람 결, 빗방울 소리, 명랑한 새소리,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 노는 소리, 어슴프레 동 트는 새벽, 혼곤한 저녁 놀까지 - - 나에겐 처음 느낀 다정한 행복감, 사랑이었다.


"오늘, 달이 크네 - - 보름인가 - -"

"우리, 달을 보며 한 잔 할까?"

"당신이 술을 마신다고?"

"나 술꾼이야 - - 알고보면 - -"

"당신은 정말 바보야 - - 내가 원한 건, 날 따뜻하게 꼬옥 안아주는거였는데 - - 그리고 토닥토닥 - - 그거였는데 - - 난 당신한테 너무 미안해서 그럴순 없고 - - 당신이 그래 줬으면 했는데 - - 그땐 천방지축 널 뛰던 내 맘을 나도 어쩌질 못 해서 - - 당신은 그래도 남자니까 - - 그래 줬으면 - - 했는데 - -"

처음으로 그녀가 속 내를 꺼냈다.


"그런 거였어? 그렇게 간단한 거였다구?"


난 두 팔을 활짝 벌렸다.

그녀는 가슴에 안겨 오래도록 흐느꼈다.

사실, 맘을 열지 않은 건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란 걸 - - 단지 그녀는 마음 둘 곳을 찾지 못 해 방황했다는 걸 - - 오랜 시간 허송세월 보내고, 이제야 깨닫다니 - - -


'그래 - - 울어라. 실컷 울어버려라- - 그깟 원망, 설움 다 풀어 버리자 - -'


그 밤, 그 날이 우리가 서로 사랑한 첫 날, 첫 밤이 되었다.

며칠 뒤, 정화는 119로 병원에 실려 갔다.

평생 가슴을 무겁게 짓누르던 숙제를 말끔히 끝낸, 아이 마냥 편안한 얼굴로 눈도 뜨지 않고 나에게 이별을 고했다. 아직 나에게는 그녀에게 하지 못한 말이 한 가득 남아있는데 - - 기회도 주지 않고 저 혼자 또 가버렸다. 이번에도 내가 또 당했다.


언제나 가슴 아픈 이별은 나의 몫이다.

이건 너무 억울하고 불공평한 일이다.

더구나 나에게 기회는 영영 오지 않을테니 - -


야속한 장 정화, 그래 - - 너 잘났다. 잘 가라 - -

근데 이거 하나만 알고 가라 - - 내 인생에 또 누가 있냐?

너, 장 정화. 내 사랑은 너라구 - - 이 바보야 - -


우리 사랑은 너무 멀리 왔다. 너무 늦게 도달했다.

하지만 늦게라도 와준게 어딘가?

임 춘복, 장 정화. 두 사람은 긴 긴시간 서로를 원망하고 미워하다 끝내 사랑하고 말았다. 끝.



지금은 두 분 다 돌아가셨다.

이 분들처럼 애증의 세월에 휘둘린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미워하고 증오하고 싫어했으면 차라리 진즉에 인연을 끊던가 - - - 긴 긴 세월, 긴 시간을 다투면서 서로의 감정을 소모하고 - - 애를 닳고 - - 그럼에도 그 끈을 놓지 않다니 - -

가까이에서 이 부부의 불화를 지켜 본 부모, 형제, 친구들은 근심이 깊었다.

어쩔 것인가? 자신의 몫은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것을 - -

마지막 몇 달, 그녀는 그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다.

두 분, 모두 행복해하셨다. 그걸로 되었다.

인생,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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