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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순임

by 김정욱

4-27. 나오고 보니,


시장 뒤쪽으로 속옷가게가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이 보였다.


"100 싸이즈. 런닝 10장, 팬티 10장 주슈 - "

"저두 BYC 95. 팬티 10장. 주세요 - "


엥 - - 어느 틈에 그녀가 공씨 뒤에 서 있다.


"혹시 - - 장사 하시는 거 - - 아니죠? 호호호호 - "


가게 주인이 웃었다.


"아녜요. 선물예요 - - 선물. 원 순임한테 주는 선물 - - "

"그게 누군데요?"

"나요 - - 나 - - 호호호호 - "


참 - - 기이하고 우스운 인연도 있다.

그녀는 일 년에 두 번, 속 옷을 한꺼번에 사는데 그 날이 오늘이란다.

매 년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지만, 새 옷을 입으면 어쩐지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 같단다.

그녀의 깊은 눈 속에 어떤 사연이 있을까 궁금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다.

묻는다면 공씨도 자신의 얘기를 풀어야 할 것이다.

헛되이 흘려버린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하여 - - 가끔씩 얼굴도 모르는 딸아이가 보고싶어 갈비뼈 아래 쿡쿡 찌르는 고통에 대하여 - -


이 세상 혈육 한 점 없다는 말처럼 가혹하고 시린 말은 없다.

한때나마 잠시 더부살이 하던 작은집이 떠올랐다. 작은 아버지가 별식으로 사온 치킨을 공씨가 오기 전에 사촌동생들이 다 먹어 치우곤 시침을 뗐다. 허공에 떠도는 튀김 기름 냄새 - - 헛구역질을 하며 빨리 이 곳을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조용한 성품의 작은 어머니도 그에게 맘을 주지 않았다. 대놓고 귀찮은 내색은 안했지만 공씨는 온 몸으로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빨리 가정을 만들고 싶었다.

따뜻한 가족을 갖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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