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4. 우리는,
금서를 탐독했고 비평도 했으며,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도 몰래 숨죽이며 보았고, 논다는 애들만 가는 고고장도 갔다. 뜨거운 햇볕이 쏟아지는 야구장에도 갔으며, 록 가수 콘써트에도 갔다.
해변 가요제도 갔으며 대학 축제에도 갔다.
말하자면 민자의 생애에 르네상스. 예술 혼이 깨어나는 시기가 되었다.
달콤하던 시절은 길지 않았다.
현수가 엄마를 따라 캐나다 어딘가로 이민을 갔다.
실연을 당한 사람처럼 민자는 몸과 맘이 아프고 저렸다. 모든 소설이, 영화가, 노랫말이, 장소와 소리가, 느낌, 햇살마저도 민자를 슬프게 했다.
느닷없이 멈춰버린 관계는 민자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한동안 허둥대며, 혼자서 떠돌았다.
졸업 후, 민자의 생일에 동아리 친구들이 다시 모였다.
"현수, 그 애가 널 이용한 거야 - - 얼마나 영리한 앤데 - -"
위로되지 않는 말을 귓가로 흘리며 다시 친구들과 일상을 회복했다.
얼마 후, 수경이가 모임에 들어오게 되었다.
수경이는 숙자의 대학친구인데 옥빈이와 비슷한 성향을 보였다.
민자는 내심 맘이 불편 했으나, 다른 친구들과 공동 모임이었으므로 그저 보고 있었다.
언제나 앞자리는 수경이가 서야 했으므로 다른 친구들은 수경이가 주장하는대로 먹고 영화를 봤으며, 쇼핑을 하고 수경이가 골라주는 옷과 구두를 신었다.
민자를 제외하고 다른 친구들은 의식을 하지 못했지만, 수경이는 함께 있는 친구들을 결정장애자로 만들고 있었다. 유일하게 동화되지 못하는 민자를 수경이가 불편하게 여긴건 당연한 일.
오해에 오해를 덧붙인 사건을 만들고 사소한 거짓말과 침묵으로 민자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민자는 좋은 친구들의 손을 놓기 정말 싫었지만 다시 혼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