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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사랑

by 김정욱

2-9. 요즘,


이상하게 아들네 냉장고에 못 보던 반찬이 눈에 띄였다.

뚜껑을 열고 맛을 보니 간이 딱 맞는게 아마 사부인 솜씨인 모양이다.

그렇군! 우리 애가 내 반찬을 좋아하는 것처럼 며느리도 엄마 반찬을 찾는 모양이라 생각하니 이상할 것도 없었다.


오늘 들어 온 싱싱한 오이며 고추를 보자 큰 아들 생각이 났다.

조리 할 필요 없이 그대로 물로 깨끗이 씻어 와작와작 맛있게 먹던 것이 생각나 넉넉하게 담았다.

아들 집에 도착하니 문 앞에 들통이 나와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그동안 순이가 해 날랐던 곰국이며 말린 생선이며 소고기 불고기까지 냉동실에 있어야 하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며느리 말로는 냉동실에 넣어져 있던 것들이 저들끼리 미끄러져 밤 새 문이 열려졌다는 것이다. 일부는 바닥에 떨어져 녹기도 했고, 그래서 아들이 버리라고 해서 통에 넣은 것이라 했다.


순간, 순이는 정체모를 화가 솟구쳤다.

뽀얀 곰탕을 만드려면 뜨거운 여름 날, 대여섯 시간 불 앞에 붙어서서 한 번 끓이고, 두 번 끓이고 섞어서 또 끓이고 해야 하건만, 이런 수고를 알기는 알까?


유난히 여름을 타는 아들이 기운 없을까봐 꼭 해 먹이던건데 간단하게 버리라고 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먹어 보지도 않고 상했다고 그냥 버릴 수가 있는가 말이다.


순이는 순정을 거부당한 비참한 심경이 되어, 오이고 고추고 다 귀찮아졌다.

먹먹한 통증을 가슴에 안고 집에 돌아 온 순이는 머리조차 지끈거려 자리에 누웠다.

어쩌면 아픈것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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