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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여자

by 김정욱

12-14. 알고 보니,


크기가 작은 물건들은 종종 항공 우편으로 들어왔는데 물론 통관절차는 관세사들이 대행을 해주었지만, 마지막 물건을 찾아오는 것은 민자가 직접 나가야 했다. 마침 그 날이 바뀐 법령교육이 있었다.

보통 교육이 끝나면 일주일내로 바뀐 내용이 우편물로 오기 때문에, 바쁘면 교육에 꼭 참석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과장이 말 해 주어서 그 뒤로는 바쁜 날에는 가지 않았다.


하지만 비싼기계를 수입하려면 꼼꼼한 체크가 당연한 일, 그건 관리자 업무 아닌던가?

아직 서류도 오지 않은 상태여서 아무도 내용을 몰랐고, 뒤늦게 과장이 직접 관계자와 통화를 해서 사실이 확인되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지원이 안 되면 굳이 비싸고 좋은 기계를 살 필요가 없었고, 그 기계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반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운송비용이나 제반 비용은 물론 신용장 개설시 보증금으로 걸어 둔 기계값의 10프로에 상당하는 돈까지 날려버렸다.


문책이 있었고, 책임 소재 파악이 있었다.

위의 부장이나 이사는 당연히 과장의 업무로 알고 있었고, 그동안 민자가 해 온 사실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중요한 일을 직원 한 사람이 다른 업무를 하면서 해왔다는 것에 과장의 직무태만, 직무유기가 문제 되었다.

그렇게 회사가 시끄럽던 어느 날, 그 날도 업무가 밀려 혼자 야근을 하고 있었다.


"아직 민자씨는 미혼이구 - - 또 얼마든지 다른 회사에 갈 수 있으니 - - 이번 일은 민자씨가 책임지는 걸로 하면 안 될까?"


갑자기 나타난 과장은 민자에게 퇴직을 종용했다.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이나 어떤 해명도 없이 거두절미 자신의 본심만 드러냈다.

민자는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제가 왜요? 과장님 책임도 있는 거 아닌가요?'


두 눈 똑바로 뜨고 또박또박, 분명히 말해야 한다고 생각은 했지만, 민자는 하는 말보다 삼키는 말이 더 많았다. '네'라고 하기엔 억울한 느낌이고, '아니요'라고 하기엔 정체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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