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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순임

by 김정욱

8-27. 웃 돈을 얹어주고 개인택시를 샀다.


사실 집을 살까 하고 모아 둔 거였는데 순임이 반대를 했다.


"뭐 하러 사? 많고 많은 게 집인데?"


딴은 그렇기도 했다.

돈이 없지 집이 없는 게 아니니 언제든 사면 될 것이다.

순임은 여느 여자들과 많이 달랐다. 물론 아이가 없기도 했지만 큰 일도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대범함이 있었다. 의 식 주, 집안 살림에도 큰 욕심이 없었다. 그게 뭐라고? 단숨에 복잡해 보이는 문제도 사소하게 만들었다. 공씨는 그런 순임이 안타깝기도 했다. 어느 것 하나 정 붙이지 못하는 것 같아 쓸쓸한 기분이 되기도 했다.


요즘 들어 순임이 바빠진 건 통장 그 여편네 때문이다.

반상회를 다녀 온 어느 날부터 통장과 어울려 봉사다 뭐다 바쁘게 나돌았다.

예전에는 공씨가 집에 있는 날은 꼭 집에 있던 순임이었는데 지금은 점심때고 저녁때고 들어와 보면 집이 비어 있다.


그러면 공씨는 공연히 성이 났다.

이것이 남편심리인가 생각이 들면서도 자꾸 심술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제라도 결혼을 하고 남편 노릇도, 대접도 제대로 받고 싶어진다.

순임의 얼굴을 마주하면 또 말도 못 꺼낼 것이 분명하지만 같은 생각이 자주 든다.

조만간 술이라도 한 잔 걸치고 순임한테 말을 꺼내 보려고 벼르고만 있다.


늦 가을 11월 중순, 밤 9 시경.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오늘은 일찍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 걸려 온 전화도 영 맘에 걸리고 기분이 꿀꿀하다.

집에 들어서니 컴컴한 실내에 잠시 아득해져 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이 - - 그 날인가?'


마음 한 구석 준비 된 이별이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다급히 그녀의 방문을 열어제꼈다.

어둠 속에 그녀가 오똑하니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쪼그리고 앉아 얼굴을 무릎에 파묻고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었다.


"왜 그래? 불도 안 켜고 - - "


짐짓 쾌활한 목소리로 공씨가 물었다.


"아 - 깜빡 잠이 들었네 - - "

"잠이라고? 참 - 네 - - 불편하게 - - 오늘 뭔 일 있어?"

"아니 - - 아무 일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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