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용한 여자

by 김정욱

6-14. 고등학교에 올라오자,


민자는 친구 관계가 마냥 피곤하게 생각되었다.

책을 좋아하고 조용한 걸 선호하는 민자는 가볍게 웃고 떠드는 친구들은 맘이 가지 않았다.

어느 날 체육시간, 배가 아파 옆구리 통증이 심해져 약을 먹고 양호실에 누워 있다가, 혼자 있기 심심해서 슬며시 교실로 돌아왔다.

주번이 아닌 어떤 아이가 소설책을 펴놓고 보고 있었다.

이름만 알고 있는 아이였는데 뒤쪽을 지나다 힐끗 보니 얼른 책을 덮었다.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순간 가슴이 쿵쿵 뛰었다. 나와 같은 책을 보는 아이가 있다니 - - 민자는 가슴이 떨리고 설레었다.


옥빈을 만날 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 그 아이가 단숨에 좋아져 버렸다.

어릴 적, 쓰라린 기억이 떠올라 민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 어쩐지를 알 수 없었다.

알고보니 그 아이는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엄청 열심히 하고, 싫어하는 것에는 냉담하게 무심했다. 보이시한 모습도 그렇고 확실한 성격도 그렇고, 이미 반에는 많은 팬이 있었다. 당시에는 자신을 감추고 한 친구에게 잘해주는 비밀 친구놀이가 유행이었는데, 유독 그 아이는 인기가 좋아서 꽃이며, 작고 깜찍한 소품들이며, 초콜렛, 과자등이 넘쳐났다. 덕분에 신난 건 그 짝꿍이었는데 그 아이는 한 번 쓱 보고는 시니컬하게 옆자리로 툭 던져주곤 했다.


그 아이에 대한 짝사랑으로 민자는 날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이 세상 모든 짝사랑을 이해할 수 있었으며, 단 한번의 사랑으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믿게 되었다. 이건 친구간의 사랑이라지만 이성간의 사랑이라면 얼마나 더 치열하고 치명적일 것인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조용한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