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0. 그날 밤,
처음으로 우리는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이때까지 살면서 원하는 것을 선택하며 살지 못했다고- - 죽는 것만은 자기 뜻대로 하고 싶다고. 지금까지 헛 살았다고. 남편에게도 자식에게도 도움도 못 되고 폐만 됐다고 - - 자기 인생은 쓸모없는 쓰레기였다고. 돌아온 것은 속죄하기 위해서라고 - - 남은 시간 모두 죄 값으로 쓸거라고 - -
소리없이 그녀는 눈물을 쏟아냈다.
누구보다도 잘 살고 싶었던 그녀는 제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지켜내면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다. 누구라도 자기 몫의 삶이란 게 정해져 있다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을 - - 그것이 마땅치 않다고 팽개쳐 버린들 무슨 좋은 수가 생기겠냐 말이다.
난, 일찌감치 내가 가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했고, 그래서 일찍 포기해 버리는 소심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고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
어떤 때는 뛰쳐나간 그녀의 객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살짝 부럽기도 했다.
정작 뛰쳐나가고 싶다고, 모든 인연을 끊어 버리고 싶다고 생각을 해 온 것은 나였지만 실행에 옮긴 건 그녀였다.
나도 혼자 지내면서 느낀바가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난 누구에게도 나의 진정을 쏟아 사랑을 줘 본 적이 없었다.
그녀, 정화에게도 자식들에게도.
언젠가 나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정말 진심을 다 해 사랑하리라 터무니 없는 다짐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길리 만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