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7. 순간,
공씨는 낮에 걸려 온 전화에 대해서 말을 하고, 다시 왔는지 물으려다 그만 삼키고 말았다.
분명 머리로는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가슴은 물어 보지 말라고 시키고 있었다.
아련한 슬픔이 피어올랐다. 순임과 같이 지내오면서 여태까지 없었던 이상한 느낌이 번지고 있었다.
"음 - 오늘따라 피곤하네 - - 세수나 하고 자야겠다 - - "
공씨는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아무 일 없이 흘렀다.
어느 날, 공씨는 순임에게 물었다.
"당신 어머님 말이야 - - 한 번 찾아봐야 하지 않아? 연세도 있으시잖아 - - "
"응? 엄마? 음 - 그러고 보니 엄마가 벌써 일흔아홉이네 - - 음 - - 나 - - 정말 무심한 자식이지? 당신 - - 이런 내가 이상하지 않아?"
"글쎄 - - 난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으니까 - - 잘 모르지만 - - 당신이 어머님하고 의절하고 지내는데는 무슨 이유가 있겠지 - - "
"이유라 - - 아주 큰 이유가 있긴 하지 - - 내 인생을 망친 - - "
"말하기 곤란하면 하지 마 - "
"곤란이라 - - 내가 공씨한테 말하지 않은 것이 많지만 어떤 날은 뭐든지 다 털어 놓고 당신 생각을 듣고 싶은 날도 많았지 - - 어때 오늘 - - 그 날이 되어 보는 게 - - "
"당신 맘이 좀 편해진다면 나야 상관없지만 - - 괜찮겠어?"
"그대신 당신, 벽이 좀 되어야 해 - - "
"벽이라 - - "
"듣기만 하라고 - - 질문이나 뭐 그런 거 하지 말고 - - 나랑 눈도 마주치지 말고 - - "
"그래 - - 근데 힘들면 지금이라도 멈춰 - - 하지 마"
"한 번쯤, 그래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어 - - 그 누군가가 당신이라서 정말 다행이야 - - "
공씨는 냉장고를 열고 소주, 맥주를 있는대로 다 꺼냈다.
공씨는 소주를 마시고 순임은 맥주를 마실 것이다. 어쩌면 알코올이 진실 가까이 더 가까이 데려다 줄 것이다. 마침 내일은 공씨가 쉬는 날이다. 오늘 하루쯤은 얼마든지 내 줄 수 있다.
공씨는 식탁에, 순임은 아래로 내려 와 벽에 기댄채 바닥에 앉았다.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 - 이 노래와 함께 이야기는 시작되지 - - "
순임은 아득한 옛날로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