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자

by 김정욱

5-23. 추석 즈음,


가까이에 있는 농협에서 단체선물 주문이 들어왔다.


평소 명자도 이용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고 대학 선배가 그 곳에 근무하고 있었다.

알바를 쓸 걸 그랬나 때 늦은 후회를 하며 손 바쁘게 하나씩 포장 하고 있었다.


'송장 No.2356. 11시 50분 화물 착. 교환물품 아사 이너세트'


명자는 혼자 동동거렸다.

불러 낼 친구들도 오늘따라 모두 바쁘고 엄마조차 병원 가는 날이라 오실 수 없고, 명자는 지갑 한 구석에서 그 남자의 명함을 찾아냈다.


"죄송한데요 - - 수고비는 드릴께요. 부탁합니다"


20분쯤 뒤, 지훈이 나타났다.


"안 받으면 불편할테니 왕복 택시비만 받겠습니다 - "


씩 - 웃는 모습이 맘 좋은 아저씨 같아 보였다.

쌓여있는 선물세트를 보고 같이 포장도 해 주고 정리까지 도와줘서 큰 도움이 되었다.

포장하는 손 끝이 여물고 섬세했다.


"정말 고마워요 - - 밥 한 번 살께요 - - "


순간 명자는 아차했다.

친하지 않은 사람하고 밥을 먹는다는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뒤늦게 깨달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수고비 얼마를 주는 것이 맘이 더 편할텐데 - -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종종 명자는 남자의 수고를 빌렸다.

'밥 한 번 약속'은 깊숙이 묻어두고 모른체 했다. 나중에 물어보고 기념일 때, 그냥 선물로 대신해야겠다고 맘 먹었다.


"오빠 - - 급해급해 - - 빨리 좀 와 줘 - - "


어느새, 7살 많은 남자를 명자는 오빠로 바꿔 부르며 직원처럼 부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가족같이 편안한 관계가 되어버렸다.

깍듯이 예의를 차리려는 명자를 사람 좋은 웃음으로, 편안한 침묵으로 허물없이 대하는 지훈은 이제 믿음직한 오빠로 자리 잡았다.

특별히 말하지 않아도 명자의 필요를 척척 해결 해주어 명자는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경계를 놓아버렸다.


하지만 지훈은 절대 명자가 바라는 아름다운 남자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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