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7. 겨울방학이 되고,
수호가 잠시 집에 내려왔다.
자신이 과외하는 학생이 3학년이 되어 수호가 군대 가기전까지 공부를 봐주기로 했단다. 학교는 휴학을 했고 덕분에 자취를 하게 되었다. 수호는 쌀과 밑반찬 이 것 저 것 챙겨 짊어지고 갔다. 엄마는 엄마대로 식당을 비울 수 없고, 졸업을 앞두고 시간이 넉넉해진 순임이 종종 수호의 자취방으로 식량들을 날랐다.
어린 연인. 수호와 순임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불안한 시간 위에서 아슬아슬 사랑을 키웠다.
그 해 겨울, 혹독한 칼바람이 코와 귀를 뗄 것처럼 매서웠던 2월. 수호는 군대를 갔다.
웬일인지 떨어져 있던 그 시간, 오가던 편지로 두 사람 맘은 더 깊어졌다.
서로의 영혼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랄까? 내밀해진 속마음을 얼굴을 보지 않고 전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수호의 제대가 다가오자 순임은 맘이 급해졌다.
순임은 수호에게 편지를 썼다. 급한 맘에 글씨가 날아다니고 달아났다.
'수호야 - -
우리 - - 어디든 도망가자 - -
난 니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 - -
니가 약속해 준다면 뭐든 다 할께.
열심히 공부도 할거고 돈도 많이 벌꺼야 - -
수호야 - - 내가 먼저 나갈께 - - 니가 제대하고 날 찾아오면 되는거야 - -
우리 - - 이대로는 못 살잖아 - - 그치?
수호도 내 맘과 같은거 - - 맞는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법만이 최선이야 - -
엄마아빠를 생각해도 그렇고 - -
수호야 - - 사랑해 - - 많이많이 - -
니 생각을 말 해줘'
어쨌든 부모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가 된다는 사실은 견딜 수 없다.
수호가 답장을 보냈다. 이 말 저 말 하고 싶은 말들을 모두 늘어놓아 두툼해진 편지를, 전에 없이 이상하게 순임 앞으로 보내 온 편지를 엄마가 받아 보았다.
내막을 모두 알게 된 엄마는 놀라 기함을 했다.
아빠도 알게 되었다. 식구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은 며칠이 흘렀다.
이른 새벽, 엄마는 순임의 옷가방을 꾸렸다. 통장을 쥐어주며 울음을 삼켰다.
"순임아- - 어디가든 잘 살아라 - - 이제 너는 가족이 없는거다. 니가 버린거야 - - "
"엄마도 같이 가면 안 되?"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난 여기에 남아서 속죄를 해야지 - - 니 죄는 내가 받을테니 - - 넌 그저 다 잊고 잘 살아 - - "
"수호는? 수호는 어떻하고?"
"수호도 잊어 - - 다 잊어 - - "
그렇게 순임은 집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