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4. 어쩔 수 없는,
연장근무가 계속되고 영업부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간 외 수당도 타지 못하고, 자재과 직원들 모두 퇴근하고 난 후, 사무실로 들어와 또 밀린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과장님과 면담 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요령껏 하라는 것과 처음엔 다들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타 부서 직원들의 은밀한 속삼임은 과장 별명이 '새치기'로 불릴만큼 직원들의 성과를 잘 가로채고 책임 질 일은 직원들에게 잘 떠넘긴다는 것이다.
개인이 어떻게 해 볼 문제도 아니고, 그 위의 부장이나 이사님과의 면담은 엄두가 나지 않는 상황이어서, 민자는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
어느 조직이든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있다던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상사가 된 불운을 탓할뿐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터졌다.
이십만불짜리 기계 수입 건이었는데, 당시 수출상품에 쓰이는 외환기계는 일정 금액을 정부가 지원해 주었는데, 그 서류가 매우 까다롭고 많았다. 당연히 관세법령에 걸리는 것이 없어야 했고 그것을 증명해야 할 서류도 있어야 했다. 인도에서 염료를 싣고 오던 다국적 선박에 불이 나서, 그 서류를 만드느라 민자는 정신이 없을때였다. 외국과의 시차 문제도 있고 절차상 거쳐야 할 문제도 많고, 더구나 전손이 아니라서 챙겨야 할 서류도 많았다. 오지 못하는 염료를 재구매하기 위해 오퍼를 다시 내고 신용장을 다시 개설하고 은행을 몇 번씩 나가야 했다.
그런데 그 수입하기로 한 기계가 일부 부품이 국산화 되어 정부지원이 안 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이 사실을 민자도 몰랐고, 과장도 몰랐고, 아무도 몰랐다.
더구나 그 기계는 이미 선적이 되어 한국으로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