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순이는 가슴 한 가운데 둔통을 느꼈다.
묵직한 돌덩이가 짓누르고 있는 것처럼 숨이 막혔다.
'이게 무얼까? 슬픔일까? 노여움일까?'
이건 슬픔이고 노여움이고 분노이고 억울함이고 분함이었다.
'누구에게?'
아들인지 며느리인지 혹은 나 자신인지 아니면 그 모두인지 알 수 없다.
몇 달 전 결혼을 한 큰아들은 집 가까이 작은 아파트를 얻어 살림을 났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이리저리 융통을 해서 힘들게 순이가 얻어 준 집이다.
아들이 가까이 살게 돼서 순이는 너무 좋았다.
오며 가며 들여다 볼 수도 있고, 애면글면 금쪽같은 아들도 자주 보게 되리라 생각하니, 삼십년 전 신혼살림을 살던 때가 떠오르기도 하고 그냥 맘이 둥실 설레기도 했다.
몸이 약한 며느리는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과 동시에 그만두고 살림을 했다.
요즘 세상에 둘이 벌면 금새 자리잡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으나, 그것은 저네들이 결정한 일이었다.
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만 했던 며느리는 살림이 많이 서툴렀다.
우리 딸들을 생각하면 나무랄 일도 아니었다.
고달픈 야채가게 일을 해서 생계를 꾸리고 있던 순이는 틈틈이 김치며, 국이며, 반찬을 해 날랐다.
아들이 좋아하는 생선이라든가 곰탕은 며느리가 하지 못 할 것이므로 더욱 신경 쓰였다.
아들집에 가면 허물없이 냉장고도 열어보고 정리도 하고 오래된 반찬은 도로 가져다 먹기도 했다. 쓸만한 것이 버려져 있으면 며느리 모르게 집어 오기도 했다.
나름 경우가 밝은 순이는 아들이 집에 돌아와 있는 시간에는 가지 않았다.
보고 있기만 해도 좋을 그 시간은 방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